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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Nov 20. 2021

남한강에 흐르는 옛 이야기

남한강을 거슬러 오르며


충주를 흐르는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옛 이야기 남아 있는 곳을 돌아봤다. 용의 전설이 내려오는 목계솔밭과 한때 번성했던 옛 목계나루 시작으로 뱃사람들의 안녕을 빌었던 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입상을 보고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탄금대에서 걸음을 멈췄다.


열두대에서 본 남한강


창동리 건너편 남한강 가에서 본 남한강 풍경


남한강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율능리



옛 목계나루터와 용의 전설이 내려오는
목계솔밭


목계는 남한강 중상류에 있는 마을이다. 상류에 제천, 단양, 영월, 정선이 있고 하류에 원주, 여주, 양평, 서울이 있다. 조선시대에 강물을 오르내리는 하상교통이 발달한 내륙의 포구였다.


목계솔밭에서 본 풍경. 강 건너편이 목계나루가 있었던 곳이다. 그곳에 신경림 시인의 시 '목계장터'가 새겨진 시비가 있다.
목계나루가 있던 자리


조선 초기에는 소금, 해산물, 생활필수품 등을 배에 싣고 와서 물물교환 형태로 거래했다. 조선 후기에는 인구가 많아져서 거래 양도 그만큼 늘었다. 목계나루는 크게 발달했다. 백사장이 장터였다.


목계나루터 부근 풍경.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영덕천 물줄기


목계나루터를 알리는 비석


목계는 충북, 경북, 강원 등을 잇는 육로의 요충지이기도 했다. 따라서 보부상들의 거래도 활발했었다. 하상교통과 육상교통의 요충지였던 목계는 1900년대 초기에는 20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1973년 목계대교가 놓이면서 나루는 사라졌다. 나루가 있던 자리 위에 나루터를 알리는 표석을 세웠다.


목계나루터 부근 풍경.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영덕천


그곳에 신경림 시인의 시 <목계장터>를 새긴 시비가 있다. 시비에 새겨진 시의 한 구절, [민물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에서 오래 전 어느 날 이곳에서 팍팍한 다리 쉬어가던 장돌뱅이의 하루를 생각했다.


신경림 시인의 시 '목계장터'를 새긴 시비


옛 목계나루터 강 건너편은 목계솔밭이다. 수십 그루의 소나무가 작은 동산에 빼곡하다. 충주시 자료에 따르면 조선시대 헌종 임금 때 이곳에 가뭄이 오래 지속되고 있었는데, 목계 마을의 지도자와 강 건너편 저우내 마을 지도자가 같은 날 같은 꿈을 꾸었다. 두 사람의 꿈에 신령이 나타나 저우내에 소나무를 심어 용이 머물게 하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렇게 꾸며진 목계 솔밭은 지금도 남아 있다. 솔밭에 있는 수십 그루의 소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됐다.

옛 목계나루터에서 본 목계솔밭


목계솔밭


목계나루터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309


목계솔밭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 412-2




강가 절벽에 새겨진 부처상


옛 목계나루터와 목계솔밭이 있는 곳에서 강을 거슬러 10km 정도 올라가면 강에서 수직으로 솟은 절벽에 새겨진 부처상을 만날 수 있다. 공식 이름은 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입상이다.


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입상. 강가 절벽에 약 4m 높이로 새겨졌다


창동리를 지나는 청금로 도로에 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입상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를 따라 작은 동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향한다. 계단을 올라서서 조금 가다보면 강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만난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강가의 절벽이 나온다. 남한강은 소리 없이 흐르고 먼데 풍경에 앞으로 가야할 탄금대 숲이 보인다.

강에 뿌리를 둔 수직 바위 절벽이 하늘로 솟았다. 그 절벽에 4m 정도의 부처상을 새겼다. 부처상은 강물이 흘러오는 남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강에 배를 띄우고 봐야 부처상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고려시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하는 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입상은 남한강을 오가던 뱃사람들의 안녕과 강에 기대어 살아가던 강마을 사람들의 평안을 기원했을 것 같다.


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입상
위치: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 240




탄금대 솔숲을 거닐다


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입상에서 강을 거슬러 오르면 탄금대가 나온다. 직선거리로 1.6km 정도 된다. 탄금대는 가야 사람 우륵이 가야금을 탔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신라 진흥왕이 가야 지역을 신라로 복속시킬 때 가야 사람 우륵도 신라 사람이 됐다. 진흥왕은 가야의 귀족과 명문가 사람들을 충주로 이주시켰다. 그중에 우륵도 있었다.


탄금대 소나무숲 앞에 세워진 권태응 시인의 시비


탄금대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과 8000명의 군사들이 왜적과 싸운 곳이기도 하다. 신립장군과 조선의 군사들은 이곳에서 전멸했다. 그들의 영령을 기리기 위해 팔천고혼위령탑을 세웠다. 위령탑 옆에는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항거했던 시인 권태응의 시비가 있다. 시비에 그의 시 <감자꽃>이 새겨졌다.


탄금대 팔천고혼위령탑


탄금대 솔숲. 소나무 숲길을 따라 탄금정으로 걷는다


권태응 시비에서 탄금정으로 가는 길은 소나무숲길이다. 탄금정에서 열두대로 내려간다.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뜨거워진 활시위를 식히기 위해 강물까지 열두 번 오르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열두대에서 강물까지는 절벽의 형국이어서 강물까지 오르내렸다는 이야기에 신빙성이 떨어진다. 탄금정으로 다시 올라와 걷던 방향으로 조금 더 가면 우륵과 탄금대에 얽힌 글을 새긴 비석이 여행자를 반긴다.


탄금대. 탄금정과 소나무 숲


탄금대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탄금대공원탄금정

충청북도 충주시 탄금대안길 105



글·사진 장태동 트래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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