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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의 맛

그 속에 그림처럼 머물게 되는
제주 카페 4

by 트래비 매거진

제주 하면 단박에 바다, 그것도 육지의 그것과는 다른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를 떠올리게 되지만 그 그림 같은 바다 풍경을 볼 수 없는데도 ‘응. 괜찮아.’ 하게 되는 카페들이 있다. 오래된 주택 또는 귤 창고를 개조하여 세련되지만 자연스러운 ‘꾸안꾸’의 매력이 드러나는 공간들. 덕분에 내가 마치 그 공간의 주인인 것처럼 그 속에 스며들어 그림처럼 머물게 된다.


%ED%92%80%EB%B2%A0%EA%B0%9C_%282%29.jpg?type=w1200 풀베개 곳곳 주인의 취향이 엿보이는 소품들


풀베개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풀베개>에서 이름을 딴 카페 풀베개. 풀을 베개 삼아 눕는 건 어떤 느낌일까 생각해보게 되는데 소설 <풀베개>를 콕 집어 좋아한다기보다는 나쓰메 소세키를 사랑하는 오너의 마음이 카페 이름은 물론 메뉴에도 그의 작품을 딴 이름을 붙이게 된 까닭이다. 하마터면 ‘도련님’ 카페가 될 뻔했다고.


%ED%92%80%EB%B2%A0%EA%B0%9C_%281%29.jpg?type=w1200 만지작만지작 구경하는 사이 주문한 메뉴가 준비된다


%ED%92%80%EB%B2%A0%EA%B0%9C_%283%29.jpg?type=w1200 아름드리나무들이 적당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풀베개 마당.


바깥채는 카페이자 책과 식기, 문구, 생활용품, 그리고 딱히 쓸모는 없을지 몰라도 예쁘니까 그저 갖고 싶은 것들이 소복한 편집숍이다. 안채는 어른들에게만 허락된 공간. 그렇다고 19금은 아니다. 어린아이와 반려동물까지 모두 환영하는 풀베개이지만 안채는 좀 더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규칙을 정했다. 안채와 바깥채를 두르고 있는 마당은 아름드리나무가 무성한 이파리로 자연의 그늘을 만들어 주어 좀 덥고, 좀 쌀쌀해도 기꺼이 돌담 너머 귤밭이 보이는 그곳에 앉아 바깥공기를 쐬는 사람들이 있다.


%ED%92%80%EB%B2%A0%EA%B0%9C_%284%29.jpg?type=w1200 즐겁게 일하는 풀베개 사람들이 만든 맛있는 커피와 빵.


풀베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서서로 492-4

홈페이지: https://www.instagram.com/pullbege




이정의댁


이정의댁은 사실 ‘이정의 댁’이라 띄어 써야 맞다. 키워주신 할머니를 ‘정의 씨’라고 부르는 손녀가 할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한편 그녀가 누구의 어머니, 누구의 할머니가 아닌 그녀 자신 ‘이정의’로 기억되길 바라며 고향 동네에 할머니 이름을 딴 디저트 가게를 열었다. 살아온 자리와 살아낸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가운데 계절을 떠올리게 하는 디저트까지. 이정의댁에 때와 흐름에 관한 디저트 상점이라는 소개말이 붙는 이유다.


%EC%9D%B4%EC%A0%95%EC%9D%98%EB%8C%81_%281%29.jpg?type=w1200 최대한 있는 그대로가 좋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기는 마음으로 단장한 이정의댁


%EC%9D%B4%EC%A0%95%EC%9D%98%EB%8C%81_%282%29.jpg?type=w1200 다양한 나무 질감이 느껴지는 이정의댁


5년여 중문동에서 문을 여닫던 이정의댁은 지난여름 상예동으로 옮겨 시즌2를 시작했다. 조용했던 고향 동네에 새로운 공간들이 하나둘 늘면서 고민이 많아졌다고. 조금 더 차분한 공간을 찾아 옮긴 만큼 정의 씨의 손녀는 토박이 어르신들이 이정의댁을 오가는 손님들 때문에 번잡스러워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하고 있다. 그 노력을 애틋하게 여기는 손님들 역시나 때와 흐름을 흐트러트리지 않으려 애쓴다. 아름다운 마음들로 가득한 공간이다.

