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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Dec 20. 2017

퇴사일기 #77. 7개월간의 유럽여행 -루트편-

200일, 총 10개국, 40개 도시 여행 루트의 기록


유럽에서 장기간 여행이라고 해봤자 비자 없이

3개월. 이왕 가는 김에 넉넉하게 1년 정도는 살아보고 싶었기에 반드시 비자가 필요했고 그래서 선택했던 것이 독일 워킹홀리데이 비자였다. 워홀 비자라는 것이 만 30세 이내만 가능했기에 만 29세였던 나는 퇴사를 서두르고 퇴사 직후 충분한 준비 시간도 갖지 않은 채 곧바로 출국을 했다. 많고 많은 나라 중 독일 워홀을 택한 이유는 유럽의 중앙에 있어 어떤 나라를 여행하더라도 접근성이 좋았고, 안전하다는 이미지가 컸기 때문이었다. (워홀 비자를 준비하던 작년 초만 해도 난민 문제나 테러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퇴사 여행의 첫 발을 내딛었다.

인천 공항보다 더 많이 다닌 것 같은 프랑크푸르트 공항




Part 1. 4-6월

독일인보다 독일을 더 돌아다닌 한국인

아직도 가야할 곳이 많은 독일



여행의 시작은 독일 중간에 위치해 있고 한 번 여행해서 그나마 익숙했던 도시인 프랑크푸르트(이하 프푸)였다. 한국에서 가져간 캐리어 두 개를 모두 가지고 여행하기에는 벅찼기에 민박집에 하나를 맡겨두고 하나만을 끌고 다니기로 했다. 짐을 정리하고 빨래도 할 겸 프푸의 민박집으로 3주에 한번씩 돌아오는 계획으로 여행 루트 완성!

첫 3주의 목적지는 프푸 아래 쪽 하이델베르크, 만하임, 뉘른베르크, 뷔르츠부르크였다. 봄 날씨를 기대하고 얇은 옷만 잔뜩 가져갔건만 5월의 눈보라를 만났고 예상에도 없던 기모가 든 티셔츠를 살 수 밖에 없었다. 영국 날씨보다 더 변덕스러운 게 독일 날씨라더니 그 말을 첫 여행부터 몸으로 겪을 줄이야. 추위에 한껏 고생한 3주를 보내고 프푸로 돌아와 짐을 재정비한 후 3주간 '괴테 가도'라 불리는 바이마르,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베를린, 그리고 북부의 함부르크와 브레멘 음악대로 유명한 브레멘을 다녀왔다.
프푸가 중간 경유지였던 건 중간에 위치한 까닭도 있지만, 독일 가기 전부터 언어교환 사이트를 통해 6개월간 알고 지냈던 독일인 친구가 마침 프푸에 살았기 때문이었다.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만남을 가졌던 그 친구는 독일인의 탈을 쓴 한국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나와 잘 맞았다. 6주간의 독일 여행을 하며 다음 일정을 계획하던 중, '여행'이 아닌 '생활'을 하며 독일을 느껴보고 싶어 친구에게 조심스레 '한달간의 동거(!)'를 제안했고 친구는 너무나 고맙게도 선뜻 오케이를 해줬다. (이후에도 여행 후 독일로 돌아올 때마다 이 친구의 집에서 매번 신세를 졌다.) 친구 덕에 여행 예산을 아낄 수 있었던 건 덤이다.

집에서 머무는 한 달동안은 프푸에서 가까운 하나우, 슈타이나우, 뤼데스하임, 비스바덴 등의 작은 소도시들을 당일치기 여행하기도 하고 조금은 거리가 있었던 쾰른, 본 등은 며칠 일정을 잡아 다녀오기도 했다. 여행 중 만난 독일인이 그동안 어딜 가봤냐고 묻길래 쭉 읊었더니 독일인인 본인보다 왜 독일을 더 많이 다닌거냐며 핀잔 아닌 핀잔(?)을 받기도 했던, 약 10주간 17개 도시에 발도장을 찍은 2개월.


