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연말의 일이다. 당시 우리 가족은 강원도를 여행하고 있었다. 계절은 겨울이었고 그날은 유독 바람마저 매서웠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매고도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를 피하지 못한 아이는 급기야 "사막에 가고 싶다!"라고 외쳤는데, 말이 씨가 된다더니, 그날로부터 약 일 년 후 정말로 우리 가족은 사막에서 솟아난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된다. 아브라카다브라. 마법의 주문이야 뭐야.
한때는 불모의 땅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오늘날 두바이(Dubai)의 도심 풍경은 여느 대도시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우리 가족은 바닷가에 집을 구한 까닭에 풍부한 물과 푸르른 야자수에 둘러싸여 지내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니 우리가 물이 귀한 사막 지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중동 하면 사막 아니겠습니까? 그리하여 우리 가족은 이 지역의 과거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할 겸 사막에 지어진 리조트로 호캉스를 다녀오기로 했다.
우리 가족의 첫 사막 호텔
목적지는 밥 알 샴스 데저트 리조트 앤 스파(Bab Al Shams Desert Resort and Spa)로 정했다. 두바이 도심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밥 알 샴스는 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문을 연 사막 리조트다. 고심 끝에 사막뷰를 즐길 수 있는 테라스가 딸린 방을 예약했는데 다음에 다시 가도 같은 곳에 머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선택은 만족스러웠다.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 고풍스러운 건물과 사막을 바라보는 위치에 만들어진 멋진 수영장, 너무나도 친절한 직원들, 그리고 알찬 체험 프로그램들도 우리 가족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낙타를 타고 주변을 한 두 바퀴 거닐거나 잘 길들여진 매를 팔에 잠깐 앉혀보는 액티비티에는 투숙객 누구라도 무료로 참여할 수 있었고 추가 금액을 낸다면 활쏘기를 비롯해 낙타 타고 먼 사막까지 산책하기, 사막에서 자전거 타기, 가이드와 사막 탐험하기 등, 더 본격적인 액티비티에 참여하는 것도 가능하다 했다. 우리 가족이 선택한 타입의 객실 투숙비에는 액티비티 이용료가 포함되어 있다길래 그곳에서의 2박 3일 내내 우린 활쏘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기왕이면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굳이 한 가지만 고집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일단 활을 쏘는 것이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서프라이즈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꼬마 명궁의 탄생! 당시 아직 만 6세였던 우리의 아이가 활시위를 제대로 잡아당기지 못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험이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참여했지만 이게 웬걸, 뚜껑을 열고 보니 같은 시간에 참여했던 어른들까지 모두 제치고 그 꼬마가 가장 오랜 시간 동안 활시위를 당기고 또 당기고 활을 쏘고 또 쏘는 게 아닌가. 힘이 장사여, 장사. 심지어 활을 처음 잡아보았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는 과녁을 여러 차례나 명중시켜 강사님을 놀라게 했다. 그랬다. 내 배에서 나온 이 소년은 과연 자랑스러운 양궁 강국의 남아였다! 사막의 불볕더위 속에서도 활을 놓을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이는 꼬마를 보좌하느라 비록 이 에미는 혼절할 뻔했지만 나의 작은 아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과녁에 집중하고 통통하고 귀여운 손으로 야무지게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은 기대하지 못했기에 더 큰 즐거움이었다.
과연 양궁 강국의 소년
활쏘기 강사님과의 인연도 우리의 거듭된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던 십 대 후반, 혈혈단신으로 고국을 떠나와 두바이에서 각종 일을 전전하며 말로 다 못할 고생을 했던 지난 10년 간의 그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화를 몇 마디만 나누어 보아도 아! 이 사람은 명석한 사람이고 노력하는 이로구나!라는 사실이 느껴졌기에 그의 현재와 미래를 응원하게 된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 이제는 두바이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집까지 마련해 주었다는 청년. 그 이야기를 수줍고도 자랑스럽게 말하던 그의 얼굴이 무척이나 빛나보였다.
밥 알 샴스에서의 첫 경험 이후에도 우리 가족은 아랍에미리트 각지에 있는 사막 호텔에 여러 차례 더 다녀왔다. 도심과는 뚝 떨어져 있어 정말로 사막과 우리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국적인 곳에도 다녀오고 투숙비가 너무 비싸서 가? 말아? 고민을 하다 큰맘 먹고 결제를 한 고급스러운 곳에도 다녀와 봤다. 방문했던 모든 숙소들은 제각각 매력이 있었지만 어쩐지 아직까지도 기억에 가장 깊이 아로새겨져 있는 곳은 밥 알 샴스다. 그것은 아마도 밥 알 샴스가 우리에게는 첫 사막 호텔이었기 때문일 것이고, 그곳에서 만난 이들과 얽힌 기억 때문일 것이고, 그리고 어쩌면 당시가 말로만 듣던 라마단(Ramadan)을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경험한 시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슬람교를 믿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그 시기에 그네들의 전통을 느껴볼 수 있는 사막 리조트에서 보낸 며칠. 그 기억을 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자려고 누웠다가 갑자기 떠오른 기억에 구구절절 글을 내뱉어 보았다. 그나저나 며칠 전에 우리 집 꼬마가 두바이는 너무 덥다고 시베리아에 가고 싶다고 말했는데, 하아... 제발 좀.... 엄마, 이번엔 꼭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