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스타일’이라고 하면 떠올리게 되는 그림이 있다. 따뜻한 온기가 감도는 조명 아래 심플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질감을 살린 가구와 포인트 칼라가 재미를 더하는 패브릭이 어우러지는 공간에서 금방 내린 커피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안락하고 아늑한 상태를 가리키는 ‘휘게’, 커피에 디저트를 곁들이며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피케’로 상징되는 라이프스타일 말이다.
세상 여유롭게 보이는 삶의 태도는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일까?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며칠을 지내는 동안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100년이나 된, 엘리베이터도 없는 아파트였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아파트의 모습은 아니었다. 5만 원 남짓의 숙박비에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을 만큼 신경 써 꾸민 영화 속 주인공의 방에 들어온 것 같았으니까. 헬싱키 사람들 모두가 다 그렇게 사는 건 아니겠지만 도시를 거닐고 구석구석 기웃거리며 얻게 된 답은 이곳 사람들에게 ‘아무거나’ 또는 ‘그냥’이라는 선택지는 없구나 하는 감각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서 꽤 빈번하게 한 남자를 마주하게 됐다. 알바 알토(Alvar Aalto).
알바 알토는 오늘날 핀란드 사람들의 생활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다. 그저 칭송하는 말이 아니라 핀란드 지폐와 우표에 등장할 만큼 핀란드 사람들에게 ‘자부심’으로 통하는 인물. 헬싱키 도심 곳곳에서 그가 설계한 건축물과 그로부터 시작된 디자인 브랜드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헬싱키 외곽에 그가 직접 짓고 살던 집과 사무실이 있다고 해서 하루 날을 잡았다.
알토 하우스 The Aalto House
알토 하우스는 알바 알토가 아내 아이노와 함께 설계한 집이다. 가족들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과 사무실이 결합된 형태로 1층에는 공용 공간인 거실과 주방, 그리고 작업실이 있고, 2층에는 부부와 아이들의 침실을 배치했다.
참 재미있는 집이다. 일정한 틀 안에서 공간을 구분하고 배치했다기보다는 서로 다른 모양의 공간을 하나씩 붙여 완성한 느낌. 1층 거실을 기준으로 계단 두 칸 높이의 작업실은 층고도 훨씬 높다. 그리고 작업실에서 계단 다섯 칸을 밟고 올라가면 개인 서재다. 이처럼 같은 층에서도 공간에 따라 바닥면과 천장 높이에 변화를 주어 입체감을 느끼게 한 것이 인상적이다. 공간과 공간을 구분하는 문은 최소화하고 모든 공간에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큰 창을 내 따사로운 볕과 정원의 싱그러운 공기가 물 흐르듯 집 안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간다.
부부와 아이들의 침실이 배치된 2층은 상대적으로 정적이다. 구조보다는 공간을 채우고 있는 가구와 소품에 눈이 간다. 간결하고도 유연한 곡선이 돋보이는 의자들은 그 공간에 계속 머물고 싶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고, 방마다 특색 있는 조명을 배치한 것도 공간에 재미를 더했다.
1934년에 설계를 시작해 1936년에 완공된 집이란 말에 입이 떡 벌어진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집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집에 살고 있나?’ 혹한의 추위와 어둠이 지배하는 긴 겨울, 해가지지 않는 긴 백야의 여름을 나야 하는 핀란드의 환경이 거장이라 불리는 건축가에게 생활하는 공간에 대한 애착을 끌어내게 했다는 해석이 있지만 어디 그것뿐이겠나. 알바 알토가 삶을 대하는 태도, 관점을 엿보게 한 알토 하우스는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Alvar Aalto House
주소: Riihitie 20, 00330 Helsinki, Finland
스튜디오 알토 Studio Aalto
점점 더 많은, 훨씬 더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알토 하우스 1층 작업실로는 모두 감당할 수 없게 된 알바 알토. 그는 1955년 집 근처에 사무실로 사용할 건물을 지었다. 알토 하우스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스튜디오 알토는 사무실이지만 여느 사무실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알토는 일하는 공간 역시 집만큼이나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이어야 한다고 믿고, 그 믿음을 스튜디오 알토로 실현했다.
스튜디오 알토는 원형 극장 형식의 정원을 품은 ㄴ자 모양의 2층 건물이다. 이 말은 정원을 마주보는 건물의 한쪽 외벽은 곡면으로 처리했다는 이야기다. 곡면에 정원을 파노라마 스케일로 내려다보게 하는 널찍한 창을 내 자연스럽게 시선은 정원으로 향하게 된다.
이는 정원 측면의 2층 사무실에서도 마찬가지다. 해가 뜨고 지는 흐름에서 착안해 동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천장을 경사지게 만들었는데, 그에 따라 길가에 면한 외벽의 천장은 높고 정원에 면한 외벽 천장은 낮다. 여기에 길가 쪽 외벽에는 사람 키보다 높은 천장부 가까이에 창을 내 최대치의 채광을 확보하되 외부로의 시선을 차단하고, 정원 쪽 외벽에는 사람 눈높이에 너르게 창을 내 정원의 나무들을 마주보게 했다. 외부의 자극에 방해받지 않고 내부로 집중할 수 있게 돕는 공간 구성은 편안하고 안락한 감각은 물론 업무 효율을 높이는 데에도 보탬이 되었을 거라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전체적으로 화이트 톤에 원목 가구들이 배치되어 산뜻하면서도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스튜디오 알토는 현재 알바 알토 재단에서 사용하고 있다. 가이드 투어는 실제 스튜디오 알토에서 근무 중인 직원들에게 돌아가며 진행하는데 공간을 직접 사용하는 사람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공간에 대한 이해도와 몰입도를 한층 더 높여 주는 요소가 된다. 직원들에게는 성가신 일일까? 전혀. 채광이 좋아 해가 쨍하지 않아도 환한데 볕이 바짝 뜬 날은 사무실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싶은 정도라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 공간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건축 양식이니 디자인 원칙이니 하는 이론적인 것을 알면 더 재미있게 둘러볼 수도 있겠지만 몰라도 상관없다. 알바 알토는 “건축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인간적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인간을 위한 건축이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한 사람이니까. 자연스럽지 않고, 불필요한 것들은 그의 공간에 머물지 못한다. 그러니 그저 그 공간을 누리면 그만이다.
Studio Aalto
주소: Tiilimäki 20, 00330 Helsinki, Finland
▶tip
비지트 알바 알토 Visit Alvar Aalto
알바 알토 재단에서는 가이드 투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걸어서 10분 거리의 알토 스튜디오와 알토 하우스는 한 묶음이다. 홈페이지에 알바 알토가 설계한 건축물에 대한 정보와 가이드 투어 예약 방법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홈페이지: https://www.instagram.com/visitalvaraalto/
예약: https://visit.alvaraalto.fi/fi/
글·사진 서진영 트래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