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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Nov 19. 2021

역사를 품은 바닷길
'제주올레19코스'

제주올레19코스는 조천 만세동산(제주항일기념관)에서 시작해서 김녕 서포구(해녀마을쉼터 부근)에서 끝나는 19.4km 구간으로 약 6~7시간 정도 걸린다. 바닷가길, 마을길, 숲길을 걸을 수 있는 이 코스는 제주 4.3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역사의 이야기를 알고 보는 풍경이 찬란해서 더 애잔하다.


항일독립투쟁의 역사가 빛나는
조천 만세동산


제주올레 19코스의 출발지점인 조천 만세동산은 제주 항일독립투쟁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조천 만세동산에 있는 항일기념관에서 제주 사람들의 항일독립투쟁의 역사를 알아본다.


출발 지점인 조천 만세동산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기 전인 1918년 법정사 스님과 지역 주민 등 400여 명이 중문 주재소를 습격하고 불태워 항일 독립의 의지를 떨친 ‘법정사항일운동’이 일어났다. 1919년 3월21일부터 3월24일까지 조천 미밋동산(만세동산)과 조천 장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는 탑도 있다. 1931년~1932년에 구좌, 성산, 우도 등의 해녀를 중심으로 일어난 해녀항일운동은 일제의 식민지 약탈에 항거하는 제주 해녀들의 항일운동이었다. 2년 동안 238회에 걸쳐 연인원 1만7000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드높은 항일의 의지로 일어섰던 민초들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항일기념관을 뒤로하고 조천리 들녘을 지나 조천 해안도로로 접어든다. 이 길로 가면 관곶이다.


조천만세동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1142-1


관곶에서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바다와 길이 만든 풍경


관곶은 조천읍 신흥리 바닷가에서 북쪽으로 삐죽 튀어나온 곳이다. 전남 해남 땅끝 마을에서 제주 사이를 잇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포구라고 알려졌다. 당시 조천 포구는 제주의 관문 역할을 했다.


관곶 앞바다


관곶에서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바다를 지난 바람이 해안선을 따라 구불거리며 이어지는 도로를 넘어 낮은 언덕에 겹겹이 쌓인 현무암 돌담을 지난다. 마른 풀이 바람에 일렁이고, 사람들은 그 풍경 속을 걷는다.
신흥리 앞바다가 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바다를 뒤로하고 마을로 접어든다. 세월의 더께 앉은 담벼락과 어수룩하게 쌓은 현무암 돌담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함덕 해변이다.


관콧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흥리


함덕 해변, 그리고 서우봉


함덕 마을 골목을 지나 맞이하는 함덕 해변이 빛난다. 바다를 옆에 두고 걷는다. 멀리 앞으로 가야할 서우봉이 보인다. 해변은 잠시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진다. 함덕의 작은 해변, 바다가 맑은 옥빛이다. 넘실대는 파도가 이랑처럼 일어나 일렬로 밀려든다. 파도를 스치며 갈매기가 날고, 파도는 하얗게 부서진다. 맑고 고운 물결에 햇볕이 반짝인다.



길은 서우봉으로 이어진다. 그 길에서 비석 하나를 보았다. 비석에 적힌 내용에 따르면 이곳이 고려를 침범한 원나라에 항거하여 싸운 삼별초의 항쟁지다. 이곳에서 삼별초군은 섬멸 당했다고 전해진다.


서우봉 길


서우봉 산허리로 이어지는 숲길은 짧다. 그 길을 지나면 하늘이 열린다. 하늘이 열린 길은 북촌마을로 이어진다. 북촌의 바다는 눈부시지만 북촌 마을은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함덕해수욕장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함해안로 525


서우봉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169-1


애기무덤과 널브러진 문학비


북촌마을은 제주 4.3사건이 일어났던 역사의 현장이다. 4.3사건이란 1945년 광복 이후 1948년 4월3일 남한의 단독선거와 단독정부수립을 반대했던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의 무장봉기와 토벌대의 토벌 그리고 토벌대에 의한 주민 학살 사건을 말한다.

1947년 3월1일 경찰의 발포가 있었고 이를 기점으로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탄압에 저항하는 활동이 전개됐다. 1954년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는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이 계속 발생했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했다.


