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3년차를 맞이하며
퇴사 후 일년간 하고 싶은 걸 실컷 했다. 30년 인생에서 365일 정도 쯤은 누구 눈치 하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건 해보고, 사고 싶은 건 사 볼 자격은 있다고 생각했다. 사직서를 내자마자 수학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가며 희열을 느끼듯 평소 생각했던 그동안 맘 속에 간직만 해왔던 버킷리스트를 실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8개월이라는 긴 시간, 유럽 방방곡곡을 방랑하며 언제까지 될 지 모르는 백수 시절을 지원해 줄 유일한 경제적 자금인 퇴직금을 몽땅 써버렸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지니 퇴사에 대한 아쉬움이 간혹 올라오곤 했지만 퇴사를 후회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다 일년에 한 번 즈음, 동기들이 하나씩 과장을 달았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대기업 과장이 된 내 모습을 은근히 상상해봤다. 퇴사를 한 이유 중 하나가 권력과 직책에 연연하는 환경에 진을 뺐기 때문이었는데 그런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니. 어쩌면 프리랜서로서 사회에 나와 권력의 중요성에 대해 더 느낀 걸지도 모르겠다. 명함 안에 있는 회사 이름과 직책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사회 전반에 미세먼지처럼 안 깔려 있는 곳이 없었다. 일적으로 만난 사람들이 종종 날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내가 대기업 과장이었어도 저 사람들이 날 저렇게 대했을까 생각하는 자체가 나도 아직까지 그 환경 한가운데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렇게 퇴사를 조금씩 조금씩 후회하게 되는걸까.
그래도 답은 No- 였다. 후회하지 않을 이유를 만들어준 이 역시 바로 이전 직장 동료들이다. 매일 산더미 같은 일에, 상사에, 보이지 않는 정치 암투에 치이며 그 좁은 곳이 세상 전부인냥 헤엄치는 모습, 회사 일 외에 대화 주제가 없는 모습들을 보자니 퇴사하길 참 잘했다 싶다. 난 적어도 세상이 작지 않음을 깨닫고 살아가고 있으니.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땐 쉬고 내 시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프리랜서로서의 삶도 벌써 만2년. 개인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꽤 성공한 프리랜서의 패기를 당당히 보여줘서 퇴사 후 무용담을 멋지게 늘어놨어야 하는데 아직 경제적 여유를 갖지 못해 자랑은 맘 속 깊숙이 숨겨 놓았다. 아마 경제적 여유가 충분히 갖춰질 고지가 되면 이 퇴사일기를 보란 듯이 마무리질 수 있겠지.
누군가가 매번 묻는다. 퇴사하니 좋으냐고. 그 질문에 매번 같은 답을 한다. 퇴사를 한다 하면 말리지 않겠지만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것도 반대하진 않는다고. 매일 아침 억지로 출근을 하든, 퇴사 후 프리랜서가 되든 창업을 하든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이다. 그 현실의 메인이 내 자신인지 경제적인 것인지 사회적 지위인지 아님 또 다른 무엇인지는 스스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어쨌든 지금 내 현실만큼 중요한 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