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체험한 우수여행상품] 여행스케치
바닷가 도시 동해를 올랐다.
수평의 바다에서도 수직의 오른다는 말은 성립했다.
고되고 고단했지만 생기가 넘쳤던 옛 사람들의 삶에 닿았고, 신선이 노닐던 절경에 빠졌다.
논골담길과 무릉계곡 등반기다.
개도 돈을 물고 다녔다더니…
개도 지폐를 물고 다녔던 마을이래서 뭣도 모른 채 기대했다. 그 정도로 부촌이었으면 마을도 제법 근사하겠구나, 그런 지레짐작. 빗나갔다. 머릿속에 단아하고 기품 있는 한옥마을을 지어 올렸지만 웬걸, 언덕바지 달동네가 나타났다. 가파른 비탈 골목길마다 낮고 허름한 집들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동해시 논골 마을과의 첫 대면은 그랬다.
논골1길 입구에 선다. 작고 좁다란 시멘트 길은 꽤나 가파르다. 한 걸음 한 걸음 마지못해 내민다. 어느새 숨이 차고 땀도 송골송골. 과연 개가 돈을 물고 다녔을 정도로 풍족했던 시절이 있기는 했을까, 의구심이 땀으로 흐른다. 그런 전성기가 있었다한들 뭣하랴, 지금 눈앞의 이 비탈길은 어쩌지 못하는데. 얼마 오르지 않아 이곳도 ‘마누라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인 못 산다’는 말이 통용되는 낙후된 달동네였음을 알아챈다. ‘장화 없인 살아도, 마누라 없인 못 산다’고 거꾸로 적은 장화 모양 나무판이 그 실마리다. 누군가, 아마 수많은 ‘마누라’ 중 한명이겠지만, 장화보다 낮게 비교당하는 게 싫어서, 또는 그랬던 시절에 넌더리가 나서, 뒤바꿔 표현한 게 분명하다. 허구한 날 물에 젖은 어구나 어망을 날라 손질해야 하는 삶, 하루라도 생선을 가져다 다듬지 않으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삶, 장화를 신지 않고서는 도저히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질퍽하고 미끄러운 마을 흙길…. 그 비탈 흙길을 적신 것은 어구, 어망, 생선 바구니에서 새어나온 물이 아니라 논골 삶의 땀과 눈물이었는지 모른다. 이 시멘트 길은 얼마나 가뿐하고 고마운가!
논골 마을은 묵호항과 흥망을 함께 했다. 1941년 국제무역항으로 묵호항이 개항했고 1976년에는 대규모로 확장됐다. 수산물이며 석탄이며 무연탄 같은 물자도 덩달아 늘었고, 억척스런 삶들도 모여들었다. 논골 마을은 그렇게 태동했다. 30~40년 전에는 오징어와 명태가 많이 잡혀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돌았단다. 그 정도로 흥했다. 많았을 때는 2만 명이 복작대며 살았단다. 오래가지 않았다. 바다에서 오징어와 명태가 사라지면서 사람들도 떠났다. 개가 돈을 물 일도 없어졌다.비록 고되고 드센 터전이었지만 삶에 대한 치열함으로 생기 넘쳤던 논골 마을은 그렇게 기억 속으로 퇴장했다.
이야기는 남았다. 쇠락한 논골 마을을 되살리기 위한 ‘논골담길’ 프로젝트가 2010년 시작됐다. 논골 사람들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모으고 기억에서 꺼냈다. 마을 골목길과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고 조형물로도 표현했다. 이곳 사람들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담는 방식으로 다른 벽화마을들과 차별화를 꾀했다. 어르신들의 옛 기억을 예술인들이 스케치했고 지역민들이 채색했다. 그래서 논골담길의 ‘담’은 담장의 담이기도 하고, 이야기의 담(談)이기도 하다.
논골 삶을 담벼락에 그리다
이제는 물자 대신 담이 사람들을 부른다. 담길은 논골 마을 꼭대기와 아래를 흐른다. 꼭대기에는 광장이 펼쳐지고 그 중심에는 묵호등대가 있다. 해발고도 64m. 높지는 않지만 골목길이 꽤나 가파른데다가 시선을 붙잡는 벽화와 조형물도 많은 통에 슬슬 오르다보면 30분도 모자란다. 지루할 틈은 없다. 담벼락 벽화들이 미끼처럼 지친 발길을 이끌어 주니 말이다. 담길은 크게 네 갈래다. 논골1길은 바다를 터전으로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던 옛 삶을 이야기한다. 이제는 추억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옛날 풍경과 이야기는 논골2길에서 만날 수 있다. 논골3길에서 어머니는 여전히 억척스럽고 아버지는 변함없이 엄하다. 등대오름길에는 묵호항과 동해의 여러 모습이 넘실댄다.
