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물건도 공간도 다시 가고 싶게 만든다.
피곤했는지 알람 소리도 못 들었다. 뮌헨에 올 때 이용했던 Flix bus로 예약을 해두었다. 버스 출발 시간은 8시 15분이었고 그전에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갔어야 하는데 말이다. 세상모르고 자는 내게 옆 방의 언니가 보이스톡을 걸었다. 알람 소리는 못 들어도 보이스톡 소리는 들었나 보다. 번쩍 눈이 떠졌다. 원래 잘 때는 와이파이를 꺼두고 자는데 그날 하필 켜져 있었다. 다행이었다. 빨리 나가느라 부랴부랴 준비하느라 아침을 거른 내게 언니가 손을 내밀었다. 받아보니 조식으로 나온 삶은 계란 두 개와 언니가 체코에서 산 립밤과 초콜릿을 줬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 선물 챙기기도 부족할 텐데... 어느새 벌써 언니와 헤어져야 한다니 며칠 간의 고마움과 미안함이 몰려왔다. 언니의 선물을 정말 감사히 받았다. 첫날의 위기상황과는 달리 마지막은 따뜻하고 훈훈하게 끝나서 다행이었다. 언니와 한국에서 다시 만나기로 인사를 나누고 버스를 타러 갔다. 이번에 탄 flix bus에서 와이파이가 연결되긴 했지만 내가 메시지를 보낼 수는 없었다. 오직 다른 사람이 보낸 것만 읽을 수 있어서 인터넷 연결이 반만 되는 상황이다. 몇 번 타본 소감으로는 버스가 제때 안 오면 와이파이가 잘되는 차량이고, 제때 출발하면 와이파이가 안 된다. 차량 내 와이파이에 연결을 하면 자동으로 기본 웹사이트가 떴다. 마치 비행기를 타면 앞좌석 머리맡에 있는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있었다. 영화나 음악 등을 이용 가능했지만 이어폰이 없어서 듣진 못했다.
2시간이 채 안 걸려 잘츠부르크에 도착했다. 도착한 날이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도 적었다. 예약해둔 숙소를 찾아가려고 버스정류장 옆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에 물어봤다. 잘츠부르크 시내 지도 한 장을 꺼내서 설명을 해주면서 꽤 멀단다. 하긴 이 더운 날에 배낭을 메고 걸어가야 하니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대략 설명을 들었으니 일단 도전! 길을 찾아 찾아가다 보니 넓은 강 하나가 흐르는 곳에 다다랐다. 잘자흐 강. 강이 나왔다는 것은 근처에 숙소가 있다는 뜻이다. 곧장 한적한 골목이 시작되는 곳에 숙소가 있었다. 주변이 시끄럽지도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살짝 떨리는 마음을 안고 호스텔 입구에 들어서니 바로 리셉션이 있었다. 내부에도 투숙객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체크인을 하는데 리셉션에 있던 스텝이 한국에서 봤냐며 반가워했다. 왜 그렇게 반겨주나 했더니 얼마 전까지 경기도 수원에 있었다고 했다. 서울이나 부산도 아닌 경기도 수원이라니! 외국에서 경기도를 아는 사람은 처음 봤다. 누군가가 나를 반겨주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이었던가. 덕분에 나도 기분이 좋았다.
내가 묵을 방 번호를 알려주는데 숫자라서 살짝 헷갈렸다. 내가 알쏭달쏭해하는 표정을 짓자 직접 방까지 안내해줬다. 방에 문을 여니 큼지막한 창에 뜨겁지 않을 정도의 기분 좋은 햇살이 들어왔다. 호텔식 침구처럼 하얗고 깔끔하고 푹신했다. 좁은 방에 2층 침대 세 개를 다닥다닥 붙여놓지 않고 1층 침대 여섯 개로 구성되어있었다. 묵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어느 침대를 선택할까 신중히 고민하고 선택했다. 창문이 너무 예뻐서 사진으로 남겼는데 외장하드 속 없어진 사진들 중 하나가 돼버렸다. 사진은 없지만 아직도 그 장면이 생생하다. 너무 예뻤다.
스텝이 안내해준 주방에서 여유롭게 노트북을 열었다. 내가 앉은자리 맡은편에도 큰 창문이 있었는데 바깥엔 운동장이 보였다. 마치 이 넓은 호스텔에 나만 있는 기분이었다. 무엇인가 해야 할 필요도 의무도 없이 편안함을 만끽했다. 조금 있다가 밖으로 나갔더니 단체 관광객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뮌헨의 시청사 앞처럼 와글와글 북적북적하지 않았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여주인공 마리아가 아이들과 '도레미 송'을 불렀던 장소로 유명한 미라벨 정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 전까지 안보이던 사람들이 미라벨 궁전 근처에 다다르자 많아졌다. 햇빛이 가장 강렬한 낮 시간대였기 때문에 정원을 찬찬히 둘러보고 살피기엔 너무 더웠다. 건물 안에서 쉬엄쉬엄 시간을 보내는데 DSLR과 고프로와 가방 등을 들고다니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한꺼번에 싹 다 넣어버릴 가방이 필요해서시내로 향했다. 때 마침 중앙역 옆에 쇼핑몰(포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곳에 가려고 했다. 하지만 토요일의 경우 오후 다섯 시 반이면 문을 닫는다고 했다. 그때 출발해봤자 도착하면 거의 다섯 시 반이 다될 예정이었다. 둘러볼 시간도 없이 바로 나와야 하니 가지 않기로 했다. 버스를 내린 곳이 중앙역 근처였고 걸어오는 길이 만만치 않았는데, 가기 전에 영업 종료 시간을 알게 돼서 다행이었다.
잘츠부르크에 오기 전까지 모차르트로 유명한 곳인지 몰랐다. 넓지 않은 중심가지만 곳곳에 모차르트의 박물관과 생가가 있었다. 앞으로가 기대됐다. 100일간 여행을 하면서 어떤 책을 쓸지 고민한 내게 대략의 책 방향이 잡힌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컨셉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돌아간 방에는 나 외에 한 명이 더 생겼다. 중국인지 아시아인 남자였는데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6인실에 2명밖에 없어서 잠잘 때 살짝 걱정되긴 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뽀송뽀송한 하얀 이불을 덮고 잘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