%EC%9D%B4%EC%A0%95%EC%9D%98%EB%8C%81_%283%29.jpg?type=w1200 제철을 느끼게도, 계절을 되돌리게도 하는 이정의댁 디저트들


%EC%9D%B4%EC%A0%95%EC%9D%98%EB%8C%81_%284%29.jpg?type=w1200 이정의댁 아름드리나무 아래 누구나 그림이 되는 풍경


이정의댁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예래로144번길 22 이정의댁

홈페이지: https://www.instagram.com/jeongui_/




카페 세러데이아일랜드


카페 세러데이아일랜드는 평대에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세러데이아일랜드에서 남원에 선보인 카페다. 그러니까 평대점은 이탈리아 레스토랑, 남원점은 카페. 스며드는 빛에 따라 조금씩 다른 질감과 미감이 느껴지는 미장이 인상적이다. 좀 게으름 피우며 쉬어도 괜찮을 것 같은 토요일의 느긋한 무드를 사랑하는 이들이 만든 공간답게 이탈리아나 남프랑스의 한적한 마을에 와 있는 것처럼 목가적으로 단장했다.


%EC%84%B8%EB%9F%AC%EB%8D%B0%EC%9D%B4%EC%95%84%EC%9D%BC%EB%9E%9C%EB%93%9C_%281%29.jpg?type=w1200 모두를 위해 비워두는 공간은 세러데이아일래드의 공식 포토존


%EC%84%B8%EB%9F%AC%EB%8D%B0%EC%9D%B4%EC%95%84%EC%9D%BC%EB%9E%9C%EB%93%9C_%282%29.jpg?type=w1200 새러데이아일랜드에는 마주 보고 앉기보다 나란히 앉는 자리가 많다


초록 정원을 향해 낸 창가 자리는 카메라를 꺼내지 않곤 안 되겠다 싶을 만큼 아름다운데, 이 아름다운 곳에서 행여 소란이 일어날까 카페에선 모두의 평화를 위해 자리를 비워두고 있다. 이렇다 할 눈치게임 없이 모두가 평화롭게 아름다운 것들을 나눌 수 있으니 묘안이다.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커피 메뉴, 디저트 메뉴 모두 충분히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맛. 세러데이아일랜드에선 모든 요일이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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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러데이아일랜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평대7길 51

홈페이지: https://www.instagram.com/saturdayisland_a/




볼스 카페


제주도의 오래된 귤창고를 재생하는 프로젝트로 완성된 공간이다. 1층 볼스 카페와 2층 버터탑 브레드의 빵공장이 힘을 합한 볼스 프로젝트. 이제 더 이상 귤밭은 없지만 천장까지 자란 초록 식물과 올리브그린 톤의 정원 가구들을 배치해 귤밭의 싱그러움을 실내로 옮겨왔다. 창밖으론 오랫동안 귤밭을 든든히 지켜준 삼나무 방풍림들이 초록의 기운을 카페 안으로 이끈다.


%EB%B3%BC%EC%8A%A4%EC%B9%B4%ED%8E%98_%281%29.jpg?type=w1200 싱그러운 초록 기운으로 가득한 볼스 카페


재생이라는 콘셉트도 좋지만 다크 로스팅하여 깊은 풍미를 내는 커피와 비에누아즈리(viennoiserie)라고 하는 부드러운 빵의 조화가 예사롭지 않다. 비에누아즈리는 버터, 달걀, 우유, 설탕이 들어간 발효 반죽으로 만드는 빵의 한 종류로 프랑스에서는 따뜻한 커피와 함께 아침식사나 간식으로 먹는 빵을 통칭한다. 그렇담 프랑스식으로 즐겨야 제맛. 이르면 11시, 대개 12시가 되어야 문을 여는 여느 제주 카페들보다 조금 일찍, 볼스 카페는 10시에 문을 열어 부지런한 여행자들이 더욱 반기는 공간이다.


%EB%B3%BC%EC%8A%A4%EC%B9%B4%ED%8E%98_%282%29.jpg?type=w1200 유럽 도심 공원에 듬성듬성 놓인 벤치와 테이블이 떠오르는 올리브그린 톤의 가구들


제주의 싱그러움을 담아낸 시그니처 향 한라 포레스트(HALLA FOREST)가 은은하게 흐르는 것도 볼스 카페의 숨은 매력. 패브릭 미스트와 디퓨저에 붙은 born in jeju 라벨에서 제주가 품고 있는 생명력을 존중하는 마음이 읽힌다.

%EB%B3%BC%EC%8A%A4%EC%B9%B4%ED%8E%98_%283%29.jpg?type=w1200 2층 빵공장에서 만든 빵은 비주얼부터 거부할 수 없게 만든다


%EB%B3%BC%EC%8A%A4%EC%B9%B4%ED%8E%98_%2824%29.jpg?type=w1200 귤창고 외관을 그대로 살렸다


볼스카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일주서로 626

홈페이지: https://www.instagram.com/volsproduction_official



글·사진 서진영 트래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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