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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Mar 23. 2018

서른 살, 300일간 요가 여행

요가하는 여행가 최예슬 씨

다신 없을 수많은 ‘지금’의 연속이라는 것,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 오롯이 집중해야 한다는 것. 
여행에서 돌아온 그녀는 생각보다 요가와 여행의 교집합이 넓다고 말했다. 
그중 단연 큰 부분을 차지하는 원소는 행복이었다.
(좌)마음을 울리는 싱잉볼. (가운데)여행 내내 벗이 되어 준 책. (우)웃음도 눈물도 늘 곁에서 받아 주는 아주 소중한 친구


인도 마날리에서 레로 향하는 길. 지프를 타고 달리다 급기야 뛰쳐나가 순간을 누렸다


한 번 가 볼까, 높이 말고 멀리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at Pray Love>에서 주인공 리즈(줄리아 로버츠)는 어느 깜깜한 밤 기도를 한다. “I really don’t know what to do(뭘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요)”라고 흐느끼며 제발 답을 달라고 신에게 호소하는 장면. 그녀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 턱. 마음 깊은 속 어딘가 묶여 있던 알 수 없는 끈이 풀려 버린 것만 같았다.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약혼자도, 하던 일도 제쳐 둔 채 떠난 리즈처럼, 그렇게 예슬씨도 여행을 떠났다.


그녀는 꽤 높은 곳을 올려다봤었다. 전공한 교육학 분야에서 높은 지위까지 올라가 보고 싶었고, 작가를 꿈꾸던 동안에는 등단도 해 보고 싶었다. 좋은 차에 넓은 집, 화려한 옷과 가방.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이 곧 나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돈이 생기면 가장 먼저 사고 싶은 게 명품 가방이었어요.” 지금의 수수한 모습에서는 상상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탐욕쟁이었단다. 그러다 언제부터였을까. ‘뭘 위해서?’라는 물음표가 일상을 강하게 짓이겨 왔다. “저 높은 곳에 서면 과연 내가 빛날까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그럴 것 같지가 않더라고요. 동경해 오던 모든 것들이 허상처럼 다가왔어요.” 무엇보다, 행복하지 않았다. 

수련 중에 들어온 닭. 예상치 못한 순간의 연속이 꼭 삶을 닮았던, 코스타리카에서의 요가

예슬씨는 그동안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잣대를 잠시 놓아 보기로 했다. 위쪽 말고 옆쪽으로. “높이 대신 멀리 한 번 가 보기로 했어요.” 기간은 10×30=300일. 2016년은 예슬씨가 요가를 시작한 지 10년이 되는 해이자 만 30세가 되는 해였으니까. 여행 주제는 요가, 그녀의 순수한 취미이자 특기였다. 지위나 돈처럼, 때로는 글처럼, 남보다 우월해야 한다는 부담도 의무도 없는 것이었다.

해가 온종일 내리쬐던 오후, 거꾸로 바다를 보면서 만세!




우물 벽을 깨부수다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멀리 날아간 곳은 코스타리카(Costa Rica)였다.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사실 코스타리카는 전 세계 요가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이에요. 주로 미주나 유럽에서 활동하는 요가 강사들이 힐링 여행 삼아 많이 오곤 하죠.” 코스타리카 도심도 아닌 시골 마을 산타 테레사(Santa Teresa), 한국인은 찾아 볼 수조차 없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맨 처음 숙소에 도착했을 때, 주인장이 휘둥그레한 얼굴로 쳐다보더라고요. 제가 몹시 궁금했다나. 한국인이 여기 이 먼 곳에, 그것도 1달씩이나 예약을 한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하고요.” 그렇지만 수련을 할 수 있었고, 바다가 있었다. 알지도 못하는 지구 반대편 동네에 덜컥, 그것도 1달을 무작정 떠나온 까닭이다. 

바람 따라 멀리까지 가길 바라며 인도 갠지스강에 띄운 꽃, 소원

누구에게나 첫 경험은 강렬한 법이니까. 300일 여행의 첫 목적지였던 코스타리카를 예슬씨는 절대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사고의 범위를 벗어난 기분이었어요. 거대하다 못해 두렵기까지 할 정도로 울창한 자연을 만났거든요.” 그녀는 해변에서 요가와 명상으로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다. 특히 수련을 끝낸 후 몸에 힘을 빼고 휴식을 취하는 ‘사바사나(Savasana)’를 할 때가 가장 좋았다. “몸에 모든 힘을 빼고 누웠을 때, 요가 선생님이 지긋이 만트라(Mantra, 기도문)를 읊조렸어요. 정확한 의미를 몰라도 그 자체로 마음에 스며들었어요.” 힘을 뺄 때마다 예슬씨의 낡은 틀이 조금씩 떨어져 나갔다.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였더라고요. 코스타리카에서의 수련은 그 우물 벽을 깨부술 만큼 아주 인상적이었죠.” 거기가 그렇게 좋았냐며 재차 묻는 내게 그녀는 대뜸 그녀가 머문 게스트하우스의 와이파이 비밀번호로 답했다. 예슬씨가 누른 비밀번호는 ‘beachlifeisgood’이었다.

