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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Mar 16. 2024

여행을 추억하는 방법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기억하게 하는 존재들

저는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면요,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선생님이 나누어 주신 종이에 장래희망을 적어내야 하는 날들이 있었다. 저학년 때는 그 질문에 무어라 대답을 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고학년 즈음의 대답은 기억이 난다. 유전공학박사. 쪼그만 게 어디에서 주워들은 건 있어가지고... 솔직히 말하자면 난, 유전공학박사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해석도 못 할 외국어가 쓰인 티셔츠를 사 입던 마음이랑 비슷했던 걸까? 발음부터가 쉽지 않고 의미조차 애매모호하게 느껴지던 그 단어가 주는 우월감을 미래의 내 모습에 덧입히면서, 어린 나는 꽤나 흡족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되고 싶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다름 아닌 화가였다. 그 시절의 나는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동생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악기를 진지하게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음악에 재능이 있었던 그 애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는 아예 전공을 염두에 두고 레슨까지 받게 되었는데 언뜻 엿들은 악기 가격이며 레슨비를 대충 계산해 보니 돈이 상당히 많이 드는 것 같았다. 그 상황에서 나까지 예체능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만약 그랬다면 엄마, 아빠는 어떻게든 도와주셨을 것 같긴 하지만 K장녀는 결국, 부모님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 대신 그림 보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리고 그 결심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술관 데이트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감사한 은, 나의 배우자가 나만큼,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나보다 더 그림 감상을 즐긴다는 사실이다. 신혼시절부터 우리는 함께 미술관 데이트를 즐겼특히나 여행지에서는 일정에 꼭 미술관 방문을 넣으려 애써왔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Санкт-Петербург, Saint Petersburg)를 여행하던 날도 우리의 발걸음은 어김없이 미술관으로 향했다. 섬과 운하, 그리고 수 백에 이르는 다리들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러시아의 베네치아로도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그것 하나만을 바라보고 방문해도 될 만큼 어마어마한 미술관이 있으니까!


예르미타시 미술관

예르미타시 미술관(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Hermitage Museum)은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힌다. 무려 1764년에 개관한 이곳은 3백만 개 이상의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는데 규모로 보나 소장품의 질적 수준으로 보나 세계를 대표하는 박물관이라는 수식어가 과하지 않은 장소 할 만하다.


(좌)예카테리나 2세 (우)라스트렐리


시작은 1754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러시아 제국의 황후이자 여제였던 예카테리나 2세(Екатерина II Великая, Elizabeth Petrovna)의 지시에 따라 라스트렐리(Bartolommeo Francesco Rastrelli)라는 건축가가 바로크 양식의 겨울궁전을 짓기 시작했다. 유럽의 다른 화려한 궁전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었던 여제는 엄청난 돈과 자국의 내로라하는 장인들을 포함한 40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장장 8년에 걸친 공사에 투입했고 (물론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화려하게 치장된 수 백개의 방을 갖춘 겨울궁전을 완성해 냈다. 장소의 이름에 얽힌 사연도 흥미롭다. 프랑스어인 예르미타시(hermitage)는 고대 그리스어로 은둔자를 뜻하는 eremites라는 단어에서 기원한다. 처음 미술관이 문을 열었을 때는 이곳을 대중에게 공개할 계획이 없었단다. 예카테리나 2세가 수집한 미술품을 전시했던 여왕의 전용 미술관으로 시작되었기에 소수의 인원에게만 공개된 (은둔의) 장소라는 의미를 담아 그렇게 이름 지었다는 설명이었. 참고로 예르미타시가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오늘날의 예르미타시 미술관은 겨울궁전뿐 아니라 근처의 많은 건물을 포함하는 대규모 미술관이 되었다. 하루이틀 만에는 절대 다 살펴보지 못할 어마어마한 규모에 입을 떠 벌어지게 만드는 컬렉션을 갖춘 곳이지만 우리 가족이 이 공간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일정상 단 하루뿐이었다는 사실이 뒤돌아 생각해 봐도 아쉬울 따름이다.


자! 지금이다! 여행이가 낮잠을 자는 사이, 우리 부부는 트렁크를 채울 그림을 샀다


미술관 관람의 백미?

예카테리나 2세만큼은 아니지만 그림 보는 것을 즐기고 때로는 직접 그림을 구매해 집안 이곳저곳을 장식하기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방문을 앞두고 일부러 커다란 여행가방 하나를 비워서 가져갔다. 하늘이 도우사 마침 러시아 루블화 환율까지 우릴 미소 짓게 하는 상황이었기에 예르미타시 미술관 기념품숍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잔뜩   트렁크를 가득 채워오겠다는 계획을 안고 나선 길이었다.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드넓은 예르미타시를 누비던 우리 부부는 여행이가 낮잠을 자기 시작하자마자 서로를 바라봤다. "지금이다!!!" 그리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둘은 아이가 누워 있는 유모차를 전속력으로 밀고 끌며 1층에 자리한 기념품숍으로 달려갔다. 와, 이럴 땐 참 몸도 마음도 착착 들어맞는단 말이야. 우리 어쩜 이렇게 잘 만났지? 당시, 우리 집 효자는 한 번 낮잠을 자기 시작하면 두세 시간은 꿈나라였던지라 나와 남편은 여유롭게 가게를 둘러보며 그림 쇼핑을 했다. 미술관에 있는 상점답게 그림이 아주 많았는데 우리 둘은 그 많은 걸 한 장도 빼놓지 않고 몇 번씩이나 들춰가며 꼼꼼하게 살펴보고 그것이 한국의 우리 집에 걸릴 모습까지 상상해 가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을 추억하는 방법

캔버스에 인쇄한 덕분에 종이에 인쇄한 그림보다 고급스럽게 보이는 데다 착한 루블화 환율 덕분에 기대이상으로 저렴하게 구입했던 그림들. 서울의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우린 그것들을 액자에 끼워 집안 이곳저곳에 걸거나 올려두고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을 추억하곤 했었다. 뿐만 아니라, 아랍에미리트로 보금자리를 옮겨 가면서도 우린 예르미타시에서 구입한 그림 몇 점을 싸가지고 가 두바이의 우리 집을 장식했었다.


사막의 나라에서 보낸, 이제는 신기루처럼 느껴지는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 우리는 바리바리 싸들고 갔던 짐들을 다시금 정리해 국제이삿짐에 넣었다. 그리고 지난주, 그 짐들이 드디어 한국의 인천항에 도착을 했다. 어두컴컴한 컨테이너 안에서 빛 볼 날을 고대하고 있을 그림과 액자들. 그 아이들을 다시 만나게 되면 우리는 그것들을 또다시 집안 곳곳에 고이 걸어 두고 종종 바라보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보낸 우리 가족의 시간을 추억할 것이다.


2018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예르미타시 미술관 앞 광장에서. 이렇게 조그만 아이가 하루 종일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냈네...
어린이용 망원경 없었으면 예르미타시에서 어쩔 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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