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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국내여행

동검도 노을 앞에서

by 트래비 매거진

동검도 노을을 보러 가는 길에 인천 여행지 몇 곳을 들렀다. 인천 여행을 계획하다 보면 언제나 고민이 되는 곳이 차이나타운이다. 여러 번 가봐서 빼려고 하면 뭔가 좀 허전하다. 허나 어쩌랴 인천 여행지의 관록이 묻어나는 곳이니 잠시 들렀다. 강화초지대교를 지나 강화 남동쪽에서 강화해협을 지키던 초지진을 돌아봤다. 제국주의 열강이 조선을 침략하던 격동기의 역사에 마음이 아팠다. 해지기 전에 도착한 동검도에서 차 한 잔 마시며 노을을 기다렸다.



인천 차이나타운 옹기병과 홍두병, 하얀짜장


차이나타운을 다닌 지 40년 가까이 됐다. 그 사이 그 거리는 침체기도 맞았고 부흥기도 있었다. 지금은 부흥기다. 차이나타운 식당거리가 삼국지 거리, 개항장 조계지 거리, 동화마을 거리, 자유공원 등과 어울려 상생한다.


%ED%99%8D%EB%91%90%EB%B3%91.JPG?type=w1200 홍두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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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이 즐비한 차이나타운 거리를 걸었다.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옹기병과 홍두병이 눈에 띈다. 이름만 들었을 때는 새로운 게 생긴 줄 알았는데 화덕만두와 속에 소가 들어간 계란빵이었다. 옹기병 가운데 가장 인기가 좋은 고기만두를 사고 홍두병은 크림, 팥, 망고소가 들어있는 것을 골고루 샀다.


%ED%95%98%EC%96%80%EC%A7%9C%EC%9E%A5.JPG?type=w1200 하얀짜장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은 안 먹을 수 없었다. 인천항이 개항되면서 산동반도에서 건너온 중국인 부두노동자들이 먹던 짜장면을 재현했다는, 이른바 ‘하얀짜장’을 먹었다. 중국식 된장에 고기를 볶아서 소스를 만들었단다. 약간 뻑뻑해서 면과 잘 비벼지지 않기 때문에 닭고기 삶은 물을 조금 넣고 다진 마늘도 기호에 따라 넣어 먹는다.

100여 년 전 인천항 부두노동자들이 먹던 그 맛은 아니겠지만 ‘하얀짜장’ 하나가 이 거리의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만들고 있었다.


홍두병

인천광역시 중구 차이나타운로 48


차이나타운

인천광역시 중구 차이나타운로26번길 12-17



조선의 심장을 지켜라


강화초지대교를 지나 강화의 남동쪽에 자리 잡은 초지진을 들렀다. 육지의 흙빛과 다른 강화의 갯벌을 보며 지난한 역사를 생각했다.


%EC%B4%88%EC%A7%80%EC%A7%84_%EC%95%84%EB%9E%98_%EB%BB%98..jpg?type=w1200 초지진 아래 뻘


고려 항몽 39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땅 강화. 불심으로 국난을 극복하려 했던 처절한 몸부림은 팔만대장경을 새기는 손끝 마다 빛났다. 조선을 침략하는 제국주의 열강에 죽음으로 항쟁한 곳 또한 이곳 강화다.
강화해협을 지키는 최전방 진지 초지진. 팽팽한 긴장을 깨고 터지는 첫 포성. 조선의 진지를 향한 제국주의 열강 함선의 대포와 적들이 있는 바다를 향한 조선의 대포에서 뿜어냈던 포연이 검은빛 해협 진흙 뻘 위에서 자욱하게 피어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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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심장, 한양으로 향하려는 제국주의 열강의 조선 침략 야욕을 막아내던 첫 머리가 초지진이었다. 강화해협을 통해 한강을 거슬러 조선을 침략하려는 제국주의 열강의 함선과의 첫 전투는 초지진에서 벌어졌다. 1866년 병인양요, 로즈가 이끄는 프랑스군 극동함대가 천주교를 전파하려는 자국의 신부 및 천주교도들을 탄압했다는 구실로 포문을 열었다. 1871년에는 미국의 로저스사령관이 이끄는 함대와의 일전, 이른바 신미양요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그로부터 4년 뒤 일본군함 운양호와 치열한 격전을 벌인 곳도 초지진이다. 지금도 초지진 성벽 밖에는 당시의 치열한 전투를 되새기게 하는 포탄 자욱이 남아 있다.


조선을 지키려다 순국한 조선의 병사들, 그들의 숭고한 넋을 기억하려는지 초지진 밖 수백 년 된 소나무는 이 겨울에 더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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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초지진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624



동검도에서 노을을 보다


인천 강화군 길상면 동검리. 강화군 최남단 섬 아닌 섬 동검도. 동검도로 가는 길, 찻길 옆에 검고 눅진한 갯벌이 드러났다. 황량해서 순수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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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밭 일렁이는 오후의 시간이 정지 된 느낌이다. 진공이 소리를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적막을 깨는 건 시린 바람 소리였다. 해질 때를 기다릴 카페를 찾았다. 차 한 잔에 창밖의 풍경은 덤이다.


햇볕 비끼며 바람에 날이 선다. 공기의 색온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왔던 길을 되짚어 나가는 길에 공기의 색이 보랏빛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공기에 퍼지는 색과 그 색이 품고 있는 ‘색온도’가 시시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서둘렀다. 들어올 때 봐두었던 곳에 도착해서 촬영 포인트를 잡았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갯벌에 기우뚱 누운 배가 섬처럼 떠있다. 바닷물은 저 멀리 물러나있고 바다 멀리 산 뒤로 지는 해가 노란빛을 발산하며 풍경을 잠식하는 어둠에 안간힘으로 맞서 경계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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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사라진 뒤 하늘색은 세 번 변한다. 그리고 해가 내뿜는 빛은 완전히 사라지고 달빛 별빛이 살아난다. 강한 빛에 가려진 약한 빛이 빛나는 순간이다. 빛에 가려진 또 다른 빛이 드러나는 풍경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오늘 지나온 곳들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다시 카메라 셔터에 손가락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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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진 뒤 공간을 채운 빛을 배경으로 웃자란 갈대가 화석처럼 박혔다. 갯벌에 내린 뿌리로 흙을 완강하게 움켜쥔 갈대가 오늘 하루 세상을 떠돌다 멈추어 선 여행자 앞에 있는 것이다. 카메라 셔터에 올린 손가락 끝이 일몰 뒤 몰아닥치는 겨울바람에 언다. 칼바람에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는 눈에서 눈물이 난다. 아스라한 풍경의 시간이 카메라에 담기는 순간 몸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퍼지기 시작한다.


동검도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동검리



글·사진 장태동 트래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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