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의 광활했던 풍경, 그리고 회픈이라는 도시
남의 차를 얻어 타며 광대한 아이슬란드의 자연을 보고 있노라면 새삼 하나님이 지구를 창조하기 전 연습 삼아 만들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 정도로 아이슬란드의 자연은 어메이징 하다.
만년설의 빙하가 모이는 호수 요쿨살론, 수백 년 묶은 빙하 있는 이곳에서 우리는 몇 시간을 머물다 이제 다시 길을 떠난다. 사람들은 저마다 차를 타고 혹은 버스를 타고 이동하지만 돈이 부족한 우리는 그럴 순 없었다. 사실 버스 타고 이동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혹하는 마음에 버스 가격표를 봤다. 그런데 버스비가 너무 비싸다... 허망한 마음에 결국 단념하고 다시 배낭을 짊어 진다. 10분 정도 걸어서 히치가 잘 될 것 같은 도로 한복판에 배낭을 내려놓고 늘 그래왔듯 히치를 시도한다. 오늘은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운이 없으면 우리는 여기서 텐트 치고 자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그런데 진짜 그날은 유난히 차가 잘 안 잡혔다. 적지 않은 차가 우리 앞을 그냥 지나간다. 히치도 1시간 미만으로 기다리는 건 할 만 하지만 1시간을 넘어 2시간이 다되가면 불안해진다. 오늘은 못 타는 건가..? 걸어서 이동해야 하나? 하지만 그러기엔 아이슬란드는 사람도 없고, 마을도 없고, 그저 거친초원과 산들만 눈앞에 보일뿐이다. 방법이 없다. 몇 시간이고 그저 우리를 태워줄 마음씨 착한 운전자를 기다리는 수 밖에.
보이는 것 이라곤 끝도 없어 이어진 길과 흑색 모래자갈들이 펼쳐진 광야. 그 와중에 눈앞에 거대한 전봇대가 보인다. 오늘도 내일도 언제까지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전봇대. 여행은 때로는 나를 생각의 바다로 빠져들게 한다. 아무것도 아닌 전봇대를 보며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나?
그때 마침 차 한 대가 비상등을 켜고 우리 앞에서 멈춰 섰다. 만세! 2시간 기다림 끝에 드디어 우리를 태워다 줄 마음씨 착한 운전자를 만나게 됐다. 6인승 SUV 차량에는 3명의 일행이 타고 있었고 대체적으로 젊은 친구들이었다. 운전자가 우리에게 묻는다.
'어디까지 가니?'
우리는 대답했다.
'어 우리는 회픈까지 가'
'잘됬네~ 우리도 회픈가는 길인데 어서 타렴~'
그렇게 해서 젊은 서양 친구들 일행과 같은 차에 동승해 이동하게 됐다.
히치하이킹을 10번 정도 하니 이젠 얼굴 철판 깔고 타는 것도 익숙해졌다. 일단 얻어 타게 되면 긴장이 풀리면서 이내 곧 졸음이 쏟아진다. 처음 히치 할 때만 해도 긴장감에 남의 차 안에서 자는건 예의가 아닌 거 같아 졸려도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노력했는데 10번정도 하다보니 이제 그런 건 무감각해져 버렸다. 역시 사람은 자꾸 반복되는 일에는 자연스레 무감각 해지나 보다.
우리를 태워준 이번 운전자는 별말 없이 운전만 하고 그 일행들은 조용하다. 각자 조용히 있을 뿐이다. 히치하이킹은 나를 태워주는 운전자 성형에 따라 때로는 엄청 조용할 수도 있는 반면에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운전자는 시도 때도 없이 말을 건다. 그래서 그때그때 분위기가 확연이 다르다.
으이곡 1시간 반을 달렸나? 차 안에서 졸다가 운전자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 졸음에서 깼다. '회픈 다 왔는데 어디서 내려줄까?' 그의 물음에 우리는 회픈에 가까운 캠핑장에 우리를 내려달라고 했다. 다행히 그들 일행도 캠핑장에서 지내기에 우리는 그들 일행의 텐트가 있는 캠핑장에 우리도 같이 내리게 됐다.