너븐숭이 4.3기념관


그 가운데 ‘너븐숭이4.3유적지’는 북촌리주민대학살의 현장이었다. 1949년 1월 세화에 주둔한 병력 중 일부가 대대본부가 있는 함덕으로 가던 도중에 북촌 마을 너븐숭이에서 무장대의 기습을 받아 군인 2명이 숨졌다. 군인들은 죽은 군인의 시신을 군부대로 이송했던 주민 중 경찰가족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사살했다.


이후 2개 소대 병력이 북촌 마을을 포위하고 집마다 들어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학교 운동장으로 모이게 했다. 마을주민 1000여 명 중 군경가족은 따로 모으고 나머지 사람들을 빨갱이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다그치기 시작했다. 일이 수월치 않게 되자 군인들은 주민을 몇 십 명 단위로 끌고나가 학교 인근 ‘당팟’ ‘너븐숭이’ ‘탯질’ 등지에서 사살하기 시작했다. 이날 학살이 끝나고 나자 겁에 질린 사람들은 산으로 숨어들었다. 다음 날도 주민 학살은 계속 됐다. 이렇게 죽은 북촌리 주민이 300명이 넘었다.


너븐숭이 4.3기념관 주변에 있는 작가 현기영의 '순이삼촌' 조형물


애기무덤


작가 현기영의 <순이삼촌>이라는 작품의 배경 무대가 이곳이기도 하다. 기념관 앞에는 당시에 죽은 아기들을 묻은 애기무덤이 있고 그 주변에 순이삼촌문학비가 있다. 비석들이 서 있지 않고 널브러진 것처럼 누워있는데 4.3사건 당시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상징한 것이라 한다.


너븐숭이4.3기념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3길 3


북촌마을


너븐숭이4.3기념관을 뒤로하고 북촌 마을로 걷는다. 파란색 지붕이 낮게 드리운 집 울타리 아래에서 바닷물이 찰랑거린다. 바다와 함께 하는 마을 풍경이 아픈 역사를 품어 애잔하게 느껴진다.



다려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마을 항구 앞바다에 섬(다려도)이 보인다. ‘북촌리주민대학살’때 일부 주민들이 도망가서 숨어있던 섬이라고 한다. 항구 한쪽에 북촌등명대가 있다. 북촌리 앞바다를 오가는 배들을 위해 불을 밝히던 시설인데 비석에 그날의 총탄자국이 남았다.


북촌등명대


북촌등명대 위 비석에 제주 4.3사건 당시 총탄자국이 남아 있다.


올레길 이정표를 따라 마을을 벗어난다. 제주 4.3의 역사에 숙연해진 마음으로 뒤돌아본 북촌 마을은 낮게 엎드려 숨을 죽이고 있는 것 같았다.


북촌리선사유적지 북촌동굴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북촌리선사주거지유적지(북촌동굴)를 지나 동복리 마을 운동장을 지나면 길은 숲으로 들어간다.


북촌포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9길 26-1


북촌리선사주거지유적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북촌동굴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숲길을 지나 김녕 바다 앞에 서다


숲이지만 오르막이 거의 없어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다. 이곳부터 김녕마을 농로까지는 숲길이다. 나뭇가지가 하늘을 가린 숲길을 걷는다. 하늘이 열리는 곳에서 거대한 풍차의 날개가 보인다. 나무뿌리가 드러난 곳에 이끼가 덮였다. 검은빛 흙길도 지난다.


김녕 마을


숲길이 끝나고 김녕 마을 농로가 열린다. 현무암 돌담 쌓인 밭, 띄엄띄엄 자리 잡은 지붕 낮은 집들, 제주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제주 4.3사건, 역사의 아픔을 지금을 살아가는 제주 사람들의 땀이 서린 생활의 풍경이 감싸 안는다. 도착지점인 김녕 서포구 앞바다가 바람에 일렁이고 있었다.


김녕 서포구


김녕마을회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일주동로 2045


김녕서포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제주올레19코스


▶총길이 : 19.4km
▶소요시간 : 6~7시간
▶코스 : 조천만세동산(제주항일기념관) - 관곶 - 신흥해변 - 함덕서우봉해변 - 서우봉 - 너븐숭이4.3기념관 - 북촌마을(북촌교회) - 북촌포구 - 북촌리선사주거유적(북촌동굴) - 동복교회 - 동복리마을운동장 - 김녕마을 입구 - 김녕농로 - 남흘동 - 백련사 – 김녕서포구


제주올레길19코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2688


 
글·사진 장태동 트래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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