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자동차 번호판의 신기한 세계

by 여행하는가족

두바이에는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많다. 그리고 그중에서 빼놓으면 섭섭한 것이 바로 자동차 구경이다. 유명 연예인들의 애마로 연예 뉴스 지면을 장식하거나 한국 드라마에서 재벌들이 타는 차로 등장하는 고급 자동차 수십 대가 한자리에 모여 있는 풍경을 만나는 것이 이곳,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두바이 경찰도 슈퍼카 부대를 갖추고 있을 정도인데, 부가티 베이론,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아우디 R8을 비롯해 슈퍼 SUV로 유명한 람보르기니 우루스, 007에서 제임스 본드가 탔던 애스턴 마틴 밴티지 등이 실제 경찰차로 운행된다고 한다. 도망가는 슈퍼카를 잡기 위해 경찰차도 슈퍼카로 준비했다나 뭐라나. 더 재미있는 사실은, 억(億) 소리는 두바이의 자동차뿐만이 아니라 자동차에 붙은 번호판에도 해당되는 일이라는 것!


두바이 도심 도로 풍경
두바이의 경찰 슈퍼카 ©Dubai Police


200억짜리 번호판

2023년 4월 두바이에서는 이슬람교의 명절인 라마단을 맞이해 "가장 귀한 번호들(Most Noble Numbers)"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자선 경매가 열렸다. 두바이의 통치자이자 아랍에미리트의 부통령인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이 주최한 이 행사에서는 특별한 자동차 번호판들과 핸드폰 번호들이 경매에 부쳐졌고 낙찰 금액 전액은 통치자가 지원하는 저소득층을 위한 식량 지원 이니셔티브에 기부되었다고 한다. 이날 하루 경매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자그마치 97,920,000 디르함으로 한화로는 약 360억 원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더 흥미로운 일은 같은 행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자동차 번호판이 탄생했다는 사실이며 낙찰 금액은 무려 55,000,000 디르함으로 이를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200억 원 정도에 해당한다(자투리 돈, 2억 5천 여 만원은 통 크게 생략하고 적어보았다. 허허허). 숫자가 너무 커서 쓰고 나서도 제대로 썼는지 0을 몇 번이나 다시 세어봤는데, 맞다, 55,000,000 디르함. 정말 믿기지 않는 금액이다. 참고로 이 경매 직전까지 세계 최고가로 기록되어 있던 억 소리 나는 자동차 번호판도 아랍에미리트에서 낙찰된 것이었다고 한다.


두바이 도심 도로 풍경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공섬, 팜 주메이라의 전망대에서 두바이 시내 방향을 바라본 풍경. 시원하게 뻗은 이 도로에도 고급 차량이 즐비할 것이 분명하다


두바이의 자동차 번호판

아랍에미리트연합국(United Arab Emirates)이라는 공식명칭에서 드러나듯 아랍에미리트는 여러 토후국*들이 모여 만든 나라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아부다비 토후국과 두바이 토후국 이외에도 샤르자, 푸자이자, 움 알 쿠아인, 아즈만, 라스 알 카이마까지 총 7개의 토후국이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하나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지만 마치 미국의 주(state)가 그러하듯 이 나라의 토후국들도 국가 전체의 맥락 안에서 개별 정부와 법률, 시스템 등을 갖추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부분이 많다. 자동차 번호판도 예외는 아니다. 토후국별로 번호판의 디자인부터가 다르고 그 안에 적히는 내용 또한 따로 관리된다.


두바이의 경우, 두바이의 도로교통국 격인 RTA(The Roads and Transport Authority)라는 기관에서 자동차 번호판을 생성하고 관리한다. 번호판에는 이 도시에 등록된 차량이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두바이 로고가 들어가고 여기에 알파벳과 숫자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식별번호가 추가된다. 알파벳의 경우, A부터 AA까지 중 하나 또는 두 개의 알파벳이 배치되며 숫자는 한 자리 숫자부터 다섯 자리 숫자까지 중에서 선택, 배치된다.


