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마을에서 자만벽화마을까지
전주 한옥마을에 계절별로 이름을 붙인다면 가을은 ‘은행나무마을’이 좋겠다. 거리는 물론, 경기전, 전주 향교 등은 은행나무 단풍으로 유명하다. 특히 600년 넘는 세월을 살고 있는 은행나무 고목은 자식 나무와 함께 한옥마을의 가을 별칭으로 이름 붙인 ‘은행나무마을’을 상징하고 있다. 한옥마을 오목대를 지나면 나오는 자만마을 골목 어느 벽화에도 가을이 깊다.
전주남부시장 콩나물국밥을 먹고 풍남문을 보다
전주 한옥마을 여행의 출발지점은 전주남부시장이다. 그 이유는 순전히 콩나물국밥 때문이다. 국밥을 토렴해서 여러 재료를 고명으로 얹어 먹는다. 콩나물국밥 국물까지 싹 비워야 제 맛이다. 쌀쌀한 날씨에 속이 든든하고 뜨끈하다.
시장을 나서면 전주읍성의 남쪽 문인 풍남문을 만난다. 거리의 은행나무 노란 단풍이 풍남문 문루 기와지붕의 곡선과 잘 어울린다. 가로수가 은행나무이니 길거리가 온통 노랗게 물들었다. 풍남문 교차로에서 태조로로 접어들면 오른쪽에 전동성당, 왼쪽에 경기전이 있다.
풍남문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3길 1 풍남문
남부시장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1길 19-3
단풍 물든 경기전을 걷다
경기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보관하는 곳이다. 하마비에 적힌 말이 단호하다. ‘사람들은 말에서 내리고 아무나 출입하지 말라’
어진 봉안의 삼엄함이야 없어진 지 오래지만 조선 건국의 상징성이 깃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보는 마음은 남달랐다. 진품은 특별전이 열려야 볼 수 있지만, 모사품에서 풍기는 기운도 예사롭지 않다.
단풍 물든 경내가 고즈넉하다. 푸른 대숲과 단풍이 어울린다. 몸 비틀며 자란 나무 한 그루, 단풍도 그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예종대왕 태실과 태실을 알리는 비석 앞에 섰다. 태실 안 예종대왕의 태를 담은 항아리는 1928년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가져갔다. 1970년 파괴되어 있던 태실과 비석을 찾아 지금의 자리에 옮겨 세웠다. 경기전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전주사고도 있다.
전주사고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3가
예종대왕태실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44
전주경기전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44
태조로 은행나무 단풍과 600년 은행나무
경기전을 나와 태조로 은행나무길을 걷는다. 꼭 가야하는 곳을 정하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걷는다. 하늘은 파란빛이다. 공기도 맑고 투명하다. 그 속에 피어난 은행나무 노란 단풍잎들이 맑게 빛난다. 바람이 불어가면 단풍잎이 공중에 날린다. 그 배경은 한옥의 기와지붕이고 담장이다.
그렇게 이리저리 거리를 걷다 ‘600년 은행나무’를 만났다. 600년이 훨씬 넘은 은행나무인데 상징적으로 ‘600년 은행나무’라고 부른다. 2005년 나무 밑동에서 어린 나무가 자라났다. ‘600년 은행나무’의 자식 나무였다.
태조로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교동
은행나무 단풍이 아름다운 전주 향교
전주 향교는 조선시대 세종 임금 때 경기전 근처에 있었다. 전주 서쪽의 화산 기슭으로 옮겼다가 1604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전주 향교에는 280여 년 된 것부터, 430년 넘게 살고 있는 은행나무까지 은행나무 고목이 여러 그루다.
향교에 은행나무를 심은 이유 중 하나는 벌레가 잘 슬지 않기 때문이란다. 관직에 나가서도 부정에 물들지 말라는 뜻이 담겨있다.
일월문을 지나면 은행나무 단풍 세상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대성전과 명륜당 앞마당을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 고목들이 향교의 한옥 건물과 잘 어울린다.
전주향교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향교길 139 전주향교
오목대를 지나 자만마을 골목을 거닐다
오목대는 1380년(고려 우왕 6년)에 이성계가 남원, 운봉, 황산 등지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돌아가는 길에 종친들과 전승축하잔치를 벌인 곳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훗날 고종 임금은 친필로 새긴 비석을 세웠다. 당시의 상황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다.
오목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기린대로 55
오목대는 바로 태조 대왕이 남쪽을 정벌하고 개선할 때 머물렀던 곳이어서 그곳에 사는 늙은이들이 그 터를 가리키기도 하고 혹은 돌담이 아직 남아 있기도 하다. 선조를 찬양하는 도리로 보아 어찌 표지(表識)하는 예가 없을 수 있겠는가? 기문(記文)은 친히 지을 것이니…
오목대에서 육교를 건너면 이목대가 나온다. 이목대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가 살았던 곳이다. 그 마을 이름이 자만마을이다. 마을 골목길 담벼락을 그림으로 수놓았다. 마을 위 숲이 갈빛으로 빛난다. 골목 어느 담벼락 벽화에도 가을이 깊게 물들었다.
자만벽화마을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교동 50-158
글·사진 장태동 트래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