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EXPO 2020 MYSTERY MAN? Are you the EXPO 2020 MYSTERY MAN?"
두바이 엑스포
2020년에 진행될 예정이었던 두바이 엑스포가 팬데믹으로 인해 2021년 10월 1일이 되어서야 드디어 시작되었다. 예산이라든지 행정적인 부분이라든지 여러 이유가 있었겠으나 여하튼 2021년부터 2022년 3월 31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엑스포는 공식적으로는 엑스포 2020(EXPO 2020)으로 불리고 있다. 여러 모로 무지했던 나에게 한국 밖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심어준 1993년의 대전 엑스포, 같은 취향을 지닌 사람을 인생의 동반자로 삼아 둘이 함께 방문했던 2012년의 여수 엑스포를 거쳐 이제는 셋이 함께 두바이 엑스포로 향하고 있다. 그 길이 설레지 않을 수는 없었다.우리 가족은 엑스포 전 기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자유입장권을 일찌감치 사두었다. 집에서 엑스포장까지는 자동차로 25분이면 닿는 거리니까 언제든 마음이 내킬 때마다 근처 쇼핑몰을 드나드는 마음으로 부담 없이 오가기 위해서였다. 오늘은 스페인 파빌리온에나 다녀와 볼까? 오늘 저녁엔 태국 파빌리온에 가서 똠얌꿍이나 먹고 올까? 이런 느낌으로! 그날 저녁에도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서긴 했지만 우리의 표정은 누가 봐도 살짝 굳어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엄청난 미션을 가슴에 품고 있었으니까.
엑스포 2020 미스터리 맨
엑스포 2020 미스터리 맨(EXPO 2020 MYSTERY MAN)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었던 것은 라디오에서였다. 운전을 할 때마다 나는 두바이 아이(Dubai Eye)라는 라디오 채널을 듣기 위해 103.8에 주파수를 맞추곤 해왔다. 그날도 하교하는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 방송을 듣고 있는데 엑스포 2020 미스터리 맨이라는 단어가 내 귀에 쏙 들어와 박혔다. 가만 들어보니 두바이 엑스포를 홍보하기 위해 엑스포의 공식 방송 채널인 두바이 아이가 현금을 살포하는 이벤트를 준비한 것이다. 12일 동안 진행되는 이 이벤트를 위해 매일 저녁 6시부터 8시 사이에 사람 한 명이 엑스포장을 돌아다닌다. 그 사람이 누구이고 어디에서 그를 찾을 수 있는지 추측할 수 있는 정보가 방송 중간중간에 청취자들에게 전달되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최소한의 정보인 터라 그 넓은 엑스포장에서 두바이 아이가 심어 놓은 한 명의 인간을 찾는 일은 미스터리하다 할밖에. 그나저나 왜 우리가 날도 더운데 광활한 엑스포장을 헤매 가며 미스터리 맨을 찾아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그를 찾아낸 사람은 현금 10,000 디르함, 그러니까 한국돈으로 치자면 약 300만 원 남짓되는 금액을 선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명심해야 할 것은, 그를 만났을 때 정확히 "Are you the EXPO 2020 MYSTERY MAN?"이라고 물어야 그로부터 예스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단 한 글자만 빠져도, 단 한 단어만 잘못 말해도 미스터리 맨은 자신이 미스터리 맨이라는 사실을 부정한다는 이야기였다.
우리 아이는 기저귀도 다 못 뗐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상당히 목표 지향적인 아이였다. 두바이 엑스포가 진행되던 당시에도 마찬가지. 하굣길, 우리 집 꼬마를 차에 태우자마자 나는 엑스포장의 미스터리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아니나 다를까 그 이야길 듣자마자 아이는 오늘 저녁에 당장 엑스포장에 가자는 제안을 했다. 안 그래도 널 어떻게 꼬셔서 데리고 가나 고민 중이었는데 이런 행운이! 그 제안을 덥석 문 나는 남편에게 연락해 오늘 저녁, 우리 가족은 미스터리 맨을 찾으러 엑스포장에 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목적지로 향하는 길 내내 절대 틀리지 말아야 할 문장을 진지하게 외던 아이는 그를 찾으면 그 상금은 다 자기 거라고 말했다. 300만 원으로 사고 싶었던 장난감들을 사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꼬마 청년을 향해 나는 그럴 수는 없다고 딱 잘라 말해주었다. 미스터리 맨에 대해 처음으로 듣고 우리 가족에게 알려준 사람은 엄마고 지금 엑스포장으로 향하는 길에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아빠니까 네가 만약에 그 아저씨를 찾게 된다면 그건 우리 모두가 축하받아야 할 일이므로 상금은 1/3씩 나누어 가져야 공평한 거라고. 나의 이야기를 듣더니 그 말이 맞다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를 바라보는데 문득,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투명 인간 같을 미스터리 맨이 우리 가족 앞에 짜잔 하고 나타나 은근한 눈빛으로 내가 바로 그 미스터리 맨이요라고 신호를 줄 것만 같고 낯선 곳에서도 놀이터를 찾아내는 우리 아이가 예의 그 매의 눈으로 미스터리 맨을 단박에 찾아낼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곧이어 사람들의 환호를 받고 계좌에 이체된 300만 원, 아니지, 10,000 디르함이라는 글자를 확인하는 우리 가족의 행복한 모습까지 선명하게 그려지는 것이었다. 착각엔 브레이크가 없었다.
