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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Oct 18. 2020

과연, 그는 행복했을까?

스리랑카 시기리야를 오르며

기원 후 5세기경, 지금의 스리랑카 중부 지역에 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평민 출신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그는 귀족 출신 여인을 어머니로 둔 이복동생을, 그리고 그 이복동생을 자기 자신에 이어 왕의 자리에 앉힐지도 모를 제 아버지를 두려워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스스로 왕좌에 오르기로 결심한다.

결심은 실천에 옮겨졌고 그는 결국 꿈에 그리던 왕이 되었지만 두려움은 여전히 그를 따라다녔다. 누가 언제라도 자신을 쉬이 공격할 수 있는 평지에서는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없었던 그는 넓디넓은 평야 한가운데 우뚝 선 바위 꼭대기에 왕궁을 짓고 그 안으로 도망칠 결심을 한다.



지상으로부터의 높이가 200미터에 이르는 데다 사방이 온통 절벽 형태로 이루어진 거대한 화강암. 그 바위 꼭대기에 왕궁을 짓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왕궁이 지어진 지 몇 백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관람객들은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놓았을 길을 따라 바위산 꼭대기에까지 오를 수 있다. 만들어져 있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몹시 버거운 그 바위를 수많은 백성들이 왕궁을 지을 자재를 이고 지고 기어오르다 희생되었을 것이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7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은 결과, 바위산 꼭대기에 두려움에 휩싸인 왕을 위한 화려한 왕궁이 완성된다. 쿠데타를 통해 왕이 된 그는 다른 이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왕은 신뢰할 수 있는 극소수의 사람만을 데리고 바위산 꼭대기 왕궁으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바위산 아래에서 왕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돌을 깎아 만든 커다란 사자의 입을 통과해야 한다. 날카로운 발톱을 세운 채 포효하듯 입을 벌린 사자. 누가 보더라도 환영의 의미로는 해석하기 힘든 그 문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왕의 거처에 닿을 수 있었다. 왕은 그 바위 꼭대기에서 무려 11년을 살았다 한다. 그리고 이복형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며 나라를 떠났던 동생이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 오자 맞서 싸우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이승에서의 불행하고 불행했던 생을 마치고야 만다.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타인에게도 고통이었을 카샤파 1세(කාශ්‍යප රජ, Kashyapa I)가 머물렀던 바위산 위 왕궁은 '사자의 목구멍'이라는 의미의 시기리야(සීගිරිය, sigiriya)라 이름 지어졌다.



인간의 질투와 욕심의 처절한 말로를 대변하는듯한 시기리야에 올랐다. 스리랑카의 5월은 한국의 여름만큼이나 뜨거웠다. 타는듯한 햇살이 그대로 내리 꽂히는 바위산을 올라 드디어 카샤파 1세의 왕궁이 있었다던 꼭대기에 다다랐다. 한때 화려했었다던 왕궁은 이제는 자취를 감추고 그 터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바위산 꼭대기인지라 불화살처럼 달려드는 태양의 공격을 피할 곳은 없었다. 오르는 길, 외로운 왕의 즐거움이 되어주었을 바위에 그려진 여인 그림들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몇 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신기함도 잠시, 오르는 길 대부분은 고행길과도 같았음을 고백한다.


시기리야 왕궁터에서 360도 빙글빙글 돌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원시림을 연상시키는 깊고 진한 빛깔의 숲과 나무, 그리고 카샤파 1세 시기에 조성되었다는 연못이며 정원터가 내려다보였다.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풍광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오래전 이곳에서 살았던 왕은 이 풍경을 홀로 바라보며 과연 행복했을까?



◇ 여행팁 ◇

● 시기리야(සීගිරිය/ sigiriya)
바위산 위 왕궁터가 남아 있는 시기리야(시기리야 락)은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오르는 길에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으므로 모자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마실 물을 챙겨 올라가는 것이 좋다.
주소: Rock Front, Sigiriya 21120, Sri Lanka
입장료(외국인): $30
웹페이지: https://www.sigiriya.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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