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
히말라야라는 극한의 환경을 품고도 발달한 문명을 이뤘던 나라가 네팔이다.
그만큼 산을 잘 이해하고 있다.
2,000년 이상 거친 히말라야와 공존해 온 그들의 비결을 산행 중 안내판에서 깨달았다.
Nature Doesn’t Need People, People Need Nature.
지상 가장 높은 곳에도 남겨진 상흔
아직 어둠이 무거운 이른 새벽에 카트만두 공항으로 갔다. 경비행기의 목적지는 히말라야 상공. 반환점은 에베레스트 상공 부근이라고 했다. 사실 네팔로 가는 비행기에서 이미 히말라야를 봤었다. 구름인 듯 위장을 하고 있었지만 ‘분명 히말라야’라고 생각했다. 그 목격에 확신이 필요하긴 했다.
버스터미널 같았던 대합실에서 기다린 시간에 비하면 이륙은 금방이었다. 구름의 경계도 금방 넘어섰다. 곧이어 나타난 히말라야 연봉들. 이륙 전에 나눠준 그림표와 대조해가며 이름을 불러 보았다.
신성한 산으로 여기는 마나슬루해발 8,163m, 아직 미정복 상태로 남아 있다는 마차푸차레해발 6,993m , 인도와의 국경에 위치하는 칸첸중가해발 8,598m 등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해발 8,848m가 나타났다. 2015년 지진으로 무너졌다는 이야기로 논란 중인 힐러리 스텝*을 찾아보려 했지만 눈이 두터웠다.
사실 이름이 뭐가 중요할까. 당시엔 열심히 외웠지만 지금은 결국 왕 중의 왕 에베레스트만 기억되니 말이다. 저 산에서 목숨을 잃은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힐러리경*처럼 오직 소수만이 기억되는 것처럼 말이다.
가는 길은 비행기의 왼편 좌석에 앉은 승객들을 위한 시간이고, 돌아오는 길은 오른편 좌석의 승객들을 위한 시간이다. 내 차례가 아닐 때는 우르르 남의 창에 가서 머리를 기웃거려 보지만 어쨌든 공평하게 차례가 돌아오니 욕심은 금물. 대신 한 명씩 조종석으로 나가서 정면의 넓은 창을 통해 에베레스트를 보고, 기장들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으니 기분도 최고조에 오른다.
히말라야 산맥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동안 내내 흥분으로 가득했던 기내는 산들이 멀어지자 거짓말처럼 차분해졌고, 이내 나른해졌다. 새벽 기상의 여파다. 꿈속에서 다시 하얀 설산들과 상봉하기를 꿈꿨다.
*힐러리 스텝 |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불과 200~300m 거리에 있는 높이 12m 정도의 바위. 영국원정대의 등정시 세르파로 동행했던 네팔인 텐징 노르가이가 이곳에서 30분을 기다려 힐러리경에게 최초 등정을 양보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2015년 지진으로 무너져 내렸다는 주장이 사진과 함께 나왔지만 반론도 나오고 있다.
*에드먼드 힐러리경 | 1919~2008년. 1953년에 영국팀 소속으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최초로 성공한 뉴질랜드 출신 산악인.
에베레스트 익스피리언스(Everest Experience)
새벽 6시에 카트만두 공항에서 부다에어를 탑승하면 50분 정도의 비행으로 히말라야 연봉을 볼 수 있다. 1인당 요금은 190USD 정도로 비싼 편이지만 후회 없는 선택이다. www.buddhaair.com
카트만두는 뒷산도 2,100m
하늘에서 보면 알 수 있다. 카트만두가 수도인 이유 말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인 네팔에서 카트만두는 드물게 평평한 분지를 이루고 있다. 카트만두의 실제 고도가 해발 1,400m에 이르는데도 낮게 느껴지는 걸 보면 높이도 길이도 모두 상대적인 개념이다. 그 상대성에 깜박 속아 카트만두 서쪽에 백드롭처럼 자리한 나가르주나 힐(Nagarjuna Hill)로 향했다.
산 전체는 시바푸리 나가르준 국립공원(Shivapuri Nagarjun National Park)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반드시 가이드를 동행해야만 입장할 수 있다. 체크포인트에는 언제 설치한 것인지 모르지만 42년째 자연보호 구역이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동식물 보호와 군부대 관리를 위한 것도 있지만 종종 등산객들의 실종사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종 목적지는 2,100m 정상의 야마초 사원(Jamacho Monastery)이었다. 출발점의 고도가 높으니 안심하고 트레킹 지원을 하긴 했는데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은 만만치가 않았다. 가이드와 포터까지 6명이었던 그룹은 출발 10분 만에 4명으로 줄어들었다. 2명이 중도하차를 선언한 것이다. 정작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모기떼였다. 고기 맛 본 지 오랜만이라는 듯 사납게 달려드는 모기를 피하는 방법은 고도가 더 높은 곳으로 대피하는 것뿐이었다.
야마초 사원은 인기 성지순례 코스였다. 이미 도착한 그룹의 아이들이 도시락을 까 먹고 스님과 함께 스투파를 돌고 있었다. 하얀색 스투파 앞에 두 줄로 서 있는 나가르주나 불상들은 대조적으로 새까만 색이었다. 그 위로는 천막을 치듯 풍성하게 드리워진 타르초(경전을 적어 넣은 오색 깃발)가 안개와 연기에 휩싸여 더 신비롭게 느꼈다. 그 안개 덕분에 전망대에 올라가서도 안나푸르나-히말라야 산맥이나 랑탕의 산세를 볼 수는 없었지만 덕분에 이 산, 이 사원의 기억이 지금껏 더 또렷하다.
시바푸리 나가르준 국립공원(Shivapuri Nagarjun National Park)
2016년부터 가이드를 동행하지 않은 산행이 금지되어 있다. 입장료가 있는데 외국인의 경우 산행이 3시간 30분 이내면 800루피, 이상이면 1,500루피를 받는다. 1~2명이 대표로 방문록을 쓰고 신분증을 맡겼다가 하산 길에 되찾아 가면 된다.
글 천소현 기자 사진 천소현 기자, 페어필드 바이 메리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