아쉬람에 해가 드는 낮이면 온종일 매트, 그리고 나와 함께 있었다


네 마음을 울리는 소리를 찾아


인터뷰 장소는 예슬씨가 일하고 있는 경리단길의 한 요가원이었다. 테이블도 의자도 없는, 뻥 뚫린 빈 공간에 우리는 마치 명상을 하듯 마주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깔고 앉은 요가 매트 옆에 생소한 물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국그릇마냥 오목하게 파인 금색의 그릇과 그 옆에 롤러처럼 생긴 막대기 하나. “이건 어디에 쓰는 거예요?” 호기심 어린 내 눈빛에 예슬씨는 막대기로 그릇의 가장자리를 따라 천천히 돌리기 시작했다. ‘뎅….’ 미약하게 시작한 소리는 그녀의 손이 그릇의 가장자리를 돌면 돌수록 신기하게도 점점 커지는 것이다. “싱잉볼(Singing Bowl)이라고 불러요. 인도에서 요가 수련을 시작하거나 끝낼 때 사용하는 물건인데, 일상과 수련의 경계를 지어 주는 용도라고 해야 할까요. 최면에 빠지고 다시 깨는 것처럼요.” 그런데 보울마다 모양도 소리도 각기 다 다르단다. “싱잉볼을 고르는 방법은 자신의 마음을 울리는 소리를 찾는 거예요.” 마음의 울림을 찾아, 우리는 어느새 인도로 가 닿았다.

해가 뜨기 전 깜깜한 새벽에 도착한 우유니 사막에서 맞이한 일출

그녀의 소리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싱잉볼로 특히 유명한 인도 라다크(Ladakh) 지방으로 가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많은 보울을 다 울려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혼자 하지 못한 일은 때로는 같이하면 된다. 라다크 여행 중에 만난 한국인 3명과 동행한 예슬씨는 싱잉볼이 잔뜩 쌓인 시장의 한 가게로 용기 내 들어갔다. “거기서 거의 1시간 가까이 이 보울 저 보울 다 시험해 봤어요. 맘에 드는 소리를 찾을 때까지 얼마든지 허락해 준 주인 아저씨의 인자함 덕분이었죠.” 전체적인 톤이 차분하고, 처음엔 수줍다가도 갈수록 대담해지는 소리는 그녀의 것이 틀림없었다.  

사람이 없는 풍경을 보고 싶어 멀리 떠나 왔는데. 결국엔 사람이 있는 풍경이 더 아름답다

‘인생’ 싱잉볼을 만난 것 외에도 인도 여행은 그 자체로 가치였다. 인도 북부 리시케시(Rishikesh) 아쉬람(Ashram)*에서의 생활은 요가를 하는 한 사람으로서 비할 데 없이 값졌다고 그녀는 말했다. 아쉬람에서의 하루는 철저히 종을 기준으로 흘러갔다. 이른 새벽종이 울리면 일어나 명상을 하고, 그러다 또 종이 울리면 요가로 수련을 하고, 또 한 번의 종이 울리면 식사를 했다. 하루에 요가 수련은 2~3차례 계속 이어졌다. “지루하리만큼 고요한 침묵의 연속이었지만, 그만큼 제 자신과 가까워질 수 있었어요.” 그렇게 알게 된 예슬씨 자신은 높은 곳에 기어이 올라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아쉬람│인도의 수행자들이 모여 생활하는 공간. 방문자들 역시 수행자 생활 지침을 엄격하게 따르며 명상을 한다 

여행 100일에 막 접어들었을 때, 우유니의 작은 공항에서. 정말 배낭여행자 같아서 조금 웃었다. 기뻤다




요가와 여행의 교집합


우리는 ‘현존’하고 있었다. “다신 오지 않을 그때뿐인 순간이요. 수련하는 사람들은 그걸 현존(現存)이라는 말로 표현해요.” 요가와 여행의 공통점에 대해 예슬씨는 말했다. “스스로 자각하지 않으면 스쳐 지나갈 아주 사소한 풍경 하나에도 감명을 받는 게 여행인 것 같아요. 요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같은 동작을 해도 매일매일 몸의 반응과 느낌이 달라지는 게 요가라면, 그 또한 매 순간 새로운 여행이다. 지금이 아니면 다신 없을. 

그녀는 극도로 현존의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다. 코스타리카와 페루를 거쳐 도달한 볼리비아에서. 감히 가 본 적이 없지만, 꼭 가야만 했던 우유니 소금사막(Salar de Uyuni)에서였다. “한동안 우유니 사진을 늘 방 한 곳에 붙여 놓았었어요. 여러 모로 힘든 시기였는데, 왠지 몰라도 그냥 그 사진 한 장이 위로가 됐어요.” 그러니까 그 사진으로만 보던 우유니 사막에 두 발을 딛고 선 것이다. 또 한 번 울음이 터져 나왔다. “가기 전날까지 하늘이 흐려서, 다음날은 꼭 개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몰라요. 그런데 비온 뒤 거짓말처럼 하늘이 열리더니 믿을 수가 없는 장면이 들어왔어요. 해가 뜨고 지는 것조차, 살아 있는 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더라고요.” 우유니 사막에 대해 한참을 열을 올려 설명하던 그녀는 결국 도저히 그 어떤 말로는 표현이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아직은 그곳에 가 본 적이 없는 내게, 꼭 직접 봐야만 어떤 기분인지 안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몸소 겪어야만 알 수 있다는 점 역시 여행과 요가의 교집합일 테다. 


