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하면 단박에 바다, 그것도 육지의 그것과는 다른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를 떠올리게 되지만 그 그림 같은 바다 풍경을 볼 수 없는데도 ‘응. 괜찮아.’ 하게 되는 카페들이 있다. 오래된 주택 또는 귤 창고를 개조하여 세련되지만 자연스러운 ‘꾸안꾸’의 매력이 드러나는 공간들. 덕분에 내가 마치 그 공간의 주인인 것처럼 그 속에 스며들어 그림처럼 머물게 된다.
풀베개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풀베개>에서 이름을 딴 카페 풀베개. 풀을 베개 삼아 눕는 건 어떤 느낌일까 생각해보게 되는데 소설 <풀베개>를 콕 집어 좋아한다기보다는 나쓰메 소세키를 사랑하는 오너의 마음이 카페 이름은 물론 메뉴에도 그의 작품을 딴 이름을 붙이게 된 까닭이다. 하마터면 ‘도련님’ 카페가 될 뻔했다고.
바깥채는 카페이자 책과 식기, 문구, 생활용품, 그리고 딱히 쓸모는 없을지 몰라도 예쁘니까 그저 갖고 싶은 것들이 소복한 편집숍이다. 안채는 어른들에게만 허락된 공간. 그렇다고 19금은 아니다. 어린아이와 반려동물까지 모두 환영하는 풀베개이지만 안채는 좀 더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규칙을 정했다. 안채와 바깥채를 두르고 있는 마당은 아름드리나무가 무성한 이파리로 자연의 그늘을 만들어 주어 좀 덥고, 좀 쌀쌀해도 기꺼이 돌담 너머 귤밭이 보이는 그곳에 앉아 바깥공기를 쐬는 사람들이 있다.
풀베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서서로 492-4
홈페이지: https://www.instagram.com/pullbege
이정의댁
이정의댁은 사실 ‘이정의 댁’이라 띄어 써야 맞다. 키워주신 할머니를 ‘정의 씨’라고 부르는 손녀가 할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한편 그녀가 누구의 어머니, 누구의 할머니가 아닌 그녀 자신 ‘이정의’로 기억되길 바라며 고향 동네에 할머니 이름을 딴 디저트 가게를 열었다. 살아온 자리와 살아낸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가운데 계절을 떠올리게 하는 디저트까지. 이정의댁에 때와 흐름에 관한 디저트 상점이라는 소개말이 붙는 이유다.
5년여 중문동에서 문을 여닫던 이정의댁은 지난여름 상예동으로 옮겨 시즌2를 시작했다. 조용했던 고향 동네에 새로운 공간들이 하나둘 늘면서 고민이 많아졌다고. 조금 더 차분한 공간을 찾아 옮긴 만큼 정의 씨의 손녀는 토박이 어르신들이 이정의댁을 오가는 손님들 때문에 번잡스러워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하고 있다. 그 노력을 애틋하게 여기는 손님들 역시나 때와 흐름을 흐트러트리지 않으려 애쓴다. 아름다운 마음들로 가득한 공간이다.
이정의댁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예래로144번길 22 이정의댁
홈페이지: https://www.instagram.com/jeongui_/
카페 세러데이아일랜드
카페 세러데이아일랜드는 평대에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세러데이아일랜드에서 남원에 선보인 카페다. 그러니까 평대점은 이탈리아 레스토랑, 남원점은 카페. 스며드는 빛에 따라 조금씩 다른 질감과 미감이 느껴지는 미장이 인상적이다. 좀 게으름 피우며 쉬어도 괜찮을 것 같은 토요일의 느긋한 무드를 사랑하는 이들이 만든 공간답게 이탈리아나 남프랑스의 한적한 마을에 와 있는 것처럼 목가적으로 단장했다.
초록 정원을 향해 낸 창가 자리는 카메라를 꺼내지 않곤 안 되겠다 싶을 만큼 아름다운데, 이 아름다운 곳에서 행여 소란이 일어날까 카페에선 모두의 평화를 위해 자리를 비워두고 있다. 이렇다 할 눈치게임 없이 모두가 평화롭게 아름다운 것들을 나눌 수 있으니 묘안이다.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커피 메뉴, 디저트 메뉴 모두 충분히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맛. 세러데이아일랜드에선 모든 요일이 만족스럽다.
세러데이아일랜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평대7길 51
홈페이지: https://www.instagram.com/saturdayisland_a/
볼스 카페
제주도의 오래된 귤창고를 재생하는 프로젝트로 완성된 공간이다. 1층 볼스 카페와 2층 버터탑 브레드의 빵공장이 힘을 합한 볼스 프로젝트. 이제 더 이상 귤밭은 없지만 천장까지 자란 초록 식물과 올리브그린 톤의 정원 가구들을 배치해 귤밭의 싱그러움을 실내로 옮겨왔다. 창밖으론 오랫동안 귤밭을 든든히 지켜준 삼나무 방풍림들이 초록의 기운을 카페 안으로 이끈다.
재생이라는 콘셉트도 좋지만 다크 로스팅하여 깊은 풍미를 내는 커피와 비에누아즈리(viennoiserie)라고 하는 부드러운 빵의 조화가 예사롭지 않다. 비에누아즈리는 버터, 달걀, 우유, 설탕이 들어간 발효 반죽으로 만드는 빵의 한 종류로 프랑스에서는 따뜻한 커피와 함께 아침식사나 간식으로 먹는 빵을 통칭한다. 그렇담 프랑스식으로 즐겨야 제맛. 이르면 11시, 대개 12시가 되어야 문을 여는 여느 제주 카페들보다 조금 일찍, 볼스 카페는 10시에 문을 열어 부지런한 여행자들이 더욱 반기는 공간이다.
제주의 싱그러움을 담아낸 시그니처 향 한라 포레스트(HALLA FOREST)가 은은하게 흐르는 것도 볼스 카페의 숨은 매력. 패브릭 미스트와 디퓨저에 붙은 born in jeju 라벨에서 제주가 품고 있는 생명력을 존중하는 마음이 읽힌다.
볼스카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일주서로 626
홈페이지: https://www.instagram.com/volsproduction_official
글·사진 서진영 트래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