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지속가능한 교육에 대한 고민과 질문
여행하는 선생님들은 대학생들이 도서산간지역 중고등학교로 여행을 떠나 일주일 동안 함께하며 교육 컨텐츠를 나누는 팀입니다. 첫 번째 글, 어쩌다 보니 여행하는 '선생님'들에 이어서 여행하는 선생님들의 지속가능성, 그중에서도 교육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저희의 고민과 질문을 나누고자 합니다.
끝까지 함께해주세요.
이번 학기 이덕준 교수님(임팩트투자 벤처캐피탈,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 대표)의 소셜벤처(KAIST K-SCHOOL 교과목) 수업에서 그래프 하나가 제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건강과 사회 문제 지수(Index of health and social problems)가 소득불평등(Income inequality)과 놀라울 정도로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불평등의 영향은 가난한 자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불평등은 사회 전체의 사회적 구조를 손상시킨다."
『The Spirit Level』 (Richard Wilkinson & Kate Pickett)
김승섭 교수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합니다. 그 상처를 이해하는 일은 아프면서 동시에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몸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개인이 아픈 것이 그저 개인의 아픔이 아니라, 꽤 자주 사회의 불완전한 시스템으로부터 기인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아픔을 '문제'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매일의 삶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그저 나 개인의 사사로운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사회의 불완전한 시스템으로부터 기인한 것 일 수도 있습니다. 그 문제들을 이해하는 일은 아프면서 동시에 혼란스럽겠지만, 조금씩 이해하다 보면 나의 문제가 곧 우리의 문제임을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10대 때 공부를 제법 잘하는 아이였습니다. 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했고, 인정받고자 애썼습니다. 목표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목표는 집착으로 바뀌었고, 제 삶이 좇는 혹은 끌려다니는 '북극성'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시기에 중요한 것을 많이 놓친 것 같습니다. 나에 대해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더 나아가 넓은 세상에 대해 고민해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후, 대학이라는 북극성은 사라졌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여전히 경쟁에서 이기고자, 인정받고자 발버둥 치고 있었습니다. 대학은 아니지만 대학과 비슷한 것들로 제 북극성이 가득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 너무나 막막했습니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앞으로도 있겠지만, 소중한 경험들과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쌓이면서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집착을 알아차리고 조금 더 나은 북극성으로 바꾸고, 그게 또 집착임을 알아차리고 조금 더 나은 북극성으로 바꾸는 과정을 반복하며 조금씩 삶에서 중요한 것들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나와 세상에 대한 이해가 조금씩 넓어지고 깊어지면서 포용할 수 있는 그릇의 크기가 조금씩 넓어졌습니다.
여전히 저는 때로는 경쟁에서 이겨야만 할 것 같은, 인정받아야만 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에 맞서 더 중요한 것을 찾아 그것에 집중할 수 있는 근육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두려움 속에서 성장의 근육을 키우는 것이 제가 매일의 삶에서 고군분투해온 '나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놀랍게도 혹은 그리 놀랍지 않게도 우리 모두의 문제였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극심한 입시 경쟁 교육 환경 속에서 두려움을 느끼며 잘못된 북극성을 좇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비슷한 두려움을 느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여러분은 매일의 삶에서 어떤 문제를 마주하고 계신가요?
여행하는 선생님들을 통해 지금까지 여러 지역의 다양한 청소년들과 대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청소년들과 대학생들 모두 조금씩은 서로 다를 수 있지만,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교육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교육의 '환경'입니다. 가정의, 학교의, 지역의 교육 환경에 따라 교육의 양과 질의 차이가 있습니다. 완벽히 평등할 순 없겠지만, 환경의 차이로 인해 생겨나는 교육의 불평등은 우리 사회에서 더 큰 불평등을 낳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지역이라는 환경적 요인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았습니다. 도심에서 비도심으로 갈수록, 인구수는 줄어들고, 더욱이 젊은 인구는 더 적습니다. 청소년들의 성장에 필요한, 경험과 만남의 기회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듭니다. 그나마 여건이 되는 학생들은 성장의 기회가 더 많은 지역으로 이동을 합니다. 하지만 이는 도심과 비도심의 격차가 더욱 커지는 악순환의 시작입니다.
도서산간지역 청소년들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방 도시의 청년들에게도 정도는 다를 수 있지만 같은 맥락의 문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울과 수도권에 성장의 기회가 몰려 있고, 자연히 많은 청년들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도서산간지역과 지방 도시에 남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은 '이런 환경에서 내가 과연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왜 우리는 자꾸 두려움을 느껴야만 하는 것일까요?
얼마 전 직방 CFO 이남일 님이 한 패널 토크에서 직방에서 목격되는 가장 재밌는 데이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충청도 사람들은 경기도 부동산을 검색하고, 경기도 사람들은 서울 부동산을 검색하는 흐름이 보인다."라고 답변을 하신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지방 소멸과 서울 집중화와 같은 인구의 이동 현상이 비단 교육뿐 아니라 어떤 문제로 이어질지 저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이동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떤 북극성을 좇고 있는 것일까요? 무엇이 우리를 이 북극성을 좇게 가두는 것일까요?
