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유럽 여행은 '새로움'과 조우한 시간이다.
혼자서 여행하는 매 순간순간이 다 경험의 연속이다. 매번 새롭고 놀라운 일 투성이 여러 일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 지난 일이지만 아직까지 의아하고 특별했던 경험이 있다.
100일 유럽 여행의 막바지 무렵 핀란드에서 있었던 일이다. 핀란드의 수도인 헬싱키는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의 배경인 곳이다. 뿐만 아니라 사우나 문화도 발달한 곳이었다. 처음 여행을 떠났을 때와 다르게 어느새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뜨끈하게 피로를 녹일 곳이 필요했다. 시내에 위치한 호스텔 근처에 사우나 겸 누드 수영장인 yrionkatu swimming pool 가 있었다. 누드 수영장이라니? 그럼 수영복 없이 수영을 한다는 것인가?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설명을 보니 요일/시간마다 남녀의 입장 가능 여부가 달랐다. 도착한 첫날 다행히 여자가 입장 가능한 날이었다. 오픈 시간이 낮 12시였는데 열자마자 바로 입장했다. 카운터에서 수영복을 입어야 하냐고 물어보니 도통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누드 수영장인데 나만 수영복을 입으면 안 될까 싶어서 물어봤다. 결국 그렇게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다가 나에게 원피스 수영복을 내밀었다. 난 이미 수영복을 가지고 있기에 그 원피스 수영복을 가리키며 '입어야 해?'라고 물어보지만 대화 불가.
결국 영어가 가능한 다른 직원이 와서 무사히 입장을 마쳤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것도 모른 채 걸어가다가 다른 손님이 알려줘서 문득 깨달음! 아, 여러모로 한국이랑 비슷한 느낌이구나 싶었다.
들어가니 제일 먼저 보이는 꽤 넓은 수영장이었다. 수영이 주가 아니니 사우나로 향했다. 우리나라의 사우나 같은 곳처럼 생겨서 안에는 계단식으로 앉아있게 되어있었다. 거의 두 명씩 온 것 같았고 대화를 하더라도 소곤소곤 조용한 분 우기였다. 수건이 없어서 깔고 앉을 게 없었는데 다들 수건을 깔고 있었다. 지친 몸이 노곤노곤해지고 무릎이 따땃해짐을 느끼며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갔다. 다음 날이 되어서 또 그곳을 향했다.
어제랑 오늘까지만 여자가 입장 가능하고 그 이후론 남자 차례였기 때문에 이틀 연속 사우나로 출근! 둘쨋날은 수영장에 아예 들어가지도 않고 사우나를 하고 씻고 나서 체중을 재보려고 체중계가 있는 출입문 옆쪽으로 갔다. 익숙하지 않은 큼지막한 체중계에 몸무게를 확인하고(아싸! 빠졌다!) 다시 돌아가려는데 이게 웬걸?
수영장 중앙에 웬 남자가 떡하니 있는 것이다. 분명히 오늘은 여자가 입장하는 날인데... 멘붕에 빠졌다. 누드 수영장이라고 하나, 라이프가드가 남자라니? 다시 내 눈 앞에 펼쳐진 누드 상태의 여자들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럼 여기 있는 여자들은 다 아무렇지 않다는 것인가? 머리가 복잡 복잡-
그보다 나도 얼른 옷을 챙겨 입어야 했기에 서둘러 나갈 채비를 친 후 나가는 길에 다시 한번 확인을 했다. 머리가 짧은 여자가 아닐까 했던 내 기대는 부서지고 완벽한 남자였다.
알고 보니 이 곳은 라이프가드가 남자인 게 맞단다.
와... 이게 바로 문화충격인가? 한국에선 상상도 하지 못할 경험을 겪고서 신기하기도 하고 웃음도 났다.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밖으로 나와 '이게 진짜인가' 라며 중얼중얼하면서도 '그래! 핀란드가 아니면 어디서 이런 경험 해보겠어'라며 차라리 이국 땅에서 이런 일을 겪는 게 나은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숙소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