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HING IS IMPOSSIBLE!

by 여행하는가족


우리 가족이 두바이에서 보낸 첫 해의 마지막 날, 우리는 아주 특별한 이벤트를 앞두고 있었다. 이 사막의 나라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마치 오아시스와도 같은 귀한 친구들과 함께 해변에서 바비큐를 하며 가는 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기로 한 것이었다. 그 해변에서 바비큐가 허용된 공간은 딱 두 곳뿐이며 정해진 시간에 선착순으로 자리 예약을 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것도 온라인도 아니고 직접 찾아가서 해야 하는 예약이라고. 그 어려운 일을 그날의 호스트가 아침부터 눈썹이 휘날리도록 내달린 끝에 성공시켰고 덕분에 우리들은 버즈 알 아랍(Burj Al Arab)이 바라보이는 해변에 모여 고기를 씹으며 저무는 해를 떠나보낼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사막 기후 지역에서 산다는 것

독일의 기후학자인 쾨펜이 발표한 기후 구분에 의하면, 연평균 강수량이 250mm 미만으로 덥고 건조한 기후를 사막 기후라 칭한다. 아라비아 반도와 더불어 아프리카 대륙 북부, 호주 남서부, 그리고 미국 서부 일부 등이 사막 기후에 해당된다. 특히 지금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지역 중 하나이고 연강수량은 겨우 100밀리리터 남짓한, 말 그대로 극심한 건조 지역이다. 그러므로 비가 부족한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이런 상황에서 이 나라는 하늘이 내리지 않는 것을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는 대신 인간이 직접 비를 내릴 방법을 찾은 듯했다.


아랍에미리트에도 한국으로 치자면 기상청에 해당하는 기관이 있다. The National Center of Meteorology라 불리는 이곳은 대기(氣象)와 관련된 모든 일에 관여하는데 센터에서 관장하는 주요 임무 중 하나가 바로 구름씨를 뿌려 인공비를 내리는 일이라 했다. 이 나라는 2000년대 초반부터 정기적으로 구름씨 뿌리기(cloud seeding)를 시작했다. 매일 하늘을 들여다보며 살아가는 기상 전문가들이 적당한 구름을 발견하는 즉시 파일럿에서 출동 명령을 내리면 비행기는 염화칼륨과 염화나트륨, 마그네슘을 포함한 합성물을 싣고 목표로 하는 구름 위로 날아가 그것을 뿌린다. 그 합성물이 주변의 수분을 끌어당기고 그렇게 해서 커진 물방울이 비의 형태가 되어 땅으로 내려온다는 이야기였다. 최근 들어서는 화학적인 구름씨 뿌리기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 드론으로 구름에 전기자극을 가해 비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는데, 여하튼 요점은 이 나라에서 살다 보면 자연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비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눈치 빠른 독자는 이미 감을 잡았을 게 분명하다. 바비큐 이야기를 하던 내가 왜 난데없이 구름씨 뿌리는 이야기를 시작한 것인지. 그렇다. 우리가 올해 처음으로! 그러니까 정말이지 처음으로! 해변에서 바비큐 한번 해보겠다고 누군가는 부리나케 달려 나가 자리를 잡고, 또 누군가는 아침 댓바람부터 고기를 사네 야채를 사네하며 장을 보고, 졸린 눈을 비벼가며 파이를 굽고, 아이들이 잘 먹을 것 같다는 이유로 몇 시간을 불 옆을 서성이며 폭립을 만든 바로 그날! 하필이면 바로 그날! 야속하게도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뿌린 구름씨가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그해 1월 중순에 한국에서 두바이로 이사를 온 나는, 그렇게 그해의 마지막 날에 처음으로 이 도시에서 비를 맞게 되었다. 하아... 그렇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은 이럴 때 쓰라고 생겨난 말이었구나.


