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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Mar 22. 2024

봄길이 꽃길

미국 워싱턴 DC 벚꽃축제의 추억

겨울이 가면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

 초 우리 가족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를 뒤로 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지난 몇 년 간 정이 많이 들었던 사람들이며 장소들에 대한 그리운 마음 때문에 자칫하면 감상에 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난, 두바이 국제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도 눈물을 찔끔거렸으니까. 하지만 한국의 겨울 날씨는 인정사정 봐주는 법 없이 지난 몇 년 동안 따스함을 넘어 불타오르는 날씨에 적응한 우리들을 맞이했다. 두바이를 떠나던 날의 현지 기온 영상 25도, 우리가 서울로 돌아온 다음 날 이 도시의 기온은 영하 14도. 하룻밤 사이에 무려 사십 도 가까이를 넘나드는 극한 체험을 하고 나니 감상이고 뭐고 정신을 똑바로 차릴 수밖에. 이유미, 정신 차리고 옷 단디 챙겨 입어! 안 그러면 얼어 죽어!!


다시 마주한 한국의 겨울은 말로는 표현을 못 할 정도로 혹독했다. 하지만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인 것일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 주, 두 주가 지나면서 일 년 내내 반팔만 입고도 덥다 소리를 입에 달고 살던 우리 가족도 스웨터 위에 두툼한 점퍼까지 껴입고 살아야 하는 환경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곧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는 기대가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벚꽃축제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겨울이 지나고 나면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 각양각색의 꽃이며 연둣빛 잎을 수줍게 틔워내는 나무들을 거닐고 다가와 우리의 삶을 가만히 노크하는 그 손님은 다름 아닌 봄. 언젠가부터 벚꽃 없는 봄은 상상할 수 없게 되어버렸는데 그것은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도 예외는 아니어서 봄이 찾아오면 벚꽃축제(National Cherry Blossom Festival)로 도시 전체가 들썩인다. 이 도시를 대표하는 행사를 넘어 미 전역을 통틀어서도 가장 성대하게 치러지는 봄맞이 행사로 자리매김한 워싱턴 DC 벚꽃축제는, 사실은 미국과 일본, 두 나라 사이의 우호증진을 목표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시작은 19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도쿄의 시장이었던 유키오 오자키는 워싱턴 DC에 3,000그루의 벚나무를 선물했다. 그것을 받은 미국이 이를 기념하고 일본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돈독하게 유지하기 위해 매년 벚꽃축제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고.


워싱턴 DC 벚꽃축제는 일본인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힘입어 진행된다. 일본 정부가 자국의 문화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이벤트를 펼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일본 기업들의 적극적인 후원 또한 오랜 기간 동안 축제가 이어져 올 수 있도록 하는데 큰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이쯤이면 겉으로 보기에는 미국인들의 축제이지만 안을 들여다 보면 미국에 일본이라는 나라와 그 문화를 알리기 위해 진행되는 행사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듯하다.


워싱턴 DC 도심에서 진행되는 벚꽃축제 퍼레이드
미스 벚꽃!
차에 타신 분은 당시 주미 일본대사였던가?
일본 느낌 물씬 풍기는 퍼레이드의 한 장면
일본 느낌 물씬 풍기는 퍼레이드의 한 장면


워싱턴 DC에서 즐기는 벚꽃축제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퍼레이드라길래 나와 남편명당자리를 찾아 일찌감치 거리로 나섰다. 벚꽃축제 기간 동안 거리에서는 기모노나 유카타를 차려입은 미국인들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었다. 그들 사이에 섞여 축제를 즐기면서도 나의 마음 한편에서는 지금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멀리 내다 보고 문화외교를 펼치는 일본이 부럽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고개를 들었다.


자, 그렇다면 이 역사 깊은 벚꽃축제를 즐기기 좋은 장소는 어디일까? 워싱턴 DC에서 벚꽃이 가장 화려하게 피어나는 장소는 세 곳이라고 한다. 웨스트 포토맥 공원의 타이덜 베이신(Tidal Basin), 이스트 포토맥 공원의 하인스 포인트(Hains Point), 그리고 워싱턴 모뉴먼트(Washington Monument)가 있는 지역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추천하고픈 곳은 단연 타이덜 베이신 지역으로 강 건너 워싱턴 모뉴먼트를 바라보며 화려한 벚꽃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에 매년 축제 기간이면 서울의 여의도 벚꽃 축제 버금가는 인파로 몸살을 앓을 정도다. 당연히 주차 문제도 심각하니 가급적이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타이덜 베이신에서 즐기는 워싱턴 DC 벚꽃축제
타이덜 베이신에서 즐기는 워싱턴 DC 벚꽃축제. 강 너머로 워싱턴 모뉴먼트가 보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벚꽃축제를 구경하다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지면 포토맥 강가의 어시장으로 향해도 좋겠다. 축제 장소로부터 걸어서 쉽게 가 닿을 수 있는 이곳에서 신선한 해산물로 배를 채우는 재미는 기대 이상의 만족을 선사한다. 당연히 레스토랑보다 음식 가격도 훨씬 저렴한 데다 눈이 시리도록 어여쁜 봄 풍경을 배경으로 아직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즉석에서 요리해 낸 해산물을 먹는 맛이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던가? 먹고 보자, 벚꽃축제


2024년의 벚꽃축제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문득, 워싱턴 DC에서 즐겼던 벚꽃축제가 떠올랐다. 최근의 몇 년을 보낸 두바이도 아니고 왜 하필 워싱턴 DC였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도시에서 지내던 시절, 내가 여행이를 임신 중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직 신혼의 때를 벗지 못한 우리 부부는 만삭은 아니었지만 확연히 불러온 나의 배를 함께 어루만지며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산책을 하며 내 안의 여행이에게 이야기를 건넸고 그것은 아직까지도 따스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날로부터 어느덧 십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내 안에 새로운 생명을 품고 있다. 여행이와는 십 년 터울로 태어날 우리의 둘째, 바다를 말이다. 2024년의 봄에는 셋에서 넷이 된 우리 가족이 함께 서울에서 벚꽃을 즐기며 보내고 싶었는데… 축제 날짜를 들여다보니 아무래도 나와 바다가 조리원에서 지내는 동안 남편과 여행이 둘이서만 야외에서 벚꽃을 즐기게 될 것 같다. 아쉽게 되었지만 올해의 겨울이 지나고 나면 내년에도 분명 반가운 손님이 찾아올 것이다. 내년 봄이 되면 그때는 우리 넷, 다 함께 손을 잡고 흐트러지게 핀 벚꽃을 보러 길을 나서봐야지.


2014년, 미국 워싱턴 DC


앞으로의 봄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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