내 독일 생활의 보호자였던 친구 멜리




Part 2. 7-8월

몰타에서의 꿈 같았던 여행 속 휴식

몰타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바다인 코미노 블루라군


여행을 떠날 때 유일하게 계획했던 일정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 몰타에서의 생활이었다.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섬 아래, 지중해 한가운데 위치한 몰타는 오래 전 영국의 식민지로 영어가 공용어인 나라다. 영어 어학연수를 위해 유럽 각국에서도 많이 오고 영국에 비해 저렴하게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영어를 마스터 해보겠어! 라는 비현실적 욕심보단 영어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환경에 있고 싶었다. 영어권 국가에서 살다 온 사람이 아니고서야 해도해도 부족한게 바로 이 영어가 아니겠는가.. 7-8월의 무더운 날씨와 어딜 가든 사람 많은 휴가철 성수기를 피해서 저렴하게 묵을 곳이 필요하기도 했기에 기숙사까지 제공해주는 몰타 어학연수는 나에게 최적의 조건이었다.

기숙사에서 조금만 걸으면 눈 앞에 보이는 게 해수욕이 가능한 바다로 평생 바다에 들어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두 달 내내 바다로 출근 도장을 찍었고, 물이 무서워 수영도 못했던 나는 물 공포증을 극복할 수 있게 됐다. 강화도만한 크기의 섬에 어찌나 갈 곳이 많은지 이곳 저곳 관광지를 다니다 보니 덕분에 삼십 평생 가장 까만 피부를 얻게 되었다. 나라 전체가 느릿느릿, 태평함이 지배한 이 나라는 조급한 성격의 나에게 여유로움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Part 3. 9월

유럽 곳곳을 방랑하다

많고 많은 대성당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9주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작은 섬나라를 떠나 다시 대륙을 밟은 곳은 바로 스페인. 그 곳으로 휴가 온 (전)회사 선배들과 함께 2주 남짓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했다. 4개월간 혼자 돌아다니다 일행이 생기니 추억도 두배로 풍족해지고 여행 자체도 더 즐거워졌다. 이래서 여행은 '어디로'가 아니라 '누구와'가 더 중요하다고 했나보다. 바르셀로나를 시작으로 그라나다-말라가-론다-세비야를 거쳐 포르투갈 리스본-포르투를 찍고 스페인 마드리드로 돌아오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그녀들과 이별했다. 다시 독일로 와서는 스위스로 휴가 온 친구를 만나기 위해 곧장 취리히로 향했다. 여러 국가를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너무나도 쉽게 왔다갔다 하다니 내가 유럽에 있음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취리히에서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한 채 독일 국경으로 넘어와 독일 남부인 프라이부르크를 여행했고 프랑스 국경으로 넘어가 아름다운 마을로 유명한 스트라스부르를, 그리고 다시 독일로 넘어와 하이델베르크를 한 번 더 찍고 푸프로 돌아왔다. 한 달간의 방랑으로 생긴 피곤함을 이틀 내내 통잠으로 해결하고, 나처럼 퇴사 후 유럽으로 온 학교 선배를 만나기 위해 다시 한번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Part 4. 10월

몰타의 인연들과 함께 한 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한 달만에 또 다시 바르셀로나라니!

유럽 생활의 장점이 바로 이것인가. 한 달 전에 왔던 바르셀로나는 또 새로웠고 더 아름다웠다. 2주간 머물렀던 도시임에도 볼 것들은 여전히 넘쳐났으며 한달을, 일년을 지내도 모자랄 것 같았다. 하루 심지어 몇 시간도 안되는, 관광 명소만 살짝 찍고 가는 여행으로는 감히 이 곳을 여행했다고 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도시였다.
바르셀로나에서 선배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에 네덜란드로 넘어가 그 곳에서 몰타에서 같이 공부하며 친해진 동생을 만났다.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일면도 없던 새로운 친구와 이 먼 지역에서 만나 함께 다닌다니 여행은 내게 '사람'이라는 소중한 선물도 주었다. 암스테르담, 잔세스칸스를 둘러보고 남들에겐 유럽여행 첫 코스라는 영국 런던을 여행 막바지가 되서야 입성했다.

