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에서 사귀게 된 친한 형제를 만나는 날이면 아이는 평소보다 더 신이 난다. 목소리도 커지고 행동반경도 커져서 가끔은 실수를 할 때도 있다. 이틀 전에도 그 형아와 동생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분명 며칠 전에도 봤는데 마치 몇 달 동안 서로를 몹시 그리워하다 어렵사리 만난 사이처럼 흥분해 가며 반가움의 인사를 나눈 아이들은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아이들끼리 잘 노는 덕분에 어른들도 향긋한 차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신나는 목소리가 요란하던 방 쪽에서 무언가가 퍽 하고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 울려 퍼지는 우리 집 꼬마의 새된 비명과 울음소리! 깜짝 놀란 어른들은 그쪽으로 냅다 달려갔다. 방바닥을 가득 채운 채 널브러져 있는 장난감과, 자기들만의 아지트를 만들겠다면서 거실에서부터 끌고 간 의자들 사이에 한때는 아름다웠던 스노볼의 잔해가 흩어져 있었다. 아이는 자기가 가장 아끼는 것들이 깨졌다면서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통곡에 가까운 울음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어 다행이었으나 걱정되는 것은 아이의 마음이었다. 산산조각이 난 스노볼 곁에서 엄청난 슬픔을 온몸으로 발산하는 내 아이, 그리고 그 모습에 압도되었는지 쭈뼛쭈뼛 눈치를 보던 두 형제는 위험하니 거실로 나가라는 어른들의 말에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방을 비웠다. 방바닥에는 작은 유리 조각들과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온 반짝이는 액체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것을 치우던 나는 마음이 아팠다. 제 모습을 잃은 스노볼들은 우리 집 꼬마가 여행지에서 고심 끝에 직접 골라 산, 정말로 아끼는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거실에서는 아직까지도 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얻는 것도 있는 법
몇 분이나 지났을까. 간신히 울음을 그친 아이가 난데없이 무언가를 써야 한다면서 종이와 펜, 그리고 스카치테이프를 찾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위험한 것들을 다 치우고 거실로 나가 보니 아이는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아무에게도 안 보여주겠다던 그 편지를 곧이어 마음이 바뀌었는지 엄마에게만 보여주겠다 했는데, 세상에, 그곳에 적힌 내용을 읽은 나는 내 아이를 삶의 스승으로 모시고 싶어져 버렸다. 매일매일 읽어보고 그 안에 적힌 내용을 기억하라는 의미에서 봉투에 '맨날 체크', '체크하세요!'라고 적었다는 편지를 펼쳐보니 그 안에는 이런 문장들이 쓰여 있었다.
'세상은 유한하다.'
'네 삷(삶)에는 엇는 것(얻는 것)과 읿는 것(잃는 것)이 있다.'
이 두 문장과 더불어 아이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자신이 얻은 것들과, 조금 전 깨져버린 스노볼 두 개를 비롯해 자기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잃어버린 몇 가지 물건들을 그림으로도 그려놓았더랬다.
어떻게 스스로에게 편지를 쓸 생각을 했냐는 나의 물음에 아이가 답했다. 울다 보니 자기의 삶이 너무 슬퍼지는 것 같아서 자기의 인생 전체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방금 전에 깨진 스노볼처럼 잃은 것도 있지만 기대하지 않았는데 얻은 것도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고. 나중에 커서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이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그 편지를 매일 읽겠다는 아이는 그것을 제 방 문에 스카치테이프로 붙여두고는 다시 놀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는지 아이와 두 형제는 스노볼 사건 이전보다 더 기차 화통 삶아 먹은 목소리로 신나게 놀다가 저녁까지 야무지게 먹고 헤어졌다.
때로는 아이와 함께 하는 순간들 속에서 학교나 책이나 사회에서 배운 것보다도 더 귀한 깨달음을 얻곤 한다. 아직 만으로 일곱 살도 되지 않은 꼬마이지만 이 조그만 존재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는 사실이 어찌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이번에 깨진 스노볼 두 개 중 하나는 다행히 우리 집에서 가까운 팜주메이라 아틀란티스 호텔에 있는 더 로스트 챔버스 아쿠아리움(The Lost Chambers Aquarium)에서 산 것이었다. 그래서 멋진 행동에 대한 상으로 조만간 아틀란티스를 다시 방문해 새것을 사주겠다고 말해주었다. 나머지 하나는 튀르키예의 에페소스(Ephesus) 유적지에서 산 것이었다. 아쉽게도 그곳엔 지금 당장 갈 수는 없지만 나중에 다시 한번 에페소스를 방문하라는 메시지로 이해하기로 했다. 아끼던 스노볼은 깨져버렸지만 다친 아이들이 없고 내 아이가 이번 경험을 통해 앞으로의 인생에 힘이 되어줄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아 감사하다. 더불어 나도. 이제는 사라진 아틀란티스와 에페소스의 에너지가 잠시 두바이의 우리 집에 다녀간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