* 토후국(Emirates): 영국의 보호와 감독하에 지배자로 군림하던 세습 전제 군주인 토후가 이끄는 국가


두바이에서 자동차 구경은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하지만 이제 자동차 번호판 구경도 빼놓지 말 것!


자동차 번호판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동화가 있다. 아이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적에 좋아하던 책으로, 길벗어린이에서 출간한 『지원이와 병관이』시리즈다. 대한민국의 흔한 남매, 지원이와 병관이가 아옹다옹하면서도 결국엔 정답게 자라나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재미있고 따스해서 아이도 나도 몇 번이나 읽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 시리즈 중 한 권은 병관이가 놀이터에서 5,000원을 주운 후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공돈이 생겨 기쁜 마음에 병관이는 돈의 주인을 찾는 대신 떡볶이를 사 먹고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사느라 누구 것인지 모를 돈을 다 써버리고 만다. 하지만 자기의 돈이 아니니 쓰면서도 마음이 불안 불안했을 터. 결국 병관이는 타인의 돈을 훔친 죄로 경찰에 잡혀가는 꿈을 꾸기에 이르는데 그 심각한 상황에서도 경찰차의 번호판이 나의 웃음 세포를 건드리고 말았다. 아닌 게 아니라 번쩍이는 경광등이 달린 무시무시한 경찰차의 번호판에는 '5000원'이라고 쓰여 있었던 것이다!


두바이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눈길을 사로잡을 정도로 작은 숫자가 적힌 번호판을 단 자동차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때마다 나와 아이는 농담 삼아, "병관이를 잡으러 왔던 5000원짜리 경찰차보다 더 저렴한 자동차야."라고 말하곤 하지만 사실 두바이의 자동차 번호판은 그곳에 적힌 숫자가 작으면 작을수록 귀하고 비쌀 확률이 높다. 또한 숫자의 자릿수가 적을수록 중요 인물이 소유한 자동차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두바이 1번 번호판은 통치자인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이 소유하고 있고 나머지 한 자릿수 번호판은 통치자의 후계자들이, 두 자릿수는 대부분 왕족가문이 사용한다고 한다. 세 자릿수 번호가 적힌 번호판의 경우 성공한 사업가 등이 소유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두바이에서는 나 이만큼 부유하고 이렇게 중요한 사람이야 라는 메시지를 자동차 번호판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의미. 참고로 예외는 존재하겠지만 아랍인들은 대부분 네 자릿수 번호판을 사용하고 우리 가족 같은 외국인들은 다섯 자릿수 번호판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클래식카를 취급하는 매장. 신상 슈퍼카뿐만 아니라 역사가 있는 자동차를 구경하는 재미도 크다.


이제는 자동차 번호판 구경하는 재미까지!

물론, 두바이의 자동차 번호판이라고 해서 반드시 돈을 주고 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도 자동차를 등록하면 자동으로 생성된 번호판이 딸려 나온다. 하지만 신분이나 재력을 나타낼 수 있는 숫자, 또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숫자가 들어간 번호판은 정부가 진행하는 자선 경매를 통하거나 개인 간 거래를 통해 사고파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로 검색해 보면 자동차 번호판을 사고파는 웹페이지나 중고 장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와, 이제 하다 하다 자동차 번호판까지 판다고? 아랍 상인은 못 이긴다더니 이런 게 바로 그들의 근성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금 생각해 보니 자기가 노력해서 번 돈을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방법으로 쓰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사용한다는 데 그것을 삐딱하게 바라볼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매년 진행되는 자선 경매를 통해 거래된 번호판에 대한 낙찰금액은 경제적 소외계층을 위해 쓰이기도 한다니 그 의도 또한 본받을 만하지 않은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두바이에서는 재미있는 구경을 할 기회가 많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 왔던 많은 일들이 현실이 되고 있는 이 도시를 방문한다면, 이제는 자동차 구경뿐 아니라 자동차 번호판 구경도 잊지 마시길!




[기고처] 브릭스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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