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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피 Aug 07. 2021

기적

삶은 우연이라 일컬어지는 수많은 기적들의 연속

           

 얼마 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 인터넷으로 전자책 단말기를 주문했다. 신제품이 나왔다는 소식에 여기저기 가격과 구성을 따져가며 어렵사리 결제 버튼을 눌렀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았는지 주문이 밀려 정말이지 한참 만에 받아보았는데, 실수로 다른 제품이 도착하였고, 애석하게도 화면마저 와장창 깨져있었다. 가격을 비교하느라 들인 수고와 돈은 차치하고 언제 다시 받아볼 수 있으려나, 다시금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종잇장이 바스락 넘어가는 소리가 좋아 불편함을 감수하고서 여행 때마다 무거운 책을 미련스레 가방에 넣어가곤 했다. 작고 가벼운 기계 하나에 수백 권의 책을 넣어가는 대신, 행여 맘에 들지 않아도 꾸역꾸역 끝까지 읽어낼 수밖에 없는 불편함을 택했다.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이야기를 구입하는 대신 수고스럽게 도서관에 들러 읽고 싶은 책을 찾고, 대여하고 시간이 지나면 반납하는 행위를 반복했다. 그러다 도서관마저 문을 닫고 책방이 문을 닫자 갈 곳 없이 구석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게 뭐람. 비장한 결심이 무색하게 내 쪽에서 먼저 손을 내민 순간에도 현실은 쉽사리 타협해주지 않았다.      


  세상을 살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아니, 뜻대로 될 때가 별로 없다고 해야 하나. 다른 이들의 의지 - 혹은 무의식 - 와 행동이라는 무한의 변수를 상대로 뜻을 펼치는 것은, 그리고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결과로 돌아오는 것은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일 기적을 바라며 살아가고, 때로는 기적을 체험하며 살아간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삶을 사는 방법은 딱 두 가지이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사는 것.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 나는 어떤 쪽이던가?      


  어떠한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기적이 행해지는 일이다. 원하던, 원치 않던 우리는 수많은 일들이 끊임없이 실현되는 세상에 살고 있으며 그렇기에 기적 속에 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나는 기적의 일부로서 존재할 수는 있지만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은 아니다. 그 누구도 어떠한 현상의 유일한 매개체가 될 수는 없다.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많은 이들이 일부로서 존재하며 각자의 몫을 행할 때 비로소 어떠한 일이 기적처럼 행해지는 것이다. 우연이라는 것도 결국 기적의 다른 말이 아닐까.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머릿속으로 계획하고, 명상을 하고 책을 읽는 것은 자유 의지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그저 일부로서 존재하는 기적의 산물이기도 하다. 휴대폰의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면, 함께 사는 이들의 잠귀가 어둡지 않았다면, 혹은 출근이 비교적 늦은 시간이 아니었다면 과연 나만의 아침 의식이 가능했을까.     

 

  여러 상황들이 나를 특정 행동으로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동은 결과를 낳고 그것이 어떠한 형태로든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로서 나는 결과의 일부로 다시금 존재하게 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마음을 다스리는 일로 남편과 아이들에게 친절할 수 있다면, 그로 인해 가족 모두가 기쁜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면 하루 동안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이에게 조금이나마 긍정의 기운을 전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는 또 다른 긍정으로 나에게 돌아온다.      


  아침 명상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대뜸 나에게 말투가 친절하게 바뀐 것 같다며 말을 건네 왔다. 사실 명상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따로 있었다. 그즈음 한번 수가 틀리면 쉽게 달래지지 않는 다섯 살배기 아들과 매일을 씨름하다 언성이 높아지기 일쑤였는데 한바탕 감정을 쏟아붓고 나면 남는 것은 허탈감뿐이었다. 어린아이와 유치한 말싸움이라니. 순간적 화를 다스리지 못한 부끄러움과 성숙하지 못한 행동은 자책과 후회로 돌아왔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화가 나서 언성이 높아지려 할 때마다 아이를 꼭 안아주는 것이었다. 입 밖으로 소리를 내는 대신 입술을 꾹 다물고 양손을 벌려 뿔이 잔뜩 난 아이를 품에 담았다. 감정의 폭이 큰 아이여서 인지, 실로 효과는 성공적이었다. 다른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았기에 아이와 좀 더 성숙한 방법으로 소통할 수 있으리란 희망이 보였다. 어렵게 삼켜낸 뾰족한 말 한마디, 언성 하나가 걷히자 어느새 말투가 달라져 있었나 보다. 남편에게까지 달라진 모습을 인정받게 된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졌다.     


  ‘나비 효과’라는 말이 있다. 나비의 작은 날개 짓이 지구 반대편에 도달해 큰 바람을 불러일으키듯, 작은 어떤 사건이 예상치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는 의미이다. 마치 손짓 하나에 넘어간 도미노처럼 한 조각이 다른 조각을 쓰러뜨리며 연계된 하나의 흐름으로 끝없는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일들은 하나의 도미노 조각인 셈이다. 언제부터인가 시작되어온 연속적인 사건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삶을 맞이하고 안녕하며 그렇게 왔다가 사라지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 자체가 커다란 도미노의 일부로 존재하면서 말이다. 비록 조각 하나가 전체의 그림을 바꿀 수 없을지 몰라도 그 조각이 아니면 도미노는 완성이 되지 못한다.     


  제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그가 불러올 파장을 상상해 본다면, 나비의 작은 날개 짓도, 우리의 한마디 말도 기적이 될 수 있다. 매일을 기적 속에서 살아가는 일은 의외로 간단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요즘처럼 모두가 예민해져 있는 상황에서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만으로도 기적의 바람은 이미 시작된 것이리라. 전자책 단말기의 액정이 깨져와 반납한 것이 무슨 기적이겠나 싶지만 어렵사리 기다려 받은 만큼 종이책만큼의 애정을 쏟아준다면 그 또 한 의미 있는 기다림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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