미리 아랍 크리스마스!

by 여행하는가족

산타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대

부모는 일터에서,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머물러야 했던 우리 가족은 밤이 되면 그리웠던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단체로 야행성 인간이 되고 말았다. 뒤늦게야 나는 아이의 성장을 위해 초저녁부터 재우겠다는 야무진 결심을 했으나 이미 늦게 잠드는 습관이 생겨버린 아이에게 일찍 자라는 말은 그저 공염불일 뿐. 하지만 그러던 아이도 일 년에 딱 며칠 동안만은 일찌감치 침대로 향한다. 신기하게도 그 마법은 늘 크리스마스 즈음에 일어난다.


몇 해 전 크리스마스이브, 우리 집 꼬마는 평소보다 두 시간이나 이른 시각에 자리에 누웠다. 내가 산타 할아버지는 썰매를 타고 날아가다가 '잠을 자는' 아이의 집에만 들어가 선물을 놓고 가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먹혀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늘 자정이 다 되어 잠들던 아이가 일찍 눕는다고 잠이 올 리가 있나. 불 꺼진 방에 눕긴 누웠으나 말똥말똥한 눈으로 한참을 뒤척이는 모습이 안쓰러워 나는 삼십 분만 더 놀다 자겠느냐고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들릴 듯 말 듯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산타 할아버지한테 들킬까 봐. 산타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잖아..."


두바이에서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을까?

자신이 깨어 있다는 사실을 산타 할아버지에게 들킬까 봐 놀고 싶은 것도 꾹 참아가며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잠을 청하던 내 아이의 귀엽고도 안타까운 날들이 떠오르는 계절이다. 어느덧 두바이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크리스마스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이 도시로의 이사를 준비하던 당시 우리의 큰 고민 중 하나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이삿짐에 넣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아랍에미리트는 자국민의 비율이 고작 11%에 불과한 나라다. 그리고 두바이는 외국인 거주자의 비율이 특히나 더 높고 자유로운 국제도시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이런 사실들을 고려해 보건대 그깟 트리쯤 가져가도 되지 않을까 싶다가도 가만있자, 그래도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에서 엄밀히 말하자면 기독교인들의 축제라고 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를 티 나게 축하해도 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음속으로 트리를 몇 번이나 실었다 뺐다 하는 부모 곁에서 아이도 고민이 태산이었다. 비행기까지 타고 다른 나라로 이사를 하는데 산타할아버지가 과연 우리의 새집을 제대로 찾아오실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게 이유였다. 고민 끝에 결국 우리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다른 이삿짐들과 함께 컨테이너에 실었다. 꼭대기에 별까지 달면 족히 2미터는 되는 큼지막한 트리였다. 두바이에서 오너먼트를 못 구하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오랫동안 사용해 오던 온갖 반짝이는 것들까지 꾸역꾸역 다 쓸어 담았다. 이사 과정에서 혹 그것들이 적발되어 벌금을 물거나 버려진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과연 우리는 두바이에서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을까?



두바이의 크리스마스

걱정하는 일의 90%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던가?


11월로 접어들자마자 두바이의 쇼윈도들은 놀라울 정도로 신속하게 크리스마스 의상으로 갈아입었다. 화장실 한 칸 고치는 데도 몇 달이나 걸리는 나라답지 않게 이런 일에는 또 왕서방 뺨 때리는 아라비아 상인의 기질을 십분 발휘해 빠르기도 빠르다. 두바이 몰(Dubai Mall)이며 에미리트 몰(Mall of the Emirates), 나킬몰(Nakheel Mall) 같은 시내 주요 쇼핑몰들은 어찌나 화려하게 변신을 하는지 윈도쇼핑만 하고 와도 이미 크리스마스를 치른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과 어우러지면 평소 진열되어 있던 물건들도 어쩐지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하이라이트는 가구나 식기, 인테리어 소품 등속을 파는 매장들인데 탐나는 물건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그곳들에 다녀올 때마다 내 얇은 지갑이 야속하고 동시에 지갑이 얇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비단 실내 쇼핑몰뿐일까? 겨울 시즌 두바이는 평균 기온이 최저 14도, 최고 26도 정도의 쾌적한 날씨를 자랑한다. 마치 한국의 가을을 연상시키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계절이라 하겠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덩달아 외부에서 진행되는 행사도 많아지기 마련인데 이때 크리스마스 행사가 빠지면 섭섭하다. 그리하여 11월부터는 실외 공간들도 크리스마스 테마로 꾸며지고 크리스마스 마켓까지 문을 연다. 하얀 눈만 없다 뿐이지, 산타 마을이 있는 핀란드의 로바니에미나 뉴욕 같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크리스마스를 가장 요란하게 즐기는 곳이 어쩌면 두바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산타 할아버지, 제 소원은요

2021년 말부터 2022년 초까지 이 나라를 가장 뜨겁게 달구었던 것은 다름 아닌 두바이 엑스포였다. 아랍에미리트가 처음으로 진행하는 이 국제적인 행사도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전구와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로 한껏 꾸미고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행사장 한편에는 엄청나게 커다란 우체통까지 설치되어 있길래 그곳으로 다가가 보았다. 모여 있는 이들에게 물어보니 산타 할아버지께 보내는 엽서에 자신이 올 한 해 어떻게 살았는지, 받고 싶은 선물은 무엇인지 적어 우체통에 넣으면 추첨을 통해 산타가 엽서 주인공이 적어낸 선물을 진짜로 준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에 마음이 동한 우리 아이도 정성스레 엽서를 쓰기 시작했다. 람보르기니 스포츠카를 받고 싶어요,라고 쓴다 해도 두바이라면 통 크게 정말로 그것을 선물로 줄 것 같았지만 아이는 축구화와 축구복이 받고 싶다고 적었다. 얘야, 그 정도는 엄마, 아빠도 사줄 수 있단다. 람보르기니 어떠니? 아니면 페라리라도? 잠시 재물의 노예가 되었던 엄마는 이윽고 동심을 되찾아 진지하게 엽서를 쓰고 있는 아이 곁에서 산타 할아버지로부터 받고 싶은 선물을 조그맣게 되뇌어 보았다.


그때 빌었던 '선물'이 바로 우리 가족이 두바이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겨울을 최고로 즐겁게 보내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비록 추첨 운은 없었지만 그 마음이 정말로 산타에게 가닿았는지 우리는 그 겨울을 정말로 즐겁게 보냈다.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올해도 트리가 설치된 우리 집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가득 내뿜고 있다. 한국에서 가져온 오너먼트와 두바이에서 새로 산 오너먼트를 함께 매달면서 나는 올해도 어김없이 동심으로 돌아가 소원을 빌어보았다.

산타 할아버지, 이번에도 우리 가족 건강하고 행복하게 한 해 잘 마무리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올해도 제 소원, 들어주실 거죠? 산타가 그건 제일 난도 높은 선물이로구나, 올해는 옜다! 스포츠카! 하시는 건 아니겠지?


두바이 미디어 시티에 문을 연 크리스마스 거리, 산타의 집 풍경




[기고처] 브릭스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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