그날 기상청은 칭찬받아 마땅할 정도로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한 듯하다. 부푼 마음을 안은 채, 마음만큼이나 크게 부풀어 있는 장바구니를 들고 만난 우리들은 해변의 테이블에 테이블보를 깔고 그 위에 식기와 음료와 반찬거리들을 세팅해 놓은 상황이었다. 이제는 고기를 구워 냠냠 쩝쩝 즐기기만 하면 되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불과 몇 분 사이에 푸르던 하늘이 짙은 회색으로 변했고 굵은 빗줄기가 인정사정없이 쏟아져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매우 설렜고 그날 새벽부터는 몹시 분주하기도 했던 우리 일행은 그깟 비 때문에 바비큐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우리는 두 팀으로 나뉘어 아빠팀은 해변에서 간신히 만들어낸 불씨를 지키고 엄마팀은 해변에서 놀던 아이들을 챙겨 대피를 하기로 했다. 대피 과정에서 이미 홀딱 젖어버려 차라리 수영복을 입고 만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비가 너무나도 반가웠다. 머리카락은 이미 머리통에 볼품없이 찰싹 달라붙어버렸고 갈아입을 옷도 안 가져왔는데 입고 있던 옷은 축축하게 다 젖어버렸으며 이 와중에 해변 모래바닥에서 뒹굴며 놀던 아이들은 이미 꼬질꼬질해질 대로 꼬질꼬질해져 이 아이는 제 아이가 아닙니다라고 발뺌하고 싶어지는 비주얼을 하고는 있었대도 오랜만에 만난 비는 나를 행복감에 젖게 해 주었던 것이다. 앞이 제대로 안 보일 정도로 쏟아져내리는 빗줄기 속에서 혹시나 누구 하나 해변에 남겨 두고 온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내 뺨을 때리는 빗방울에게 야, 너 참 반갑다 반가워 힘껏 외쳐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몰랐는데 사막 기후의 나라에서 살다 보니 비가 이리도 반가울 줄이야! 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이것은 비인가 아니면 반가움의 눈물인가...


비 온 후 하늘. 참 예쁘다.


다행스럽게도, 그리고 조금은 아쉽게도 비는 오래지 않아 물러났다. 엄청난 빗줄기를 몰고 왔던 먹구름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하얀 구름만이 동동 떠있는 하늘은 평소보다 더 맑아 보였고 공기마저도 청명하기 그지없었다. 비를 피해 대피하는 과정마저 재미있었다던 아이들을 이끌고 다시 해변으로 돌아가보니 비에 홀딱 젖은 아빠들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마치 다리 아래에서 흥겨운 회합을 즐기는 거지 왕초들 같은 모습을 하고 있던 그들은 온몸을 던져 살려놓았다는 숯불로 양이며 소를 구워 우리에게 내밀었다. 비록 불 조절에 실패해 고기는 새카맣게 탄 모습으로 식탁에 도착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기가 아니라 숯을 먹으라 한대도 아흑, 이것은 꿀맛! 진정한 꾸르맛!


NOTHING IS IMPOSSIBLE!

비 때문에 힘들었지만 비 덕분에 행복했던 해변에서의 바비큐 파티 다음 날, 그러니까 2022년의 첫날에도 두바이에는 비가 내렸다. 비가 흔하지 않은 탓에 그것이 조금만 쏟아져도 집에서 물이 새고 도로가 침수된다는 이곳에서 우리 가족은 다시 한번 집을 나섰다. 예상했던 대로 도로 이곳저곳에는 물 웅덩이가 생겨나 있었고 몇몇 차들은 빗길 운전에 익숙하지 않은 듯 비틀거리고 있었다. 우리도 평소보다 속도를 줄여 조심조심 운전해 가며 비에 젖은 도시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평소보다 길었지만 촉촉하게 젖은 두바이를 구경하는 기쁨은 컸다.


한 해를 시작하는 시기라서 내 마음도 평소보다 더 긍정 에너지로 넘쳐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하늘의 뜻에 맞서 인간이 만들어낸 빗방울에 이토록 감동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이 마음을 먹으면 못 할 일은 없다. 새해가 선물해 준 이 기세를 몰아 같은 마음을 유지한 채 앞으로의 시간들을 살고 싶다고 나는, 다짐해 보았다. 그래, 불가능할 것은 없어! Nothing is imposs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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