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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Dec 14. 2021

마포 마을여행,
옹기, 도화, 품다

유난히 고깃집과 술집이 많은 마포에서 의미를 생각할 틈 없이 먹고 마시기만 했던 자신을 조금 반성했다. 공원이 된 경의선을 따라 소녀들은 만주로 실려갔고 마포종점에선 대한독립만세가 외쳐졌다는 사실에 코끝이 찡했다. 한강에 서니 새우젓과 소금, 곡식을 실어 나르던 마포나루의 부흥기가 그려져 그야말로 가슴이 웅장해졌다. 3km 남짓한 길 위에서 그 시절 영광과 애환을 담은 역사〮문화 스폿을 만났다.



옹기, 도화, 품다

공덕역 1번 출구 → 경의선 숲길 → 아소당터 → 을밀대 → 정구중 가옥 → 토정 이지함 동상 → 이지함 집터 → 삼개포구 표지석 → 채그로 → 석불사 → 마포종점 → 3.1 독립운동 기념터 → 복사꽃 어린이공원 → 마포역 4번 출구


추천코스: 공덕역 1번 출구에서 마포역 4번 출구까지
길이: 3km
소요시간: 2시간



경계가 없는 열린 공원
경의선 숲길


서울에서 가장 긴 공원인 경의선 숲길의 총 길이는 6.3km. 경의선은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복선 철도로, 일제가 한반도 지배와 대륙 침략을 위해 1906년 개통했다. 위안부 소녀들이 경의선을 따라 만주로 실려 나간 사실은 잘 알려져 않았기에 기억해야 한다. 용산-가좌 구간이 지하화되면서 지상 철길을 공원으로 재단장한 것이 경의선 숲길이다.



경의선 숲길 공원은 출입구가 따로 없고 골목과 주택가에 개방되어 있어 누구나 어디서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공원에 맞붙은 카페에서 숲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 잔은 꽤 근사하다. 경의선 숲길의 네 구간 중에서 대흥동-염리 구간은 외부인보다는 주민들이 많아서 한적하고 조용한 편이다. 왕벚나무와 느티나무가 울창해서 현대인에게 부족한 피톤치드를 한없이 들이킬 수 있다.
 

경의선숲길
위치: 공덕역 1번 출구 공덕더샵 아파트 인근



스스로 돌아보며 웃음 짓는 곳
아소당터



드라마에 나올 법한 아름다운 교정으로 유명한 서울디자인고등학교. 정문으로 들어가면 오른쪽 화단에 흥선대원군이 말년을 보낸 별서인 아소당터(아소정터)의 흔적이 있다. 길지라고 소문난 이 자리에 흥선대원군이 자신의 묘지를 정하고 앞에 별당을 지어 ‘스스로 돌아보며 웃음짓는다’는 뜻으로 아소당(我笑堂)이라고 이름 지었다. 행복을 바랐던 흥선대원군은 결국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소당에 유배되어 세상을 떠났다. 공덕역 근처에 있는 ‘공덕리금표’는 아소당이 120보 거리에 있으니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는 내용의 푯말이다.
 

서울디자인고등학교
위치: 서울 마포구 백범로 139 (서울디자인고등학교 안)



어른의 맛
을밀대


자극적인 음식 말고 슴슴한 음식이 생각날 때 혹은 전날의 과음으로 편안한 해장이 필요할 때 평양냉면만한 것이 있을까. 을밀대 평양냉면은 한우 사골과 양지로 낸 육수를 베이스로 하고 동치미 국물을 섞어 다채로운 맛이 입안에 스며든다.



살얼음 설설 낀 육수를 요청할 수도 있지만, 그냥 시원한 ‘오리지널’ 스타일의 육수가 재료의 은은한 향을 좀 더 지녔다. 살짝 강한 육수가 특징이라 평냉 초보에게도 무난하게 맞는다. 보기엔 거칠지만 입속으로 넣으면 탱탱 튕기는 메밀면은 씹는 맛이 좋다. 고기가 덩어리째 들어가 있는 녹두전은 고소하고, 파채와 함께 먹는 수육은 구수하다. 결국 술을 부르고야 만다(해장을 하러 갔는데). 평양냉면은 애당초 겨울 음식으로 탄생하였으니, 차가운 겨울날 이를 딱딱 부딪히며 먹어야 제맛이다.
 

