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섬 바위 열전
우리나라 섬에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많다. 모두가 비, 바람, 파도 그리고 세월의 콜라보로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그런 바위에는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거란 든든함과 특별한 믿음도 있다. 그래서 골라 봤다. 내 여행에 들어와 상징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 10개의 섬 바위들이다.
하늘로 돌아가지 못한 공깃돌
관매도 꽁돌
꽁돌은 진도군 관매도를 폼나게 하는 첫 번째 자랑거리다. 이 바위는 섬의 남쪽 해안가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성인 남자 예닐곱 명이 양팔을 뻗어야 할 만큼 큼직하고 모양도 다듬어 놓은 것처럼 둥글둥글하다. 꽁돌은 본디 옥황상제가 애지중지하던 보물이다. 공깃돌로 착각한 왕자가 가지고 놀다 지상에 떨어뜨린 것이란다. 꽁돌 바로 아래에는 돌묘 두 개가 있다. 옥황상제의 명을 받고도 돌묘 회수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하늘장사와 사자의 것이다.
차라리 맘모스가 어울려
굴업도 코끼리바위
‘한국의 갈라파고스’라 불리며 순도 높은 자연환경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섬, 굴업도. 배에서 내려 우측을 바라보면 연평산과 덕물산이란 모래 산봉우리 두 개가 솟아 있다. 코끼리바위는 연평산 아래 해식애가 시작되는 해안에 서 있다. 높이 5m의 거대한 몸집을 가진 이 바위는 코와 하나의 다리로 몸체를 지탱한다. 어찌나 우람한지 ‘맘모스바위’가 아닌 것이 이상할 정도다. 단, 코끼리바위는 썰물 때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니 물때를 유념해야 한다.
도대체 몇 살이야?
대청도 나이테바위
10억 년간 켜켜이 새겨진 연흔(물결무늬)으로 유명한 대청도의 농여해변. 가뜩이나 신비한 이곳에 나이테바위가 있다. 마치 커다란 고목을 연상케 하는 이 바위는 퇴적된 지층이 습곡작용으로 휘어진 후 다시 풍화, 침식작용을 받아 지표에 일부분만 남은 것이다. 나이테바위는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특히 썰물 때면 광활한 풀등과 어우러져 보기 드문 장관을 연출한다. 그런 이유로 농여해변과 이웃 미아동해변은 2019년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다.
최북단 섬의 늠름한 기상
백령도 두무진
최북단 섬 백령도 서쪽 끝에 두무진이 있다. 두무진은 바다 위로 솟아난 기암들이 마치 회의하는 장군들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장군바위, 선대암, 신선대, 형제바위, 코끼리바위 등 형태도 다양하다. 두무진은 국가 명승 8호이며 10억 년 전 신원생대에 형성된 변성퇴적암층을 기반으로 한다. 가거도의 섬등반도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해가 늦게 지는 지역으로 꼽히며 해상 유람선을 타면 바다에서도 그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최대 규모, 최고 비경
영산도 석주대문
영산도는 흑산도 동쪽 4km 거리에 있는 섬이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에 속해 있으며 환경부 생태 우수마을로도 선정된 신비하고 조용한 힐링의 섬이다. 석주대문은 영산도 남서쪽 해안에 있는 침식지형이다. 일명 코끼리바위로도 불리는 이것의 아치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로 30톤급 배가 드나들 수 있는 정도다. 석주대문을 보려면 체험 프로그램 중 하나인 해상 투어를 통해야 한다. 배를 타고 나가면 비성동굴, 파수문, 비류폭포, 기봉조휘, 고래바위, 큰 바위 얼굴, 낙타상 등 자연이 만들어 낸 최고의 비경들을 두루 감상할 수 있다.