마누라보다 불필요한(당연히) 존재인 나무판 장화를 뒤로 하고 계속 논골1길을 오른다. 고깃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어부가 반기고 물질에 나서는 해녀가 인사한다. 바다 속에서는 고래와 거북이가 헤엄치고 오징어와 명태도 경주한다. 낙지 파는 아낙네가 손님을 꾀는 동안 등대는 물놀이에 여념이 없는 동네 꼬마들을 지켜본다. 추억 속 ‘나포리 다방’은 담벼락에서 뛰쳐나와 실제 다방으로 마을 한 구석을 차지한다. 그에 뒤질 세라 빨간 등대 모형 아래 카페와 옛 정취 물씬한 구멍가게도 들어오라 손짓한다. 논골 게스트하우스도 있는 걸 보면 여기서 하룻밤 머물고 가는 이들도 꽤 있나 보다. 하긴, 이런 마을이 어디 흔한가.
어느 길을 택하든, 종착지는 묵호등대다. 굳이 등대 2층 전망대까지 오르지 않아도 될 정도로 광장의 전망은 높고 넓다. 검푸른 동해 바다가 한 눈에 쏙 들어온다. 언덕 아래로 알록달록 색색의 지붕들이 바다와 색감을 맞춘다. 1968년작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도 이 매력에 이곳에서 찍었나 보군, 2003년 5월에 세웠다는 ‘영화의 고향’ 기념비를 보며 생각한다. 광장 구멍가게 들마루에서 어르신 한 분이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차량을 보며 주차장이 턱 없이 좁다며 혀를 찬다. 아련한 기억 속에서처럼 북적대서 그런지, 싫지는 않은 표정이다.
무릉도원이 어디 멀리 있겠는가!
동해에는 논골담길 말고도 오를 곳이 또 있다. 무릉도원이라고도 불리는 무릉계곡 명승지다. 1977년 국민관광지 1호로 지정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게다가 내륙의 금강산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신선이 노닐었던 곳이라지 않나, 아예 두타산을 오르기로 작정했다.
두타산은 무릉계곡 명승지를 품고 있는 산으로 동해와 삼척에 걸쳐 있다. ‘두타’라는 말은 불교용어로 ‘세상의 모든 번뇌와 망상, 의식주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수행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산 이름도 산의 형상이 마치 부처가 누워 있는 모습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하니, 예부터 부처의 영적인 기운이 서린 산으로 숭상 받은 게 분명하다. 해발 1,353m로 백두대간을 받치니 오르기 만만한 산도 아니다. 그나마 삼척 쪽에서 올라 동해 무릉계곡 쪽으로 내리는 코스가 수월하다 해서 따랐는데, 7시간의 산행이 주는 통증은 묵직했다. 두타의 한자를 머리 두(頭) 칠 타(打)로 바꾸고 “골 때리는 산”이라고 했던 등반 일행의 뜻풀이가 와 닿았다.
묵직한 통증을 말끔히 씻어낸 것은 무릉계곡의 기암괴석, 폭포, 계곡이었다. 그 절경에 취하니, 아찔한 아름다움에 홀리니, 몸이 가벼워졌다. 계곡 물을 따라 아래로 계속 내려가니 넓디넓은 바위가 펼쳐졌다. 일부러 바위를 다듬어 만든 듯 넓고 평평했다. 무려 1500평(4,960㎡) 규모다. 무릉반석! 예부터 이름을 남기고픈 풍류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는지 한자로 파인 이름과 글귀가 반석 위에 가득했다. 세월에 닳고 물살에 쓸려서 그랬을까? 그 글자들이 이상하게도 거북하지 않고 마음에 감겼다. 때마침 인근 삼화사 스님이 북 소리를 계곡 물에 섞어 흘려보냈다. 무릉도원이 어디 멀리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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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무릉계곡과 논골담길 걷기]
글, 사진 트래비 김선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