'성장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해왔습니다. 저에게도, 여행하는 선생님들에게도 중요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마도, 삶에서 중요한 것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실험하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행하는 선생님들은 '나와 세상을 이해하고 스스로 목적을 설정하고 나아가는 것'을 성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성장에는 꼭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저희는 두 가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학생의 성장 과정을 공감해주고 때로는 질문해주고 때로는 다양한 예시를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좋은 어른과의 만남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런 만남은 나와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도 하고, 심지어는 삶의 목적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청소년과 청년 모두 이러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좋은 어른들과의 연결이 필요합니다. 연결의 기회가 적은 도서산간지역과 지방 도시일수록 더욱더 필요하고요.
우리에게는 선생님뿐 아니라, 성장을 함께할 수 있는 친구들, 즉 배움의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얼마 전 커뮤니티와 교육이란 키워드로 체인지메이커의 생태계를 만들고 있는 루트임팩트 허재형 대표님께 커뮤니티의 철학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왜 커뮤니티인가?'라는 질문에 4가지 요소를 말씀해주셨는데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안전지대 형성
정보의 공유
시너지 발생
외부의 관심으로 새로운 연결의 기회
우리는 배움의 공동체를 통해 함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고, 정보를 공유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모였을 때, 새로운 연결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연결과 커뮤니티가 앞서 이야기한 교육과 지역 문제에 대한 중요한 힌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행하는 선생님들의 비전인 '어디서에서나 자유롭게 생각하고, 누구나 성장할 수 있도록' 처럼 여행하는 선생님들이 만들고 있는 도시의 대학생 커뮤니티와 도서산간지역의 청소년 커뮤니티의 연결이 교육과 지역 문제의 하나의 의미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의 여행하는 선생님들도 연결과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지만, 아직 그 의미가 많이 약합니다. 특히, 저희가 만나는 도서산간지역 청소년들의 커뮤니티 부분이 가장 아쉽습니다. 도서산간지역 청소년 커뮤니티가 잘 형성되고, 이후에 도시의 대학생 커뮤니티가 연결되어 도서산간지역 청소년들의 성장과 커뮤니티의 지속가능성을 촉진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말이죠.
저희는 지금까지 학교와의 지속적이지 못한 관계와 재정적 어려움이란 한계에 갇혀 ‘학생들과 함께하는 일주일을 어떻게 하면 잘 채울까’의 프레임으로만 고민해왔습니다.
하지만, 한번 상상해보려 합니다. ‘만일 지금까지의 한계가 사라진다면?’
연결과 커뮤니티 외에도 이에 더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마을 : 도서산간지역의 청소년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지게 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마을은 도시에는 존재하지 않는 굉장히 특별한 개념입니다. 작지만 넓고, 다양할 수 있습니다. (참고 : 이 '마을'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여 농산어촌의 교육 문제에 도전하고 있는 menTory)
관계 : 도서산간지역의 청소년들은 어릴 때부터 줄곧 봐온 친구들을 만납니다. 도서산간지역 학교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고 계신 이경원 선생님(평창고등학교)이 늘 강조하시는 부분인데요. 이 고착화된 관계의 부정적 인식이 강한 편이지만, 커뮤니티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연결이 만들어지는지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민과 힌트를 바탕으로 저희는 다시, 두가지 키워드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도서산간지역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일주일을 고민했다면, 이제는 그들과 함께하는 일 년을 상상해보려 합니다.
도서산간지역 청소년들은 방학이 되면 대학생들과의 일주일 만남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배움의 공동체와 더 연결됩니다. 그리고 학기 중에 프로젝트의 과정에 대한 지속적인 피드백을 받으며 프로젝트를 발전시키고, 더 끈끈한 커뮤니티로 발전합니다. 다음 방학에는 조금 다른 모듈로 이 과정을 반복합니다.
이 과정에서 여행하는 선생님들의 대학생들은 일주일 동안 학생들에게 WHY를 선물하고, 이후에 지속적인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여행하는 선생님들이 도서산간지역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교육이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요? 프로젝트와 커뮤니티가 좋은 키워드라면, 어떤 프로젝트, 어떤 커뮤니티여야 할까요? 그리고 이를 어떻게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을 안고, 앙트십스쿨과 조인스타트업 서비스를 운영하며 많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에게 기업가정신을 퍼뜨리고 계신 oec 의 장영화 대표님과 함께 기존의 여행하는 선생님들 컨텐츠와 기업가정신 교육컨텐츠를 조화시켜 5일간의 실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유의미한 실험이 될 수 있도록 응원해주세요.
이번 글을 쓰면서 고민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거대한 문제들을 피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될까 조심스럽기도 했고, 저희의 고민의 방향에 부족함이 많을까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용기 내어 저희의 질문과 고민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희에게도 선생님과의 연결, 친구들과의 커뮤니티가 필요합니다. 공감으로, 좋은 질문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로 저희와 함께해주세요.
감사드립니다.
여행하는 선생님들
정원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