꿈 같던 열흘을 보낸 뒤 다시 독일 뮌헨으로 컴백. 이쯤 되니 독일 공항에 착륙할 때마다 마치 인천 공항에 착륙할 때처럼  '돌아왔구나' 하는 뭔가 모를 안도감과 편안함을 느꼈다. 이게 바로 비자의 매력이구나. 유럽에 있는 동안은 독일이 '우리 집' 같은 나라였다. 뮌헨에선 몰타에서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동생과 조우했다. 서로 한 달간의 근황을 업데이트하며 회포를 풀기도 하고 디즈니성으로 유명한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있는 퓌센을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다음 만남을 또 기약하며 헤어진 후 뮌헨에서 버스를 타고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로 향했다. 이 버스 구간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지금까지 여행 중 봤던 가장 아름다웠던 길로 누군가 근처에 간다면 꼭 권하고 싶은 루트다. 그리고 3일 후 다시 버스를 타고 독일 슈투트가르트로 이동했다. 버스를 타고 오가는 국경 여행도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해발 2,300m의 노르트케테


시간은 어느덧 10월 중순까지 훌쩍 와있었다. 로마나 파리, 프라하,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인 슬로베니아 등 이전에 여행했던 곳들도 다시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도 예산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기에 이번 기회에는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여행 중에도 전혀 계획에도 없던, 생각조차 해본적 없던 나라, 아이슬란드 행 비행기 안에 내가 있었다. 암스테르담과 런던을 여행할 때 급작스럽게 계획을 추진한 아이슬란드 여행이었다. 겨울 옷과 부츠를 부랴부랴 사고 가이드북도 없는 탓에 매일 밤, 인터넷 서칭으로 코 앞에 닥친 스케줄을 이리 저리 해결하며 좌충우돌 즐거운 여행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일주일 간 아이슬란드 섬의 반바퀴를 돌았다.

아이슬란드 여행을 함께 한 몰타의 소중한 인연들

유럽 대륙에서도 멀리 떨어진 나라까지 여행을 하고 돌아오니 정말 내 나라로 돌아갈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비자기간도 한참 남았거니와 한국으로 돌아가는 리턴 티켓의 날짜 또한 12월 말이었기에 사실 참 갑작스럽게 준비한 귀국이었다. 올 때도 그랬지만 돌아갈 때 역시 계획되지 않았던 스케줄이었다.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 날짜를 변경하고 이대로 가기는 아쉬워 크리스마스 마을로 알려진 로텐부르크를 마지막 여행지로 다녀왔다. 곧 시작될 크리스마스 마켓을 못 보고 돌아간다는 게 너무 아쉽기만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낯선 대륙을, 남자보다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좀 더 큰 여자 혼자 다니기란 참 어렵고도 힘든 일이다. 막상 해보면 그게 그리 대단한건가 싶지만 주변에서 누군가 그렇게 떠나겠다 하면 나 또한  '대단하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여행을 돌아보면서도 '내가 이렇게 대단한 일을 했다고? 다녀온 그 사람이 도대체 내가 맞나?' 싶을 정도니까. 어떤 드라마에서 그랬듯 그 어려운 걸 내가 해냈고,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그 누군가들이 나를 찾기 위해, 청춘의 경험을 위해 훌쩍 떠난다.

계획이라곤 전혀 없었던 장기 여행. 이렇게 무작정 발길 닿는대로 다니는 것도 참 좋았지만 막상 해보고 나니 계획을 좀 세워놓고 다녔더라면 더 잘 다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살짝 남기도 한다. 장기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이라면 참고해두길.


마지막 목적지 독일 로텐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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