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밖 개구리
그럴싸한 정기적으로 하는 취미생활도 없이
회사와 집만 왔다갔다 하며,
친한 회사 동료들끼리 가끔 저녁이라도
함께 하는 자리에선 여전히 업무 얘기,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선 내일 출근하기 싫다는
투정 뿐이었던 5년이 흘렀다.
오늘은 뭘 먹을지 어디서 잘까하는
정말 단순한 고민 아닌 고민을 하며,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새로이 알게 되고,
이들의 높은 행복지수는 어디서 나오는걸까,
그들과 나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비교하면서 1년을 보냈다.
뭘 배우면 내가 더 성장할지,
어떤 아이디어로 내 일을 더 번창시킬지,
어떻게 살면 더 즐겁게 살지를 고민하며
또 1년이 지났다.
퇴사하지 않았으면 7년을 무의미하게 보냈을 내가
퇴사 후 새로운 2년을 살게 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오늘 그 과장님이요, 제 말을 무시하구요....."
"옆 팀 그 대리, 바쁜데도 도와줬더니 더 도와달래."
상사의 말 한마디에 짜증이 나고
동료와의 미스커뮤니케이션에 상처를 받고
좁은 우물 안에서 서로 티격태격 경쟁하는,
회사 속이었다면 충분히 스트레스 받았을 얘기들이
왜 저런 일로 스트레스를 받을까 하는
의문으로 바뀌었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
넓은 세상을 둘러볼 시간이 없는 사람에서
주변을 챙겨볼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2년간 그들보다 더 잘나진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난 남들이 부러워하던
그 잘난 회사의 직급을 잃었고
수입은 이전의 절반도 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단 하나 확실한 건,
난 우물 밖에 있다는 사실이다.
Tantum videmus quantum scimus
우리가 아는 만큼, 그만큼 본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을 겁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깨어 있고 바깥을 향해서도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책 한 권을 읽어도 가벼이 읽게 되지 않고 음악 한 곡을 들어도 흘려듣지 않게 될 겁니다.
한동일 신부님의 -라틴어 수업-의 일부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