균형을 잡기 위해 균형을 깨는 행위


300일 후 돌아온 그녀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마음의 농도가 옅어졌다 해야 할까요? 무거웠던 것들이 한결 가벼워졌고, 집착하지 않게 됐어요.” 한층 솔직해지기도 했다. “예전엔 남들에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어떻게든 안간힘으로 버티고 감췄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그럼 욕심을 다 버린 거냐 했더니, 그건 또 아니란다. “욕심은 있지만, 그 에너지가 다른 것 같아요. 무언가 되어야겠다는 게 아니라, 즐겁게 살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예슬씨는 당분간은 이대로 지내고 싶다고 했다. 요가를 하고 가르치며, 좋은 사람들을 만나 건강한 음식을 먹고 맘껏 웃으며. 여행에서 얻은 영감을 재료 삼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생각이다. “여행에서 그랬던 것처럼, 일상에서도 사소하지만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으려고요.” 그녀는 300일 전보다 확실히 행복해졌다.  


“To lose balance sometimes for love is part of living a balanced life.” 
때로는 균형이 깨져야 삶의 더 큰 균형을 잡을 수 있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대사처럼, 예슬씨에게는 어쩌면 요가도 여행도 균형을 찾기 위한 과정일지 모른다. 더 매끈한 호흡을 위해 그나마 고른 호흡도 잠시 멈춰야 하는 동작, 더 큰 깨달음을 위해 애써 얻은 작은 안정감도 깨야만 하는 행위. 그 과정에서 그녀는 다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말한다. “요가를 할 때, 요가복을 입어야 하니 살을 좀 빼고 시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요. 사전에 여행경비를 다 모으고 모든 계획이 완벽하게 세워져야만 긴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처럼요. 근데 사실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요? 그냥 오늘 요가복을 입고, 지금 있는 돈으로 여행을 떠나면 돼요. 지금 당장요!” 


좀 아까 싱잉볼의 소리는 이미 희미해져 가고 없지만, 그 울림은 여전히 이 텅 빈 공간을 꽉 메우고 있는 것 같았다. 

 



예슬’s PICK
망설이지 말고 당장 가면 좋을 요가의 성지


Costa Rica
카사젠 게스트하우스 & 요가 센터

Casa Zen Guest House & Yoga Center
코스타리카 산타 테레사 해변에는 요가 & 서프(Yoga & Surf) 게스트하우스가 굉장히 많다. 그중에서도 산타 테레사 해변에서 1분 거리에 위치한 카사젠은 요가를 하기에 가장 최적의 환경이다. 에어발코니에서 하루에 두 번 요가 수업이 있고 원하면 서핑과 마사지도 즐길 수 있다. 요가는 빈야사 요가 위주로 수업이 진행되며, 코스타리카를 방문한 세계 방방곡곡의 요가 강사들의 다양한 수업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다.

주소: 50 mts Este de Super Costa, Playa Santa Teresa, Costa Rica, Santa Teresa 30103, Costa Rica

전화: +506 2640 0523  
이메일: info@zencostarica.com  
홈페이지: zencostarica.com


India
아난드 프라카쉬 요가 아쉬람
Anand Prakash Yoga Ashram

고요한 아쉬람 내부에서 새벽에는 명상과 요가 수련 시간이 있고, 저녁식사 전에 한 번 더 요가 수업이 있다. 요가 수업은 주로 하타 요가 스타일로 진행되며, 일주일에 두 번은 아침식사 시간에도 묵언을 해야 한다. 잘 짜인 아유르베딕Ayurvedic 식단으로 하루 세끼 식사를 제공하며, 수업시간 외에도 요가 스튜디오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짧게는 10일에서, 길게는 2~3주 동안 생활하다 가는 외국 여행자들이 많다. 

주소: Tapovan, Rishikesh 249192, Uttarakhand, India

전화: +91 135 244 2344  

이메일: ashram@akhandayoga.com  
홈페이지: akhandayoga.com   


*인터뷰를 한 최예슬은 요가매트 위에서 삶을 연습하던 어느 날 10년이 흐른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 길을 떠났다. 300일간 코스타리카, 페루, 볼리비아, 인도, 네팔, 태국을 떠돌고 돌아와, 또다시 매트 위에서 새로운 삶을 만나고 있다. 
브런치: yogajourney  
인스타그램: yogajourney_yeseul


글 김예지 기자  인터뷰사진 Photographer 임학현  여행사진 제공 최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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