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베트남은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비교적 저렴한 물가, 친절한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까지. 톡 까놓고 말하자면 베트남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멈추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베트남의 많은 지역들이 한국인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다낭과 호이안의 조합은 단연 최고일 것이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릴 테지만 나만 해도 베트남에서 가장 처음 방문했던 다낭과 호이안이 기억 속에 가장 깊이 아로새겨져 있는 게 사실이기도 하고. 이제와 뒤돌아보면 참으로 풋풋했던 나와 남편이 처음으로 함께 방문했던 베트남, 난생처음 머물렀던 풀빌라부터 길거리 조그만 플라스틱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먹었던 쌀국수 한 그릇까지, 그 어느 하나 그립지 않은 기억이 없다. 다낭이 기본적으로는 휴양지인 터라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리조트에서 보냈지만 시간을 쪼개 다녀왔던 호이안과 다낭 도심에서 만난 베트남의 문화적 정수들도 우리의 여행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 부부가 함께 했던 첫 베트남 여행의 목적지는 다낭과 호이안이었다
참파왕국(Champa)은 베트남 중남부 해안지방을 중심으로 6세기부터 16세기까지 번성했던 고대왕국이다. 인도네시아계 참족이 주축이 되어 세워진 이 나라는 자바인과 캄보디아 앙코르의 크메르인, 그리고 지금의 베트남 북부지역에 세를 두고 있던 비엣인들과 교류하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이들은 사암을 이용해 조각을 하고 벽돌을 쌓아 건축물을 짓는 솜씨가 특히나 뛰어났다고 전해지는데 오랜 세월 동안 무관심과 전쟁으로 인해 유물의 상당수가 소실되었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지만 다행히 남아 있는 참파왕국의 유물을 보존하고 있는 곳이 있다. 지금부터 함께 살펴볼 참조각박물관(Bảo tàng Nghệ thuật điêu khắc Chăm Đà Nẵng, Da Nang Museum of Cham Sculpture)이 바로 그곳이다.
베트남 다낭를 가로지르는 한강(Sông Hàn)가에 위치한 참조각박물관은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참파유적 전문 박물관으로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 하에 있던 1919년 개관했다. 저명한 고고학자이자 참파왕국의 유물 보존을 위해 애쓴 앙리 파르망티에(Henri Parmentier)의 이름을 따 처음에는 앙리 파르망티에 박물관(Musée Henri Parmentier)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한 후 두 차례의 확장공사를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한다. 두 명의 프랑스인 건축가가 참파양식을 반영해지었다는 건물은 소박했지만 덕분에 과거로의 여행이 실제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분명 있다.
참조각박물관
참조각박물관은 전 세계를 통틀어 참파왕국의 유물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이란다. 참고로 프랑스 파리 기메박물관, 베트남 호치민 베트남역사박물관, 하노이 역사박물관에서도 참파유적을 만나볼 수 있다. 박물관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대부분의 전시품이 돌로 만든 조각 형태였다. 물론 참파인들이 나무 등 다른 물체에도 그림이나 글을 새겼다는 기록이 있지만 덥고 습한 기후 때문에 나무처럼 쉽게 상하는 재료로 만들어진 것은 살아남지 못했고 결국 사암으로 만든 조각품들만 오랜 세월을 이겨 내 오늘날 우리 앞에 서 있다는 설명이었다. 기후가 조금만 달랐더라도, 보관상태가 조금만 더 좋았더라도... 아쉬운 점은 분명 있지만 그래도 감사한 마음을 담아 긴 세월을 살아낸 전시품들을 둘러보았다.
조각품 대분분은 힌두교와 불교의 신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었다. 시바, 비슈누, 데비, 브라마 등이 전시실을 채우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단순 장식용이 아닌 종교적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많은 것의 이유를 알지 못했고 많은 것을 통제하지 못했던 그 시대인들에게 신이란 아마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 존재였을 것이 분명하다.
참조각박물관은 전 세계를 통틀어 참파왕국의 유물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이라고 한다
참조각박물관 내부
참조각박물관에는 신들을 조각한 유물과 더불어 당대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조각들도 있다. 코끼리 조각상이 한 예다. 참파왕국에서 코끼리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사람의 일을 곁에서 돕고 그러다 사람에게 친근한 감정까지도 불어넣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그만큼 사람과 가까웠던 동물이기에 코끼리 조각상도 여럿 남아 있다. 코끼리에 대한 참파인들의 애정은 신적인 영역으로까지 확대되는데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코끼리신의 조각품은 유독 정겨운 표정을 하고 있었고 참파 조각 박물관을 다녀온 지 꽨 오랜 시간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그 모습은 내 마음속에 남아 다낭에서 보낸 며칠을 추억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