을밀대 평양냉면
주소: 서울 마포구 숭문길 24
영업시간: 매일 11:00~22:00
전화: 02 717 1922



아파트 숲속 한옥의 존재감
정구중 가옥

 
팔작 지붕의 처마가 날렵하게 솟아 경쾌하다. 아파트가 촘촘하게 들어선 비탈진 동네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아있는 정구중 가옥은 1920년대 건축됐다. 용강동의 부농인 이모씨가 외동딸을 위해 당시 장안에서 이름난 4대 목수 중의 하나인 안영달에게 부탁해 지은 집이다.



조선시대 마포나루는 질 좋은 목재가 들어오던 한강 나루터였다. 용강동 일대는 자연스럽게 한옥 문화가 발전했고 크고 작은 한옥이 밀집해 들어섰다. 지금은 아파트촌이 되어버린 이 일대에서 유일하게 남은 한옥이 바로 정구중 가옥이다. 압록강 일대의 홍송과 백송을 뗏목으로 실어와 한강에 2년 동안 넣어두었다가 1년 동안 건조한 후 못을 전혀 쓰지 않고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모씨의 집인데 왜 정구중 가옥이냐고? 1973년 이 집을 매입한 국회의원 출신 정구중 씨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정구중가옥
주소: 서울 마포구 큰우물로2길 22



조선의 휴머니스트
토정 이지함 동상


마포구 토정동의 유래는 토정 이지함이다. 길흉화복을 점치는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려진 그는 마포 강변에 흙담을 쌓고 움막집을 짓고 살아 토정(土亭)이라는 호가 붙었다. 기인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론 실학자이면서 공직자였고 나중엔 상업으로 큰 재물을 모았다.



먹을거리를 쌓아놓고 가난한 이웃에게 나눠주며 그야말로 나눔의 삶을 실천했다. 어린아이나 장애인, 노인과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우선으로 나눔을 실천했다는 면에서 합리적인 휴머니스트의 면모가 드러난다. 이지함 선생 동상 맞은 편, 백성들이 소금과 곡식을 받아가는 모습은 바로 토정의 구휼활동을 재현한 것이다.
 
위치: 서울 마포구 토정로길 31번지 사거리 앞



길한 기운
토정 이지함 집터



토정 이지함의 움막집이 있던 곳은 마포 한강삼성아파트 부근이다. 지역 주민들은 토정의 선한 활동을 기리는 뜻으로 커다란 영모비를 세웠다. 수천 대의 배가 드나들고 물산이 풍부하게 오고 가니 백성을 구휼하기 좋은 지리적 위치였던 것. 토정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어쩐지 아파트촌의 기운조차 따스하게 느껴진다.
 

한강삼성아파트
위치: 서울 마포구 토정로32길 11 (마포 한강삼성아파트 내)



마포에 고깃집과 술집이 많은 이유
삼개포구 표지석


조선시대 도읍지가 된 한양에서 유통경로인 한강의 위상은 날로 높아졌다. 지금보다 수심이 깊었던 삼개포구엔 한 해에 수만 척의 배가 떠다녔다. 마포나루의 옛말인 삼개포구는 삼남지방에서 올라오는 곡물과 서해안의 소금, 생선, 새우젓 등이 많이 거래됐던 대표적인 포구다.



마포구 염리동은 소금장수들이 모여 살던 지역이라 붙은 이름이다. 젓갈을 담을 옹기를 생산하던 옹리가 있었던 곳은 독막 또는 동막으로 불렸고 지금의 용강동 일대를 말한다. 마포나루터에는 뱃사람과 상인에게 숙박과 음식을 제공하며 물건의 매매를 중개하는 객주가 많았다. 마포에 고깃집과 술집이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마포나들목
위치: 서울 마포나들목 초입



책과 한강이 이어지는 곳
채그로


뷰 좋은 카페도 많고 기발한 인테리어로 핫플이 된 카페도 많지만 한강 전망과 책을 동시에 지닌 카페는 찾아보기 힘들다. 마포대교에서 가까운 빌딩 8층엔 독립서점이자 북카페인 ‘채그로’가 있다.



작은 도서관을 연상케 할 만큼 어마어마한 장서를 자랑한다. 통창으로 새빨갛게 타들어 가는 노을을 바라보면 말랑한 감성이 증폭되고야 만다. 탁 트인 한강뷰라는 강력한 유인책을 갖춘 북카페라니, 감탄이 나온다. 서울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을 만한 카페가 딱히 없다는 점에서 채그로는 더없이 소중하지만, 감성을 건드리는 특유의 분위기가 이곳의 매력.
 

