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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Feb 24. 2023

[기고]건축이라는 매개를 통해 바라보는 우리의 세계

[국립세종도서관: 정책이 보이는 도서관]이 책을 읽고 난 후

"Does the flap of a butterfly's wings in Brazil set off a tornado in Texas?"


"브라질에 살고 있는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서 발생하는 토네이도의 원인이 될 수 있을까?"


미국의 수학자이자 기상학자인 로렌즈(Edward Norton Lorenz)가 던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이다.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용어는 마치 조그마한 나비의 날갯짓에 비견될 수 있을 정도로 작디작은 변화가 시간이 흐르면서 한 지역을 초토화시키는 토네이도처럼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처음에는 과학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시작이 되는 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결과가 발생하는 상황을 설명하는 말로도 널리 쓰이고 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도 나비 효과의 예는 무궁무진하다. 단지 매일이 바쁜 우리가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고 사유하지 못한 까닭에 대상 간의 연결 고리들을 눈치채지 못할 뿐.


"강수량 차이로 인해서 서양은 독립된 개인이 중요한 사회가, 동양은 관계를 중요시하는 사회가 되었다."


당신이 이 문장을 마주했다고 치자.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가? 만약 그러지 못했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읽자마자 문장의 속뜻을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강수량과 동서양 문화 차이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공간에 담긴 세계를 읽다

하지만 답답해 하지는 마시라. 여기, 당신의 궁금증을 말끔히 해소시켜 줄 책이 있으니까. 대학에서 건축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건축가인 유현준 작가가 쓴 『공간이 만든 공간』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을 읽는 이는 언뜻 보면 서로 멀찍이 떨어져 존재하는 것만 같은 개념들 사이를 잇는 다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목도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 완성된 다리를 건너 하나의 공간에서 또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확장되는 이야기를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강수량과 동서양 문화 차이의 관계에 대한 문장을 예로 들어 보자. 저자는 세계의 문화권역이 연강수량 1천 밀리미터를 기준으로 벼농사를 짓는 지역과 밀농사를 짓는 지역으로 나누어진다고  설명한다. 벼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물이 많이 필요하고 밀농사에는 전자에서만큼은 물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흔히 동양으로 구분되는 지역에서는 주로 벼농사를, 서양으로 구분되는 지역에서는 주로 밀농사를 짓게 되었다. 이렇듯 지역의 강수량 차이는 농사를 짓는 품종의 차이를 만들었으며 농사 품종의 차이는 농사 방식의 차이로 이어졌고 농사 방식의 차이는 가치관의 차이에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자면, 공급되는 물의 양을 조절하기 위해 저수지나 보 등을 만드는 대규모 토목공사가 수반되어야 하는 벼농사를 위해서는 여러 명이 함께 힘을 합쳐야 했으므로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다. 반면 물 공급에 대한 걱정 없이 그저 땅에 씨를 뿌리면 자라나는 밀이라는 작물을 경작하는 지역에서는 혼자서도 농사를 짓는 것이 가능했으므로 자연스럽게 개인주의 성향이 싹텄다는 것이다. 저자는 기후의 차이와 더불어 가치관의 차이가 건축물에 영향을 미쳤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벼농사 지역에서는 외부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기둥 중심의 건축이 발전했고 밀농사를 짓는 지역에서는 창문이 작거나 아예 없는 벽 중심의, 외부와 단절된 형태의 건축이 발전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기후 차이에서 기인한 결과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각기 다른 건축 공간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행동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결국 사람들의 생각마저 변화시킨다는 데까지 이야기는 확장된다.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여러 가지 생각의 씨줄과 날줄이 오랜 시간 동안 엮여 만들어 내는 '문화의 카펫'에 그려진 '생각의 무늬'를 보여주려는 시도'를 했다고 한다. 과연,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 같았던 농업, 생태학, 철학, 역사, 예술, 건축 등 실로 다양한 분야의  주제들이 마치 씨줄과 날줄처럼 관계하며 자연스럽게 엮이는 광경에 독자는 몇 번이나 혀를 내두르게 되고 만다. 작가의 말마따나 이 책을 구성하는 27개의 챕터는 독립적으로도 존재하지만 전체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각각의 챕터를 읽는 동시에 앞뒤 이야기들과의 관계를 살펴가며 읽어야만 비로소 그 내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언급되는 분야들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독자라 하더라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글이 쉽고 재미있다는 점은 이 책의 큰 장점이다. 필요한 순간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자료 사진과 도면들도 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다만 워낙 방대한 분야를 넘나들며 이야기가 전개되고 그중 일부는 깊이 있는 연구에 근거한 것이 아닌 저자의 추측에 기반한 것이다 보니 책에서 다루어지는 모든 분야가 아주 깊이 있는 수준으로까지 언급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류는 제약을 넘어 자유롭게 상상을 펼치는 과정에서 기존의 세계를 한 단계 넘어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오지 않았던가. 최초 기후의 차이가 만들어낸 건축양식의 제약을 넘어서지 못했다면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는 카펜터 센터(Carpenter Center)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고, 루이스 칸(Louise I. Kahn)이 탄생시킨 소크 연구소(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의 도가식 중정에서 침묵이 주는 평안을 만끽하는 이들은 존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독자들도 자유로운 여정을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저자의 생각을 따라간다면 더없이 즐거운 책 읽기를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가까이에 꽂아 두고 종종 넘겨보고 싶어지는 책

언젠가 읽었던 유현준 작가의 인터뷰에서 그는 '지성은 쪼개진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먼 과거, 자연이 부여한 환경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삶을 시작한 우리 인간들은 그 안에서 용기 있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서로 다른 생각들을 융합해 가며 새로운 삶의 공간들을 일구어냈다. 동서양의 융합을 넘어 아날로그적 인간과 디지털 기계가 융합된 가상 신대륙이라는 낯선 공간으로의 항해를 시작하는 지금, 여러분들도 이 책을 가까이에 꽂아 두고 종종 넘겨보며 더 넓은 미래의 공간을 상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기고처]국립세종도서관 <정책이 보이는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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