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지 못하고

유럽 여행기 에세이

by 셀라

국경을 넘지 못하고


대륙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지구 전역에 퍼졌다. 바이러스는 급속도로 퍼졌고, 비슷한 속도로 사람들은 백신이 없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수만여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고, 이 땅위에 수십만명이 이 전염병을 앓고있다. 연일 미디어는 사태와 관련된 방송을 하고 더이상 피부에 닿지 않는 거대한 숫자들로 떠들어댔다. 사람들은 호전되지 않는 상황에 불어난, 주체되지 않는 공포를 타인종을 향한 혐오로 정당화했다. 바이러스와 혐오, 21세기에 벌어진 참혹한 현상이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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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드레스덴에 있었다. 보름동안의 독일 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다음날 폴란드로 넘어가야 했다. 베를린에서 환승해 폴란드 서쪽에 위치한 포즈난으로 여정을 정해 놓았다. 총 6시간의 편도 기차.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화폐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외국”으로 가기 직전은 언제나 설랬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결국 폴란드로 향하지 못했다.


국경이 닫혔다. 아니, 당일 정오에 닫힐 예정이었다. 체코는 진작에 닫았다. 비교적 상황이 안전한 폴란드에 머물며 여행을 이어갈 계획이었다. 바르샤바에서 런던으로, 런던에서 인천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국경이 닫히고, 국외선이 중단되면, 나는 꼼짝없이 폴란드에서 상황이 나아질때까지 움직이지 못할테니까. 여행을 하다가 살림을 차릴수는 없어서 이를 악물고 베를린에서 내리고 폴란드 환승편 기차을 떠나 보냈다.


밤새 항공사와 연락하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와이파이가 없는 기차에서, 시그널이 잘 잡히지 않는 핸드폰으로 2박동안 머무를 숙소를 정하고, 그 다음 여행지까지 정해야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여행중이니까. 죽지만 않는다면 이 모든 고생들이 후에 나를 꽃피울 양분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스스로를 달래고, 짐을풀었다 다시 꾸리고, 가장 어두운 내면에 집중하며, 그래도 품위와 여유를 띄우며 육군 병장처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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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생활을 남방한계선 DMZ에서 보냈다. 두번의 여름과 두번의 겨울동안 나는 전우들과 하나의 “국경”을 눈앞에 두고 호흡했다. 전쟁이 발발해도 시작한지도 모르고 죽는다는 그곳에서 155마일의 국경선을 따라 실탄으로 무장한 우리가 서있었다. 긴장감이 오고 갔던, 나의 가장 푸르른 젊은 날을 땀으로 묻었던 그곳이 남한의 국경이였다.


하지만 유럽에는 국경이 없다. 아니 철조망으로 된 국경이 없다고 해야하나. 가상의 국경만 존재할뿐, 기차와 버스로 충분히 왕래할수 있는, 톨게이트 개념의 국경이다. 암스테르담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여행하는 일이 서울에서 부산가는 여정과 다를바가 없다. 그래서 마음이 씁쓸 했다. 나는 그 톨게이트를 넘지 못했다. 바이러스가, 혐오와 차별과, 안전 조치와 보호의 명목으로 지난 수백년간 단 한번 닫힌적 없던 국경들이 하나씩 닫히기 시작했다. 나는 이 급물살을 버티기에 너무도 나약했다.


다음에 폴란드로 여행을 간다고 생각하며 다독여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다음이라는 가상의 미래가 너무 멀게도 느껴졌다. 마치 내년 크리스마스처럼. 다시 돈을 모으고, 삶을 이어가다가, 언젠가 허락된 시기에 폴란드로 떠날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덜 익은 망고를 삼키는것 마냥 불쾌했다. 왜 굳이 그렇게 빙빙 돌아서 가야 하는 것인걸까. 이유는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나는 초등학생 아이처럼 때를 섰다.

내가 사는 오늘의 시끌벅적했던 맥주집들이, 노상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던 사람들이, 항상 입맛에 맞았던 베트남 음식점들이 존재를 감추었다. 혼자 여행하는 나는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도 그리워 하지 못한다. 두꺼운 체인에 꽁꽁 묶인 박물관 정문을 보고나서 국경을 넘지 못했던 나의 슬픔을 은연중에 발견했다. 이 슬픔은 비무장지대를 바라보며 오늘을 꿈꿔왔던 나의 한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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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번 여행동안 가장 잘한일은 폴란드에 가지 않은 이성적인 결정을 내린점이다. (그래서 가장 아쉬운 점도 폴란드에 가지 않겠다고 결정한 점이지만) 숙소를 서둘러 취소했고, 새로운 루트를 재빠르게 세웠다. 전화로 비행기표를 4일정도 당기고, 여행보다는 생존에 초점을 두고 남은 상황들을 판단했다. 각종 수수료와 휴지 조각난 기차표가 나의 청춘을 팔아 번 돈을 탕진 할때도 마음을 굳게 잡았다. 나는 국경을 넘지 못했으니까. 이게 현실이다.


대한 반도의 국경에서 18개월을 보낸 나에게 안녕을 보낸다. 그가 꿈꿔왔던 여행의 모습과 너무도 달랐을것이다. 참혹한 전염병의 현실이 한 청년의 바램을 눈앞에서 연기처럼 흐트려 날렸다. 그래도 돈키호테처럼 걸어라. 푸르른 하늘과 따뜻한 햇살을 누리며 한발짝 한발짝 국경을 넘을 그날을 바라며 살아가야한다. 미움도, 혐오도 없고, 맥주집과 카페에 다시 사람들이 모이고 한가득 흥을 타령할 그날에 다시 찾아간다면, 남한 국경에 깊숙이 묻어 놓았던 그의 땀방울들이 거름되어 꽃을 피울테니까. 결국에는 나아질거란 희망이 필요하다. 나에게, 당신에게, 우리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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