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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Nov 25. 2021

과거로 향하는 시간, 문경새재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 ‘열흘 붉은 꽃이 없다’라는 뜻으로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의미를 지닌 고사성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세상의 이치지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봄의 벚꽃이 그러하고 가을의 단풍이 그러하다. 단풍은 올해도 지각이다. 늦어진 만큼 머물다 가는 것이 인지상정이련만, 조퇴까지 한단다. 야속하지만 어쩌겠는가. 보고 싶은 자가 서둘러야지. 고대하던 단풍을 만나러 경상북도 문경으로 향했다.


문경새재 선비의 상


‘파리’하면 자연스레 에펠탑이 떠오르듯, 문경새재는 자타공인 문경을 대표하는 관광지다. 문경새재는 관광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2년에 한 번씩 국내의 대표 관광지 100곳을 선정하는 ‘한국관광 100선’ 2013-2014와 2015-2016, 두 차례에 걸쳐 선정되기도 했다.

새재란 ‘나는 새도 넘어가기 힘든 고개’를 뜻하는 조령(鳥嶺)의 우리말로 오래전 한양과 동래를 잇는 가장 짧은 길인 영남대로 상의 가장 높은 고개다. 한양과 동래를 잇는 고개는 새재 외에도 추풍령, 죽령이 있었으나 문경새재를 통과하는 길이 열나흘로 가장 빨랐다고 한다.

추풍령은 보름, 죽령은 열여섯으로 고작 하루, 이틀 차이였지만 문경새재를 고집하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과거시험을 치는 선비들 사이에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은 대나무처럼 죽죽 미끄러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어 문경새재를 택했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은행나무가 만든 노란 카펫


문경새재 초입에는 방문객을 환영하는 노란 카펫이 깔렸다. 바스락-바스락- 노란 비가 내려와 내딛는 발걸음에 기분 좋은 효과음을 더해준다. 깊은 가을이 문경새재를 찾아왔다.


새재로


새재로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옛길박물관과 문경생태미로공원 입구를 지나면 문경새재 도립공원의 널찍한 새재로가 이어진다. 여름 내내 싱그러운 푸르름으로 가득하던 나무들은 가을을 맞아 색색별로 자신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다.


건너편에서 본 새재로


우리에겐 한없이 아름다운 단풍나무 길이지만, 그 옛날 괴나리봇짐을 진 선비들은 해발 1,108m의 주흘산과 해발 1,026m의 조령산 사이의 고갯길이 얼마나 까마득하게 느껴졌을까? 새재를 넘어 다시 한양까지 길고 긴 여정이 이어졌을 테니까.


새재로 옆 초곡천


주흘산 자락에서 발원하여 주흘산과 조령산 사이의 새재를 따라 문경 시내로 이어지는 조곡천은 선비들의 길잡이가 되어줬을 것이다. 길을 걷다 목을 축이고 땀을 씻을 수 있는 안식처는 물론이다. 조곡천을 따라 선비의 정신이 담긴 유서 깊은 옛길을 직접 걸어보는 건 어떨까?


제1관문(주흘관)


문경새재 과거 길의 본격적인 시작은 1708년(숙종 34)에 세워진 주흘관이다. 과거로 향하는 길의 시작임을 알리듯 콘크리트 바닥은 어느새 황톳길로 변했다. 해발 244m에 해당하는 제1관문 주흘관을 시작으로 해발 380m의 제2관문 조곡관, 해발 650m의 제3관문 조령관에 이르는 편도 6.5km의 높고 긴 고개가 이어진다. 도보로 왕복 4시간에 이르는 긴 여정이지만 경사가 완만하고 수풀이 울창하여 트레킹 코스로도 제격이다.


문경새재 오픈세트장의 어느 초가


과거(科擧)를 보러 가는 길에 여유가 있다면 과거(過去)를 거닐어보자. 문경새재 오픈세트장은 KBS가 사극 드라마를 촬영하기 위해 2000년 2월 23일에 건립한 국내 최대 규모의 사극 촬영장이다. 건립 당시에는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한 촬영장이었으나 문경시의 제작 지원으로 기존 세트장을 허물고 2008년 4월 16일에 지금의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세트장을 갖추게 되었다.


문경새재 오픈세트장 광화문


약 7만㎡ 규모의 부지에는 궁궐과 양반촌, 서민촌 등 다양한 옛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건물은 드라마 대왕 세종 촬영을 위해 세워진 경복궁이다. 실제 크기의 75% 정도에 불과하지만, 서울의 경복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다. 그중 KBS 사극 드라마 홍보관으로 사용하는 강녕전에서는 문경새재 오픈세트장에서 촬영된 영화와 드라마 소개와 함께 촬영 의상과 소품, 대본 등을 전시하고 있다.


문경새재 오픈세트장 양반촌


경복궁 앞 양반촌은 양반들이 생활하던 사대부가의 가옥과 벼슬아치들이 모여 나랏일을 처리하던 관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령산 아래에 자리한 한옥의 모습이 마치 오랜 전통을 지닌 한옥마을을 방문한 듯하다.


문경새재 오픈세트장 서민촌


양반촌 옆 서민촌은 양반촌에서는 느낄 수 없는 친근감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때 묻지 않은 주흘산 아래에 갈대나 볏짚 등으로 지붕을 인 초가집의 자연 친화적인 모습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어느 초가에 내려앉은 단풍


어느 초가에는 빨간 단풍잎이 내려앉았다. 머지않아 바래고 바스러질 이 작은 이파리에 왜 이렇게 눈길이 가는 걸까? 그건 아마 머지않아 바래고 바스러질 운명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원하지 않기에 더욱 아름다운 2021년의 가을이다.
 

문경새재도립공원
주소 :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 932
전화 : 054-571-0709
운영 시간 : 탐방로 24시간 개방
홈페이지 : https://www.gbmg.go.kr/tour/contents.do?mId=0101010400


문경새재 오픈 세트장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84-2



·사진 최재원 트래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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