우리 가족이 밥 먹듯 드나들던 두바이 엑스포장의 풍경
당신은 어디에
김칫국을 잔뜩 마시고 도착한 엑스포장에서 우리 셋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미스터리 맨이 출몰할 것이라 예상되는 장소로 향했다. 그날의 힌트를 종합해 보건대 그는 중세 시대 이탈리아인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그런 기운을 풍기는 이는 없어 보였다. 뭐지? 내가 힌트를 잘못 들었나? 그럴 리가 없는데? 아니면 힌트를 잘못 해석한 걸까? 아들만 그런 줄 알았는데 어미도 목표지향적이 되어 버린 탓에 우리 둘은 전시에 집중하지 못한 채 이 사람이 미스터리 맨인가? 아니면 저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고개를 휘휘 돌리며 전시보다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에 더 집중해 가며 엑스포장을 돌아다녔다. 이 모든 아이디어에 대해 가장 초월한 자세를 보이던 남편도 미스터리 맨과 그가 선사할 일금 10,000 디르함에 혹했는지 살짝살짝 고개를 돌려가며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눈치였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미스터리 매앤~~!!
그날의 미스터리 맨은 이렇게 생겼어야 했는데! 엑스포 2020 이탈리아관의 다비드상
그러기를 몇십 분. 저녁이 되었지만 두바이답게 여전히 날은 푹푹 찌고 미스터리 맨은 코빼기도 안 보이는 마당에 더 이상 이렇게 그를 찾아 헤맬 수는 없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본 우리는 밥이나 먹자는 생각으로 근처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엑스포장에 도착하기만 하면 문제의 그가 우리 가족 눈에만 올 컬러로 도드라지게 포착될 것만 같았는데, 그리고 나는 뽑기 운도 상당히 좋은 사람이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식탁에 앉아 커피와 디저트를 입으로 옮기던 남편이 말했다. 사실 아까 어떤 여자가 자기한테 다가오더니 당신이 미스터리 맨이냐고 물었다고. 오늘의 힌트에 따르면 이탈리아, 또는 최소 남부 유럽 사람처럼 보이는 남자가 미스터리 맨이어야 했는데 딱 봐도 극동아시아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에게까지 미스터리 맨이냐고 물어보다니 웃기는 사람일세. 그 여자 참 재미있다고 하하하 웃다가 다음 순간, 아! 밑져야 본전인데 그냥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다 보면 운 좋으면 언젠가는 진짜 미스터리 맨을 찾고 상금을 손에 쥐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내 300만 원!
지난 몇 주 간 엑스포장으로 향할 때마다 은근한 기대감으로 우리 가족의 마음을 달뜨게 했던 미스터리 맨 행사가 끝을 맺었다. 이제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미스터리라는 단어만 들어도 귀를 쫑긋 세우고 그날의 힌트를 듣는 일도, 온 가족이 설레는 긴장감을 안은채 엑스포장으로 향하는 일도, 사람들 사이를 눈으로 헤집는데 정신이 팔려 전시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행사장을 헤매고 다니는 일도 끝이 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것이 될 줄 알았던 돈은 열두 명의 다른 이들의 품에 안겼다.
나는 뽑기 운이 굉장히 좋은 사람이다. 아니, 좋은 사람이었다. 별생각 없이 신청한 럭키드로에서 1, 2등 상을 탄 적도 몇 번이나 있고 내기가 걸릴라치면 못하던 가위바위보도 귀신같이 잘하게 되는 나의 운을 믿었건만 이제 그 운도 다 한 것일까. 신혼시절, 결혼 전보다 뽑기 운이 나빠진 것 같다는 한탄을 쏟아내는 날 향해 남편이 했던 말을 떠올려 보기로 했다. "유미가 나를 만난 게 최고의 행운이라서 다른 데 쓸 운은 다 사라졌나 보다."라던 그 말을. 그래, 비록 미스터리 맨인지 뭔지를 찾아 300만 원 벌 운은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 내 곁에 있는 이 남자와 결혼을 하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의 엄마가 되는 최고의 행운을 누리고 있으니 그깟 아쉬움은 털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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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도 30만 원도 아니고 300만 원은 조금 아깝지 말입니다.
PS. 2021년 말 당시 한화 300만 원 정도였던 10,000 디르함은 2023년 10월 환율 기준으로는 무려 360만 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