남편 기다리다 망부석 된
비양도 애기 업은 돌
비양도는 비교적 최근인 고려시대에 화산활동이 일어났던 섬이다. 둘레는 약 3km, 섬을 걷다 보면 그 흔적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호니토(Hornito)는 용암 내의 가스 분출로 생긴 소규모 화산체로 내부가 빈 굴뚝 모양을 하고 있다. 높이 4.5m, 직경 1.5m의 망부석 ‘애기 업은 돌(천연기념물 439호)’은 비양도에 남아 있는 40여 개의 호니토 중 유일하게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애기 밴 돌’이라고도 불리며, 아기를 못 낳는 사람이 치성을 드리면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아이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야도 호랑이 새끼 낳는 바위
소야도는 덕적도 동남쪽으로 500m 거리에 있는 섬이다. 큰말은 소야도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마을의 좌측 끝으로는 갓섬, 간뎃섬, 물푸레섬이 차례대로 자리하고 있다. 썰물이 되면 섬들은 바닷길을 만들어 낸다. 갓섬 바닷가에는 호랑이 두 마리가 교미하는 문양을 가진 바위가 있다. 주민들은 ‘호랑이 새끼 낳는 바위’라 부른다. 자세히 보면 바위 아래쪽에 새끼 모습의 문양이 있다. 실제로 이 바위에서 치성을 드리고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휘영청 달밤의 길잡이
소청도 분바위
소청도 동남쪽 해안은 백령대청 지질공원에 속해 있다. 스트로마톨라이트와 분바위 등 해안지형의 스페셜리스트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바위는 백색의 결정질 석회암 덩어리다. 오래전 ‘월띠’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고깃배들이 달빛에 반사된 바위를 보고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분바위 해안을 걷다 보면 어른 손바닥 반만 한 토종 홍합이 발에 챈다. 사골 국물처럼 뽀얗게 우러나고 쫀득한 식감이 일품인 홍합은 소청도에서 꼭 먹어 봐야 할 별미 중 별미다.
시 아치의 독보적 존재
승봉도 남대문바위
승봉도 북쪽 해안은 마치 기암괴석의 전시장과 같다. 남대문바위, 부채바위, 촛대바위 등의 이름을 가진 바위들은 자연의 솜씨라 여겨지지 않을 만큼 정교하며 규모도 대단하다. 특히 남대문바위는 우리나라 시 아치(Sea arch) 중에 독보적 작품이다. 아치의 골격이 날렵하면서도 우아하다. 바위는 물의 들고 남, 그리고 날씨에 따라서도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침식지형의 거친 표면과 바위에 매달려 생명을 유지해 온 소나무들도 바위를 돋보이게 한다.
등대를 사모한 참새
맹골 죽도 참새바위
진도군의 최남단 맹골군도에는 세 개의 유인도가 있다. 죽도는 그 중 끝 섬으로 선착장 부근 마을 하나를 제외하고는 면적 대부분이 순수한 자연 덩어리다. 참새바위는 죽도 북동해안 등대 절벽 아래에 형성된 시 스택이다. 시 스택(Sea stack)은 침식으로 해안에서 떨어져 나온 바위를 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바위를 ‘등대를 사모한 참새’라 부르기도 한다. 낚싯배로 해안을 돌거나 여객선을 타고 섬에서 나올 때 관찰할 수 있다.
여기도 놓치면 아깝죠
그 밖의 섬 바위들 8
대둔도 터널바위
터널바위의 구멍으로는 낙조가 직접 조망되어 사진작가들의 출사지로 알려져 있다. 해 질 무렵 고깃배 한 척이라도 지나가 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포토 스폿이다.
대이작도 오형제바위
뱃일을 나간 부모를 기다리다 형제 모두 망부석이 되었다는 오형제바위다. 바위의 거친 모습이 파란 바다와 묘하게 어울린다.
백아도 선단여
여객선이 백아도를 지나 굴업도로 향할 무렵 해상에서 만나게 되는 3개의 돌기둥이다. 남매간의 애틋한 사랑에 마귀할멈이 등장해, 막장을 만들어 버리는 기발한 전설이 담겨 있다.
울릉도 삼선암
천부리 해안가에 솟아 있는 울릉도 3대 비경 중 하나다. 강한 파도에 의해 침식되어 본섬과 분리된 시 스택으로 다이빙과 카약 등의 해양 레포츠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하조도 손가락바위
돈대산 능선에 솟아 있는 바위다. 정면에서는 손가락 하나를 치켜든 모습이지만, 다른 방향에서는 세 개로 보이기도 한다. 때문에 삼형제바위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청산도 범바위
바위 앞에서는 강한 자기장이 발생해 나침판이 무력해지거나 휴대전화 배터리가 줄어드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청산도 범바위는 우리나라에서 자연 상태의 음이온이 가장 많이 방출되는 바위로 알려져 있다.
사도 거북선바위
사도와 연결된 중도에서 양면해변을 거쳐 증도로 건너가면 거북이 모양을 닮은 바위를 만나게 된다.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 때 모티브가 되었다고 전해 오지만, 믿거나 말거나다.
보길도 혹성탈출바위
보옥리 공룡알해변에서 어부사시사명상길로 들어서는 길목에 있는 바위다. 마치 원숭이 해골을 닮은 듯했는데, 찾아보니 정해진 이름이 없어 내 멋대로 ‘혹성탈출바위’라 이름 붙였다.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곽서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