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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Feb 04. 2024

어느새 봄

입춘(立春). 봄이 시작되는 날.


2월 4일인 오늘, 나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2024년의 봄을 맞이하고 있다. 내 안에서 둘째, 바다를 키워내며 지난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을 보냈고 브런치북 한 권을 완성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임신 31주를 지나고 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궁도 경험해 본 일을 더 수월하게 하는 것일까? 둘째 때는 첫째를 가졌을 때에 비해 일찍부터 배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제 나는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조차 놀랄 정도의 D라인 몸매를 갖추고 있다. 기온이 조금 올라간 날이면 나, 이 정도면 아직 날씬하지 않나라고 생각하며 두꺼운 패딩 대신 그보다 얇은 코트를 꺼내 떨쳐입어 보지만 연분홍색 코트를 차려입고도 유려한 라인을 숨기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본 여행이는 "엄마, 뱃속에 축구공 숨기고 다니는 것 같아!"라며 해맑게 이야기한다. 굳이! 남편은 또 어떠한가. 불룩 나온 배를 하고도 뒤뚱뒤뚱 기운차게 돌아다니는 나를 향해 곰돌이 푸 같다는 덕담을 던졌지. 고오맙다, 여보야.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보인다는 거지? 귀엽다는 칭찬으로 받아들이겠다


임신 초기에는 노산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한번 유산을 겪었다는 이유로 걱정에 휩싸여 밤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그러더니 임신 중기를 지나면서부터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반드시 한 두 번은 자다 다. 이런 생활이 반년 이상 지속되다 보니 이골이 났는지 다음 날에도 다행히 많이 피곤하지는 않다. 차라리 잘 되었지 뭐야. 바다가 태어나면 어차피 몇 달 동안은 밤에 몇 번이고 일어나 수유를 해야 할 텐데 미리 준비하는 거지, 뭐.


그런데 사실 요즘, 밤에 눈을 뜨면 화장실에 다녀오고 난 후로도 이런저런 고민 때문에 다시 잠들지 못하고 있긴 하다. 이제 곧 여행이도 초등학교 고학년이니 한국으로 돌아오면 다시 나의 풀타임 일자리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두 달 후에 바다가 태어나면 모든 것이 리셋, 나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구나. 바다가 기본적인 앞가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키워놓고 나면 나는 오십 대 아줌마가 되어있을 텐데 그때 어떤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 그나저나 대놓고 투정은 못 부린대도 두 아이에 와이프까지 책임져야 하는 외벌이 가장이 된 나의 남편은 이 상황이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자아실현도 하고 경제적으로도 보탬이 되어보겠다고 꾸준히 글을 쓰고는 있지만 내가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고 지금 이대로는 그저 아등바등하는 남편 곁에서 룰루랄라 자아실현이나 하고 있는 수준인데... 남편에게 가정 경제에 대한 짐을 혼자 짊어지게 하고 싶지는 않은데 어쩌지?


사실 감사할 일을 헤아리자면 수도 없이 찾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밤은,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온갖 두려움과 걱정거리들을 꼬드겨 세상 속으로 불러내오는 힘을 지닌듯하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게 행동을 동반하지 않은 걱정이건만!


오늘 밤에도 화장실 때문에 잠에서 깼다가 다시 잠 못 이루고 이런저런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다가 실타래처럼 엉킨 생각을 글로 옮겨 보면 내 마음도 조금쯤은 정리되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품고 글을 써본다. 이 와중에 해결법으로 또 글쓰기를 떠올린 걸 보면 글을 쓰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요, 잘할 수 있는 일인 게 맞긴 한가 보다. 그렇다면 이 분야에서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무얼까?


어느샌가 봄이다. 올봄이 지나기 전에 두리뭉실한 나의 미래를 조금 더 뾰족하게 만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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