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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Dec 11. 2023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이야기는 소설이 될 수 있을까?

『북호텔』 외젠 다비(원윤수 옮김), 민음사

『북호텔』 외젠 다비(원윤수 옮김), 민음사


이문구 작가님의 『관촌수필』, 오정희 작가님의 『중국인 거리』, 양귀자 작가님의 『원미동 사람들』, 은희경 작가님의 『새의 선물』. 네 작품의 공통점을 굳이 꼽아보자면, 지금보다 앞선 시대를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소박한 이야기를 엮은 연작소설이라는 점이다.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저 부르셨나요?) 프랑스의 작가 외젠 다비(Eugène Dabit, 1898. 9. 21. ~ 1936. 8. 21.)가 쓴 『북호텔』 또한 분명 재미있게 읽을 것이라 믿는다.


파리의 젖줄과도 같은 센 강의 북쪽 변두리에 생 마르탱 운하(Canal Saint-Martin)라 불리는 곳이 있다고 한다. 외젠 다비의 부모는 그 근처에서 북호텔(L’Hôtel du Nord)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숙박업소를 운영한 적이 있었는데 작가가 그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시킨 소설이 바로 『북호텔』이다.


전쟁 이후의 삶은 피폐할 수밖에 없다. 제1차 세계대전(1914 ~ 1918)이 막을 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20년대 파리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 도시에서도 특히, 가난한 노동자 계층이 주로 모여 살던 외곽 지역에 북호텔이라는 이름의 호텔이 있다. 호텔이라고는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그런 멋진 공간은 아니다. 장소를 지칭하는 단어가 민망할 정도로 작고 허름한 하숙집에 가까운 그곳이 바로 오늘 소개할 소설의 배경.


그녀는 이제 안심하는 것이었다. 북호텔을 방문한 일이 신비스럽게도 그녀 안에 젖어들어 연장되고 있었다. 그녀는 그러한 환경에서의 생활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이상한 일에 부닥치고 마는 것이나 아닐까? 아냐! 어떠한 생활이라도 살아볼 만한 값어치는 있는 것이야. 그리고 미지의 세계란 노상 재미없이 해로운 것도 아니니까. 우리들은 여태껏 지나칠 만큼 경멸을 당해 왔다. 왜냐하면 지붕 밑 셋방에서 생활을 해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리를 친척 친지라곤 아무도 없는 가난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어. ‘모든 것이 다 변할 거야. 이제부터는.’ 하고 그녀는 생각한다.


시골 출신인 르쿠브뢰르 부부는 더 나은 기회를 좇아 파리로 건너왔지만 평생 어렵고 돈 안 되는 일만 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던 중 친척의 도움으로 파리의 변두리에 있는 작은 호텔 하나를 구입하게 된다. 미래에 대한 장밋빛 기대에 부푼 그들의 눈으로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상태의 건물이었으나 그들은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새 출발을 할 결심을 한다. 그들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말할 것 같으면, 하루 이틀 머물다 가는 뜨내기 여행자보다는 어디 다른 데로는 갈 여유가 없는 까닭에 오랜 기간 동안 같은 장소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이들이 모인 공간. 방세가 저렴한 만큼 딱 그만큼만 가까스로 부담할 수 있는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아가는 그런 곳이다. 연작소설 형태의 이 작품은 숙박객 한 명 한 명을 잠시간 주인공으로 끌어들여 그들의 삶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자전적인 소설인 만큼, 작가의 삶과 소설 속 이야기에는 겹쳐지는 부분이 많다. 실제로 그의 부모는 각각 붕대와 부채를 팔면서 살아가던 중 파리 외곽 강변에 있는 값싼 호텔을 구입해 ‘북호텔’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했었다고 한다. 시대가 시대이고 장소가 장소인 만큼 아마도 소설 속 같은 이름의 호텔에서 그려지는 풍경과 작가가 살았던 현실 속 풍경은 대동소이했으리라.


글 전체의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35개의 장으로 나뉘어 구성된 이 소설은 한 장 한 장이 3 ~ 4페이지 정도로 상당히 짧은 편이며 각 장에서는 호텔 주인인 르퀴브뢰르 부부, 혹은 북호텔에 머물거나 드나드는 인물들을 둘러싼 이야기가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 그려지는 덕분에 독자는 마치 호텔 한구석에 설치된 CCTV를 훔쳐보는 듯하다. 그렇게 편견 없는 상태로 사건을 전달받으니 나름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해석하는 즐거움은 독자의 몫이다.


다 같이 어렵고 다 같이 힘들었던 시대의 이야기. 그러나 인생의 작디작은 것들에서도 용기와 즐거움을 얻고 어제처럼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꾸준히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엮은 소설을 좋아하기에 같은 이유에서 나는 이 작품도 만족스러웠다. 까탈스러운 독자로서 굳이 아쉬운 부분을 짚어보자면, ‘것이다’로 끝맺는 문장이 과도하게 많아 읽는 내내 조금 껄끄러웠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언젠가 꼭 다시 한번 읽어보게 될 것 같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이야기의 서두, 르쿠브뢰르 가족이 호텔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전달되는 서툴고 조심스럽지만 터질듯한 기쁨과 소설 마지막 부분의 쓸쓸한 분위기가 특히나 마음을 두드렸다.


어느 날 아침 청부업자가 이젠 거기에 있으면 안 된다고 그녀에게 일러 주었다. 인부들이 돌벽을 부수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온순하게 길을 건너가서 호텔이 보이는 감시 초소의 벤치 위에 앉았다.

호텔은 회반죽 벽토와 낡은 골조로 건축되어 있었다. 인부들은 샹숑을 부르며 곡괭이와 철추들로 장비를 하고 굉장한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리는 벽면들을 헐어 냈다. 벽토 부스러기는 안뜰에 떨어져서 라투슈가 버리고 간 두 대의 짐마차 위에 마치 눈처럼 덮였다.

계단과 복도들은 침침한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28호실을 하고 있군…… 이번엔 27호실.”하고 루이스는 중얼댔다.


* 책에서 발췌한 부분은 파란 글씨로 표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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