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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Dec 15. 2023

다른 삶

아미쉬 빌리지, 18세기를 살아가는 21세기 사람들의 마을

아미쉬

펜실베이니아주(州)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물었다. 집에서 근처 동네인 OO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리느냐고. 내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을 듣고 한참을 웃었다.


“10분. 하지만 가는 길에 아미쉬가 있으면 30분.”


미국에서 지내던 시절, 우리 집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남짓이면 닿는 거리에 아주 특별한 마을이 있었다. 지리적으로는 펜실베이니아주 랭캐스터 카운티에 속한 그곳은 아미쉬(Amish)라고 불리는 이들이 모여 사는 까닭에 아미쉬 빌리지(Amish Village)*라 이름 붙여진 동네다. 도대체 그들이 누구이길래 이름까지 딴 마을이 생겨난 것일까?


간단히 말하자면 아미쉬들은 기독교의 한 종파를 믿는 이들이다. 1693년 스위스에서 야콥 암만(Jakob Ammann)이라는 인물이 이끈 종파 분립 결과, 그를 따르는 이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종교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는데 유럽에서 북아메리카로 건너온 이후, 미국의 펜실베이니아주와 오하이오주, 인디애나주, 뉴욕주, 그리고 캐나다의 온타리오주에서 그들만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같은 종교를 믿는 이들끼리만 한 지역에 모여 사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닐 테지만, 아미쉬를 특별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들이 21세기 일반적인 삶과는 조금 다른 삶의 방식을 택했기 때문일 것이다.


* 펜실베이니아 랭캐스터 카운티 아미쉬 빌리지: 미국에서 가장 큰 아미쉬들의 커뮤니티다. 마을 초입 관광안내소 또는 공식 웹페이지(https://www.amishvillage.com)에서 투어 상품을 예약할 수 있으며 투어에 참여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마을을 둘러볼 수 있다.


18세기를 살아가는 21세기 사람들

어느 가을날이었다. 창문 너머 어서 이리 오라 유혹하는 아름다운 계절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한 우리 부부는 친구도 만날 겸 아미쉬들의 삶도 엿볼 겸, 펜실베이니아주를 향해 운전대를 잡았다. 그런데 높은 하늘과 청명한 바람을 벗 삼아 신나게 달리던 우리는 목적지를 코앞에 둔 어느 시골길에서 갑작스레 교통 정체를 맞닥뜨렸다. 왕복 2차선, 넓지 않은 도로이긴 했지만 어차피 시골이라 교통량이 많지도 않은데 왜 다들 거북이걸음인 것일까? 궁금한 마음에 고개를 쭉 빼고 앞을 살폈다. 이유는 머지않아 밝혀졌다.


이래서 30분


아미쉬들은 전통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지키며 살아간다 했다. 너도 나도 더 빠른 이동수단을 원하는 21세기에 그들은 버기(buggy)라 불리는 마차를 타고 있었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나는 내 속도로 내 갈 길 가겠소.’라는 태도로 느리게 움직이는 구식 마차를 처음 본 순간, 어찌나 신기하고 재미있던지. 솔직히 말하자면 아미쉬 빌리지를 처음 방문했던 날에는 관광지로 운영되는 다른 민속마을들이 그러하듯 방문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몇몇 사람들이 일부러 전통 의상을 입고 말이 끄는 버기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마을을 구석구석 둘러보다 보니 아, 이건 진짜로구나 싶었다. 상점에 가면 그 주변으로는 관광객들이 타고 온 자동차들과 아미쉬들이 몰고 온 버기들이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 있었다. 주인이 장 보러 들어간 사이 버기에 매인 말들은 햇볕을 쬐다 갑자기 제 영역표시라도 하려는 것인지 주차장에 똥까지 푸짐하게 싸곤 했는데 그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것은 우리 같은 관광객뿐인 듯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검소한 디자인과 색상의 아미쉬 전통 복장을 입고 장을 보거나 물건을 팔았고 길 가다 보이는 그들의 집 마당에서는 닭들이 꼬꼬 거리며 무언가를 쪼아 먹고 있었다. 낮은 담장 너머로 빨랫줄이 길게 늘어져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거기에 줄지어 매달린 빨래들은 가을바람에 한들한들 춤을 추고 있었다. 


아미쉬들은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대부분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고, 성인 여성들은 두건 같은 것을 쓰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 모든 것들은 집에서 직접 만든 옷들이라 했다. 이들은 의상뿐 아니라 생활 전반에 있어서도 전기나 자동차 같은 혜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는데, 그 바탕에는 현대 문명의 이기 없이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는 것이리라. 간혹 핸드폰을 사용하는 아미쉬들도 존재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한 번은 중남미를 여행하던 중에 (아마도 비행기를 타고) 거기까지 여행을 온 아미쉬 가족을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은 마을 밖 사람들에 비해 현대문명의 혜택을 덜 갈구하면서 단순하고 검소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아미쉬 빌리지에서 만난 아미쉬 모녀


아미쉬 가족의 마당에 마련된 개러지 세일에 간 적이 있었다. 내놓은 물건들을 살펴보니 정말 오랜 세월 동안 사용해 온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이 대다수였다. 도대체 저런 건 누가 사갈까 싶은 물건들도 많았지만 파는 이들도 사는 이들도 그리 진지할 수가 없었다. 동네 주민들처럼 보이는 아미쉬들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부부 같은 여행자들도 진흙 속에 숨겨진 진주를 캐는 마음으로 손때 묻은 정다운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풍경이 지금까지도 따스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10대가 되면 아미쉬들은 자신들의 마을 밖 세상을 직접 경험해 보기 위해 짧은 여행을 떠난다. 그 경험을 토대로 고향에 남아 이전 세대가 그러했듯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갈지 아니면 이 커뮤니티를 뒤로 하고 바깥세상으로 나갈지 결정을 하기 위해서란다. 아미쉬 빌리지에서 만난 농부 소년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딱 봐도 10대 중반쯤이나 되었을까. 참으로 앳된 얼굴이었다. 이 마을에서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돕기 시작한다고 하니 소년 혼자서 그 넓은 땅을 능숙하게 오가던 것은 아마도 나이답지 않은 연륜 덕분이었을 것이다. 지금쯤이면 그도 잠시간 다른 세상을 구경한 이후일 테지. 그 여행 후 소년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말이 끄는 버기를 몰고 장을 보러 왔던 맨발의 아미쉬 소녀도 아직 같은 마을에 그대로 살고 있을까?


아미쉬 빌리지에서 만난 소년과 소녀는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을까?


다른 삶

이제는 제법 머리가 굵어진 나의 아이와 ‘틀리다’와 ‘다르다’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사전적 의미를 짚어보자면 전자는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다’라는 의미이고 후자는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않다’는 의미다. 하지만 종종 우리는 그 둘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 채 익숙하지 않은 것은 그것의 옳고 그름을 가릴 새도 없이 틀리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존재한다. 나는 나의 아이가 틀린 것과 다른 것을 올바르게 구분해 가며 이 넓은 세상을 더 넓게 보며 자라나기를 소망한다. 오랜만에 나도 아미쉬들의 ‘다른 삶’을 떠올리며 그래, 그들의 삶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지라고 되뇌어 보았다.


2013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아미쉬 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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