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슬펐던 도시에서
어린 시절부터 역사를 참 좋아했다.
특히 국사에 관심이 많아 초등학교 시절,
두꺼운 왕조실록 책들을 닳도록 읽었다.
세계사가 아닌 국사에서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를
제외한 나라가 언급되는 일은 거의 없으며
하물며 근현대사가 아닌 1900년대 이전에
등장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무려 17세기에 하멜 표류기로 첫 등장을 했고,
을사늑약의 무효함을 알리기 위해
우리의 세 열사들은 헤이그라는 곳을 갔다.
지금도 비행기를 타고 10시간 이상은
족히 넘게 가야하는 곳,
그 먼 곳까지 세 열사들이 어떤 각오로 갔을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 어떤 나라보다 더 가보고 싶었던 건
바로 이런 역사적 끌림 때문이 아니었을까.
여행의 동선을 무시한 채
굳이 암스테르담을 일정에 꾸역꾸역 넣었고,
난 그렇게 그곳에 발을 딛었다.
네덜란드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마치 역사적 사명을 띈 중요한 사람이 된 마냥
나도 모르게 벅차 오르는 감정이 생겼다.
(암스테르담에서 한두시간 떨어져 있는
헤이그까지는 결국 가지 못했으나)
당시의 아픔과 고통만을 되짚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도시 암스테르담.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수많은 트램들,
도시 곳곳 흐르는 수로는 이 아름다운 도시를
더욱 낭만스러운 곳으로 만들고 있었다.
밤이 되면 낮의 낭만을 뒤로 하고
반짝반짝 환락의 도시로 변신하는 모습이
마치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인 듯한,
소리없는 아우성과 같은
역설법 문장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인가.
아름다움에 눈이 참 시렸던 도시,
암스테르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