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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Apr 24. 2017

퇴사일기 #61. 사원증 있으세요?

11월 1일, 여행을 마치고


스물 다섯의 나는 언제나 노트북과 함께였다.
카페는 또 다른 이름의 도서관이었고,
그곳에서 자소서를 쓰고 있으면
사원증을 목에 차고 커피 마시러 오는 회사원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고층 빌딩이 이렇게 즐비한데,
정말 다양한 분야의 회사들이 이렇게 많은데,
저 빌딩들의 저 많은 사무실 중에
내 자리 하나 없다는 게 너무 서러웠고,
내 자신이 한심하고 자괴감이 들었다.


스물 일곱의 나는 언제나 사원증과 함께였다.
사원증을 목에 차고 커피를 마시러 가면
항상 노트북과 씨름하는 취준생들이 있었고,
그들에게 내 사원증이 금목걸이보다 더
빛나보이리라 생각하니 약간의 우월감도 들었다.
내 명함에 박혀 있는 그 회사와 그 직함,
그게 나 자체였다.


스물 아홉의 나에게 사원증은 '개목걸이'라 불렸다.
세상 어느 목걸이보다 무거웠다.
집어 던지고 싶다가도
소속감이 없어진다는 것에 대한 불안함과
그 짧은 커리어와 높은 연봉에 대한 미련이
그때마다 날 붙잡았다.


지금,
서른의 나는 다시 사원증이 없고,
사원증이 걸려진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전혀 부럽지 않다.
언제 그 사원증 목걸이를 다시 찰지,
평생 아예 못 찰지도 모르지만,
나한테는 용기라는 튼튼한 투명 사원증이 있으니까.

사원증을, 미련을,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


'전'직장이 있던 명동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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