채그로
주소: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4다길 31 아리수빌딩 8층
영업시간: 매일 10:00~22:00
전화: 02 711 2188



한강 뱃사공의 안위를 살펴주시던 부처님
석불사


한강이 한눈에 보이는 언덕에서 인자한 얼굴의 부처님은 늘 뱃사공을 지켰다. 석불사의 전신인 백운암은 숙종 때 마포나루에 창건되었다. 뱃사람들의 무사 항해를 기원하는 사찰로 사랑을 받았지만, 흥선대원군의 배불정책으로 파괴되어 풍월정이라는 정자만 남기고 사라졌다. 하지만 청룡이 승천하는 꿈을 꾼 무진거사가 사찰을 재창건하면서 마포의 터줏대감 사찰로 명맥을 잇게 됐다.



사찰로 들어가면 입술이 빨간 석불이 미소로 반긴다. 비구니 사찰인 석불사는 2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한 세대의 여성 스님이 오순도순 살아간다. 순한 강아지, ‘몽돌이’는 중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또 다른 마스코트다.
 

석불사
주소: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4다길 23-6



쓸쓸했던 전차의 종착지
마포종점


어둠이 깔리는 밤 11시. 전차는 어김없이 마포종점에 닿았다. ‘밤 깊은 마포종점 갈곳 없는 밤전차~’ 로 시작되는 노래 <마포종점>. 1967년 은방울자매가 부른 이 노래는 그야말로 대 히트였다. 대중가요는 시대의 산물이라고 하던가.



마포종점은 일제강점기부터 1968년까지 청량리-종로-마포를 오가던 전차의 마지막 기착지였다. 지금은 상상조차 어렵지만, 마포종점은 그저 한강변의 쓸쓸하고 적막했던 종착지였다. 마포어린이공원의 노래 기념비를 보면 가사에 당인리 발전소와 여의도 비행장까지 등장해 1960년대 말 서울의 풍경이 그려진다.
 

마포어린이공원
주소: 서울 마포구 마포동 마포어린이공원



마포종점에서 울리던 대한독립만세
3·1 독립운동 기념터



1919년 3월 1일 오후. 종로 탑골공원에선 사람들이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대한문 안으로 행진했다. 해 질 무렵부터는 교외로 번져나갔다. 저녁 8시 마포 종점 부근에 천여명이 다시 모여 대한독립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날 밤늦도록 서울 시내 곳곳에서 외쳐진 대한독립만세.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독립운동은 불교방송 건물 앞 화단에 작은 표석으로 남아 콧등을 시큰거리게 한다.
 

BBS불교방송국
주소: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 20



간판이 모두 복숭아 모양인 이유
복사꽃 어린이공원


마포 갈매기골목에 늘어선 간판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복숭아 형태다. 마포구 도화동은 원래 복숭아나무가 많아 복사골이라고 불렸다.



마음씨 착한 노인의 외동딸인 도화 낭자는 옥황상제의 며느리가 되었다. 노인이 딸을 그리워하자 옥황상제는 복숭아씨를 보내주었고 애지중지 잘 가꾸어 복숭아나무는 마을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아름다운 전설은 복숭아를 살포시 든 도화 낭자와 노인 동상으로 복사꽃 어린이공원에 남았다. 여기선 마포종점의 추억도 생생하게 더듬을 수 있다. 전차 모양으로 생긴 공중화장실엔 마포-청량리 구간 표시가 선명하다.
 
주소: 마포구 도화동 복사꽃어린이공원



복사꽃어린이공원

서울특별시 마포구 도화동


마포갈매기골목

서울특별시 마포구 도화동



 마포 마을여행


‘마포 마을여행’은 마포구 곳곳에 서린 추억과 이야기를 담은 도보여행입니다. 전문적인 문화관광해설사의 역사 설명과 재미있는 골목 스토리텔링을 여행에 곁들입니다. 알고 봐서 더욱 풍성했던 마포 마을여행을 <트래비>가 여러분들에게 생생히 전달합니다. 마포 마을여행은 마포구청 홈페이지를 통해 2022년 3월부터 신청할 수 있습니다. www.mapo.go.kr


 
글·사진 김진 취재협조 마포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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