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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Dec 26. 2021

동검도 노을 앞에서

동검도 노을을 보러 가는 길에 인천 여행지 몇 곳을 들렀다. 인천 여행을 계획하다 보면 언제나 고민이 되는 곳이 차이나타운이다. 여러 번 가봐서 빼려고 하면 뭔가 좀 허전하다. 허나 어쩌랴 인천 여행지의 관록이 묻어나는 곳이니 잠시 들렀다. 강화초지대교를 지나 강화 남동쪽에서 강화해협을 지키던 초지진을 돌아봤다. 제국주의 열강이 조선을 침략하던 격동기의 역사에 마음이 아팠다. 해지기 전에 도착한 동검도에서 차 한 잔 마시며 노을을 기다렸다.



인천 차이나타운 옹기병과 홍두병, 하얀짜장


차이나타운을 다닌 지 40년 가까이 됐다. 그 사이 그 거리는 침체기도 맞았고 부흥기도 있었다. 지금은 부흥기다. 차이나타운 식당거리가 삼국지 거리, 개항장 조계지 거리, 동화마을 거리, 자유공원 등과 어울려 상생한다.


홍두병
홍두병과 옹기병


식당이 즐비한 차이나타운 거리를 걸었다.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옹기병과 홍두병이 눈에 띈다. 이름만 들었을 때는 새로운 게 생긴 줄 알았는데 화덕만두와 속에 소가 들어간 계란빵이었다. 옹기병 가운데 가장 인기가 좋은 고기만두를 사고 홍두병은 크림, 팥, 망고소가 들어있는 것을 골고루 샀다.


하얀짜장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은 안 먹을 수 없었다. 인천항이 개항되면서 산동반도에서 건너온 중국인 부두노동자들이 먹던 짜장면을 재현했다는, 이른바 ‘하얀짜장’을 먹었다. 중국식 된장에 고기를 볶아서 소스를 만들었단다. 약간 뻑뻑해서 면과 잘 비벼지지 않기 때문에 닭고기 삶은 물을 조금 넣고 다진 마늘도 기호에 따라 넣어 먹는다.

100여 년 전 인천항 부두노동자들이 먹던 그 맛은 아니겠지만 ‘하얀짜장’ 하나가 이 거리의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만들고 있었다.


홍두병

인천광역시 중구 차이나타운로 48


차이나타운

인천광역시 중구 차이나타운로26번길 12-17



조선의 심장을 지켜라


강화초지대교를 지나 강화의 남동쪽에 자리 잡은 초지진을 들렀다. 육지의 흙빛과 다른 강화의 갯벌을 보며 지난한 역사를 생각했다.


초지진 아래 뻘


고려 항몽 39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땅 강화. 불심으로 국난을 극복하려 했던 처절한 몸부림은 팔만대장경을 새기는 손끝 마다 빛났다. 조선을 침략하는 제국주의 열강에 죽음으로 항쟁한 곳 또한 이곳 강화다.
강화해협을 지키는 최전방 진지 초지진. 팽팽한 긴장을 깨고 터지는 첫 포성. 조선의 진지를 향한 제국주의 열강 함선의 대포와 적들이 있는 바다를 향한 조선의 대포에서 뿜어냈던 포연이 검은빛 해협 진흙 뻘 위에서 자욱하게 피어났겠지.


초지진 진지 밖. 흰색으로 둥글게 칠한 부분은 서양의 함선에서 쏜 대포에 맞은 흔적이다.


조선의 심장, 한양으로 향하려는 제국주의 열강의 조선 침략 야욕을 막아내던 첫 머리가 초지진이었다. 강화해협을 통해 한강을 거슬러 조선을 침략하려는 제국주의 열강의 함선과의 첫 전투는 초지진에서 벌어졌다. 1866년 병인양요, 로즈가 이끄는 프랑스군 극동함대가 천주교를 전파하려는 자국의 신부 및 천주교도들을 탄압했다는 구실로 포문을 열었다. 1871년에는 미국의 로저스사령관이 이끄는 함대와의 일전, 이른바 신미양요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그로부터 4년 뒤 일본군함 운양호와 치열한 격전을 벌인 곳도 초지진이다. 지금도 초지진 성벽 밖에는 당시의 치열한 전투를 되새기게 하는 포탄 자욱이 남아 있다.


조선을 지키려다 순국한 조선의 병사들, 그들의 숭고한 넋을 기억하려는지 초지진 밖 수백 년 된 소나무는 이 겨울에 더 푸르다.

뻘에서 바라본 초지진의 모습.


강화초지진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624



동검도에서 노을을 보다


인천 강화군 길상면 동검리. 강화군 최남단 섬 아닌 섬 동검도. 동검도로 가는 길, 찻길 옆에 검고 눅진한 갯벌이 드러났다. 황량해서 순수한 풍경이다.


동검도 갈대와 바다


갈대밭 일렁이는 오후의 시간이 정지 된 느낌이다. 진공이 소리를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적막을 깨는 건 시린 바람 소리였다. 해질 때를 기다릴 카페를 찾았다. 차 한 잔에 창밖의 풍경은 덤이다.


햇볕 비끼며 바람에 날이 선다. 공기의 색온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왔던 길을 되짚어 나가는 길에 공기의 색이 보랏빛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공기에 퍼지는 색과 그 색이 품고 있는 ‘색온도’가 시시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서둘렀다. 들어올 때 봐두었던 곳에 도착해서 촬영 포인트를 잡았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갯벌에 기우뚱 누운 배가 섬처럼 떠있다. 바닷물은 저 멀리 물러나있고 바다 멀리 산 뒤로 지는 해가 노란빛을 발산하며 풍경을 잠식하는 어둠에 안간힘으로 맞서 경계를 밝힌다.


동검도 일몰


해가 사라진 뒤 하늘색은 세 번 변한다. 그리고 해가 내뿜는 빛은 완전히 사라지고 달빛 별빛이 살아난다. 강한 빛에 가려진 약한 빛이 빛나는 순간이다. 빛에 가려진 또 다른 빛이 드러나는 풍경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오늘 지나온 곳들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다시 카메라 셔터에 손가락을 올린다.


갈대밭 갯벌로 어둠이 내리고 먼 하늘에서 노을이 마지막까지 빛난다
해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흔들리는 갈대


해 진 뒤 공간을 채운 빛을 배경으로 웃자란 갈대가 화석처럼 박혔다. 갯벌에 내린 뿌리로 흙을 완강하게 움켜쥔 갈대가 오늘 하루 세상을 떠돌다 멈추어 선 여행자 앞에 있는 것이다. 카메라 셔터에 올린 손가락 끝이 일몰 뒤 몰아닥치는 겨울바람에 언다. 칼바람에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는 눈에서 눈물이 난다. 아스라한 풍경의 시간이 카메라에 담기는 순간 몸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퍼지기 시작한다.


동검도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동검리



글·사진 장태동 트래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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