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게 정리된 집에서 살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렇다. 빨래는 바싹 마르는 순간 착착 개어 옷장에 넣고 음식을 먹고 나면 미루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설거지를 해 더러워진 그릇이 내 눈앞에 보이지 않게 하고 싶다. 사용하지 않을 물건은 테이블 위에 놓여있지 않으면 좋겠고 액자마저도 수평, 수직 각을 맞춰 걸려 있는 모습을 봐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하지만 이런 나의 희망과는 정반대로 최근 몇 주 간 우리 집은 난장판 그 자체였다. 다시 한번의 국제이사를 앞두고 있었으니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결혼 직후부터 이제껏 우리 부부가 거쳐간 집은 열 한 곳이나 된다. 셀 때마다 이사의 기준이 조금씩 달라 열 번인지 열한 번인지 이제는 나조차 헷갈리지만 조금 전에 다시 한번 차근차근 손가락을 꼽아 보니 맞는 것 같다. 새로운 보금자리에 도착할 때까지 애매하게 남는 시간 동안 당장 필요한 짐을 커다란 이민 가방 몇 개에 쑤셔 넣고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달에 이르는 기간 동안 임시 숙소를 전전했던 횟수까지 포함하면 딱 열한 번. 그러니 함께 살아온 지 십 이년이 되는 시점에 우리 부부는 열두 번째 이사를 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다행히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어 수많은 이사와 함께 이사를 대하는 마음의 숙련도도 올라갔는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한국의 서울로 옮겨가는 국제이사를 앞두고도 특별히 걱정되거나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우리 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나를 맞이하는 것이 남편의 키보다도 더 큰 커다란 이삿짐 박스라는 사실과 집안 여기저기에 정리를 기다리는 물건들이 흩어져 있다는 현실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을 뿐. 아! 그리고 나를 힘들게 만든 게 또 하나 있다면 이제는 내 배가 제법 불러와 일을 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아이고 끙 소리가 절로 나왔다는 것.
사흘 전 저녁, 우리 가족은 서울로 돌아왔다. 이 도시에서 시작된 우리 가정은 미국 생활을 거치며 셋이 되었고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생활하는 과정에서 네 번째 멤버를 품고 시작점이었던 대한민국 서울로 되돌아온 것이다. 원한다고 노래 노래를 불렀던 동생이 진짜로 태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던 여행이는 다행히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다. 아직도 가끔씩 우리 집에 자기 말고 또 다른 귀여운 존재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지 지난 몇 년 동안 안 하던 혀 짧은 말투로 말을 하거나 엄마 무릎에 앉아서 밥을 먹고 싶다고 우기기도 하지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불룩 나온 내 배를 어루만지며 동생에게 다정하게 말을 거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렇게 또 하나의 구성원이 우리 가족의 삶으로 스며들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안심이 된다. 맞벌이 가정 한 아이의 아빠에서 외벌이 가정 두 아이의 아빠가 된 탓에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을 남편은, 마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아들 바보에 이어 딸 바보를 예약해 둔 이 착한 남자의 표정은 둘째 탄생을 향한 기대감을 도저히 숨길 수 없는 듯하다. 그리고 요즘의 난,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것만 같은 배 때문에 내가 정말로 아이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매 순간 실감하며 지내고 있다. 바다의 몸집이 커져서 그런지 이제는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소화불량 초기 단계처럼 배가 불러와 숨을 쉬기 힘들다. 바닥에 놓여 있는 물건을 집어 들기 위해 몸을 숙이는 것도 전처럼 쉽지 않고 그다지 무겁지도 않은 물건을 들고도 나도 모르게 아이고 소리를 내고 만다. 밤에 잠을 잘 때조차도 위쪽을 향해 반듯하게 눕는 것은 어렵고 그렇다고 옆으로 누워 자다 보면 바닥에 닿는 부분이 저리는 등 불편한 것 투성이지만, 그래도 나는 내 뱃속에서 건강히 자라나는 바다를 느끼며 살아가는 요즘의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이렇게 우리 셋은 새로운 멤버를 맞이할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
“100개만큼의 사랑이 있어. 지금까지는 엄마랑 아빠가 100개를 다 너에게 주었는데 동생이 태어났다고 해서 너에게는 50개만 주고 동생에게 50개를 주는 건 아니야. 동생의 탄생과 함께 100개의 사랑이 더 생기는 거야. 그래서 너도 예전이랑 똑같이 100개의 사랑을 받고 네 동생도 너처럼 100개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는 거야. 엄마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얼마 전, 여행이와 나란히 앉아 보스 베이비라는 영화를 보던 중 아이가 긴장하는 것 같아 보이길래 아이에게 해주었던 말이다. 내 말을 들은 여행이는 “100개의 사랑, 100개의 사랑…”이라고 되뇌더니 기쁜 표정을 함빡 머금고는 나를 꼭 안았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서로 다른 존재라는 사실은 틀림이 없다. 하나의 사과나무에서 난 열매라 해도 어떤 것은 조금 작고 둥글고 또 어떤 것은 조금 더 크지만 덜 둥근 것처럼 여행이와 바다도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자라나겠지. 엄마도 사람인지라 어떤 날은 한 아이가 또 어떤 날은 다른 아이가 더 예뻐 보이는 날도 있겠지만 두 아이 각자의 생김새와 삶을 존중해 주고 두 아이 모두에게 100개의 사랑을 고루 나누어 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이제 두 아이를 동시에 마주할 날까지 딱 두 달이 남았다. 둘째 아이의 탄생과 함께 이제는 셋에서 넷이 될 우리 가족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서로를 보듬어 안고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그날을 맞이하는 마음을 잘 가꾸면서 남은 시간을 보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