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변에서 당이 검출되었습니다.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질 수도 있으니 오늘 바로 집에서 가까운 큰 병원 응급실로 가셔서 추가 검사를 받아보세요. 진료의뢰서랑 소변검사 결과지는 이메일로 곧 보내드리겠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게 이런 거로구나 싶었다. 당이 검출되었다는 소변이 차라리 내 것이었다면, 만약 그랬더라면, 나의 마음이 끝을 알 수 없는 나락을 향해 이토록 순식간에 곤두박질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뇨가 의심된다는 그 소변이 내 아이의 몸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더라면.
당황스러운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눈이 새빨개진 나에게 다가와 "엄마, 무슨 일이야?"라고 다정하게 묻는 내 아가. 그 순진한 얼굴을 보니 그러면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네가 병원 가는 거 싫어하는 거 아는데 하루에 두 번이나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는 게 너한테 너무 미안해서 그래. 내가 생각해도 참 허술한 핑계를 대며 결국 나는 울고 말았다.
곧 보내주겠다던 의뢰서와 결과지가 내 기준으로는 곧 도착하지 않아 몇 차례나 병원에 전화를 걸어 필요한 서류들을 얻어내고는 의사가 시킨 대로 조금 더 큰 종합병원으로 내달렸다. 평소에는 자동차 뒷좌석 제 자리에 앉아 노래를 부르거나 종알종알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던 녀석이 열 때문인지 오늘은 십 분 남짓되는 그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길에 잠이 들어 버렸다. 그러더니 목적지에 도착해서까지 비몽사몽 깨어나질 못 해 결국 내가 안고 들어가 대기실 의자에 앉혀두곤 급하게 접수를 했다.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병원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곳엔 가지 않는 터라 응급실이라는 공간은 그 이름만으로 무섭고 싫다. 도대체 어떤 상황이라야 응급이라 할 수 있을까. 그나저나 여기, 응급한 환자를 받는 곳이 맞기는 맞나?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두바이의 병원에서는 한국의 병원에서와 같은 시스템과 속도를 기대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날만은 유독 모든 게 더 느려터진 것만 같았다. 나는 내가 상당히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고 갑자기 발생한 상황에 어렵지 않게 대처할 수 있다 자부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날만은 응급실 의자에 눈을 감고 힘없이 기대앉아 있는 아이를 데리고 나 혼자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출근해 있는 남편이 이토록 간절히 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가.
천국으로 가는 길
여기까지가 이틀 전의 이야기다. 그리고 지금 우리 가족은 같은 병원 3층의 소아병동에서 삼일 째 새벽을 맞이하고 있다. 응급실에만 들렀다가 집으로 갈 것이라 생각하고 아이의 토사물이 묻어 더러워진 이불을 세탁기에 넣어두고 왔는데, 진료 끝나고 집에 가서 건조대에 말리면 시간이 딱 맞겠다 생각하고 집을 나섰는데, 그 이불이 아직도 우리 집 세탁기 안에 있다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치는 것을 보니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게 분명하다. 마음에 여유가 생긴 까닭은, 소변에서 검출된 포도당과 케톤이 당뇨병의 증거가 아니라 고열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포도당이라는 단어는 과학시험을 준비할 때 이후로는 생각해 보지도 않고 살아왔지만 지난 며칠 사이 나는 당뇨 관련 정보들을 굶주린 사람처럼 긁어모아 흡수했다. 그때 접한 힘든 상황들이 내 아이에게 일상이 되지 않아서 얼마나 감사한지.
큰 고비는 넘겼으나 연쇄상구균 인두염이 확인돼 아이는 아직도 퇴원을 하지 못하고 있다. 빈도는 잦아졌지만 여전히 약으로 열을 내려줘야 하고 목부분 통증이 심한 탓에 항생제도 맞고 있다. 밖에서 뛰어노는 것을 워낙 좋아하는 아이는 난생처음 링거를 맞는 데다 거추장스러운 그것을 팔에 꽂고 작은 병실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힘이 드는지 낮에는 괜찮아진 것 같다가도 무의식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밤이 되면 몇 번이나 깨어 운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정확히 이야기를 해주면 좋을 텐데 반쯤은 잠에서 헤어나지 못한 상태라 그런지 아주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엄마, 아니야, 거의 이 두 단어만 반복적으로 외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운다. 그러면 나는 아이가 실수로라도 주사 바늘이 꽂혀있는 부분을 건드리거나 침대에서 떨어질까 봐 온몸으로 아이를 껴안는다. 밤 시간 언제 또 깨어날지 몰라서 내내 아이 곁에서 자고 있어서 그런지 입원하기 전 집에서 며칠, 그리고 입원 후 단 이틀 만에 나의 체력까지 바닥난 기분이다. 긴 기간 동안 투병하는 분들과 곁에서 간호를 하는 가족들의 삶은 얼마나 힘들까, 내 코가 석자인 와중에 주제넘게 남 걱정까지 하고 있다.
하루 입원 계획이었는데 열이 쉽사리 내리지 않아 이틀, 그리고 삼일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퇴원이라더니 다시 저녁쯤 상황을 보고 퇴원 결정을 하잔다. 건강하던 아이가 힘없이 누워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안 하던 병간호를 하느라 내 몸도 지치는 건 사실이다. 낮에는 회사엘 갔다가 퇴근 후엔 집에 들러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짐을 챙긴 후 병원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러 오는 남편도 얼마나 피곤할까 싶다.
멋진 로봇손
하지만 지금의 시간이 힘든 부분도 분명 있지만 인생의 밝은 면을 보려 한다. 링거 바늘을 손등에 꽂으며 겁에 질려버린 아이에게 와! 네가 좋아하는 로봇처럼 멋진 로봇손으로 변신했다고 말해주었다. 이제 한국으로 치자면 초등학교 3학년 나이인 터라 이런 이야기가 과연 통할까 싶었는데 웬걸. 아이의 눈빛이 순간 공포에서 자부심으로 바뀌었다. 친구들과 영상 통화를 하면서도 링거를 꽂고 있는 자신의 '로봇손'을 굳이 휘휘 저으며 화면에 출연시키는 걸 보니 귀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안심이 된다. 삼시 세끼 내가 직접 요리를 하지 않아도 내가 준비한 것보다 훨씬 훌륭한 밥상으로 우리 가족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도 감사하다. 길어야 이제부터 하루이틀이겠지. 조금 후 아이가 잠에서 깨면 오늘은 더 기운차게 놀아줄 것이다.
내가 감기 증상을 보이자 자기가 뭘 하는지 절대 보면 안 된다고 하더니 화장실 벽에 휴지로 Get Well이라고 붙여두었다. 이걸 보고 행복해진 울보 엄마는 또 울뻔했다
매일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다가 병원에 갇혀 있으려니 답답한가 보다. 할 수 있는 놀이는 다 해보는 여행이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