캠핑장에 내려 항상 하던 대로 곧바로 체크인을 했다. 회픈 캠핑장은 하루 이용비 1500크로나 정도
WIFI 있고, 샤워장 있고, 요리 해먹을 수 있는 키친도 있다. 캠핑장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시설은 제법 훌륭했다. 회픈 마을 자체가 작은 도시이기에 걸어서 10분 거리에 쇼핑센터가 있고 그 쇼핑센터에는 우리의 밥줄인 대형마트가 있다. 일단 우리는 텐트를 후다닥 쳤다. 매일 텐트를 치고, 철수하기를 반복하니 텐트 치는데 이젠 고수가 되버렸다. 텐트를 설치하고 곧바로 장을 보러 마트로 갔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은 그날그날 필요한 만큼만 구입한다. 남으면 배낭에 짊어지고 가야하는 짐이 되기에 많이 사면 좀 곤란하다.
마트에서 3일 치 식량을 구입했다. 대체적으로 한번 장을 볼 때 쌀, 스파게티 소스, 면, 참치캔, 라면, 우유, 물, 소시지, 식빵, 치즈 등을 사고 일주일에 한 번 딸기잼이나 고기, 달걀도 산다. 두둑하게 일용할 양식을 구입하고 기분좋은 마음으로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해 먹고 쉬면서 캠핑장 주변 마실을 나갔다. 우리가 텐트를 친 장소 가까운 곳에 커다란 호수가 있었다. 그날은 유난히 맑은 날씨였다.커다란 산이 투명한 호수거울에 비춰 보였고 산 밑에는 구름이 낮게 깔려있는데 한폭의 그림 같다. 그날 캠핑장에 있는 사람들이 호수가로 모여 너나 할 것 없이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텐트 뒤쪽에 작은 잔디언덕 하나가 있다. 이곳 아이들이 여기서 썰매를 타고 논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천연 잔디 썰매장, 아이들은 쉴 틈 없이 썰매를 타고 논다. 질릴 만도 하건만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무한반복 한다. 그래도 재미있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탄다. 이렇게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어렸을 적 나의 모습이 생각나곤 한다. 나도 어렸을 땐 저랬지... 하면서 말이다. 아이들은 동심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별반 다른 게 없다.
회픈에 온 지 3일째 됐다. 오늘은 여길 떠나 에이일스타디르로 갈예정이다. 솔직히 오늘 안에 갈 수 있을까? 의문이다. 에이일스타디르 까지 히치로 한번에 가기엔 조금 거리가 멀다.
오늘도 우리는 히치를 시도할 예정이다. 히치 외엔 이동수단은 사치가 되버렸다. 히치를 하기 위에 3km 걸어 1번 국도(링로드) 나왔다. 여기서 또 하염없이 기다린다.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우리를 태워다 줄 운전자를 기다린다. 오늘은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수많은 차들은 우리 앞에서 그냥 지나가고, 건너편 말들은 그런 우리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우리가 불쌍해 보이나? 이런 말들마저 우리를 그렇게 보다니... 괜찮다. 아무렴 어떠하리
그래도 용기가 나는 것은 몇몇 여행자들이 여기서 히치를 성공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우리도 분명 차를 얻어 탈 수 있을 것이라는 그 믿음 하나로 꿋꿋하게 도로 위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히치를 성공하기 위해선 수백 대의 차가 우리 앞을 지나가야 하고 몇 시간을 끈기 있게 기다려야 하다. 그런 실패와 기다림 끝에는 우릴 태워줄 운전자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결국 13번의 히치를 시도해 13번 다 성공했다. 성공률 100% 지만 단순 수치상으로 설명하기 힘든 것들이 있다. 이건 정말 자신과의 인내심 or자존심 싸움이다. 어쨌든 오늘도 무사히 차를 얻어탄 우리는 운전자가 중간에 이름모를 작은 어촌마을에 내려다 줬다. 목적지는 한참 가야하지만 운전자가 여기까지 태워다 주면 별수없다. 그래도 여기까지 태워다 준것도 감사할 뿐이다.
<다음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