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가 알려주지 않는 최신 기종의 비밀
항공사들은 언제나 신기종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그런데 승객들은 막연히 최신 기종이니까 좋을 거라고 생각할 뿐이다.
궁금한 점은 바로 이거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뭐가 좋다는 건데?”
이름 하나는 확실히 잘 지었다. 보잉의 787 ‘드림라이너(Dreamliner)’ 얘기다. 하루하루 기대를 부풀려 갔던 첫 탑승은 신선하다 싶을 정도였지 특별할 건 없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좋았던 ‘그 느낌’도 어쩌면 새 비행기였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세계 최대 비행기이자 하늘의 여왕’, ‘하늘을 나는 호텔’ 등 새로운 기종을 출시할 때마다 항공사의 미사여구가 요란하다. 그들이 말하는 천상의 장점들을 지상의 언어로 다시 정리해 봤다.
소음, 습도, 간격이 다르다
아마도 최신 비행기에서 가장 먼저 체감하는 것은 줄어든 소음일 것이다. 엔진 자체의 소음은 물론 방음을 강화해 객실의 소음도 확연히 낮췄다. 조금 과장하자면 사람들이 중얼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기내가 조용해졌다. 비행기의 자체 소음이 줄면 이전까지 의식하지 못했던 배경 소음(승객들이 내는 달그락 소리나 아기 울음소리 등)이 거슬리기 시작해서 오히려 승객의 불만이 더 늘어난다는 ‘허무한’ 연구 결과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조용해졌다는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다음은 쾌적함이다. 비행기 제작에 들어가는 소재가 우수해졌다. 보다 가볍고 튼튼한 복합소재의 비율이 50% 이상으로 늘었다. 금속 소재의 비중이 높은 기존 항공기는 습기로 인해 부식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기내의 습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비행기를 타면 입술이 건조해지고 코가 마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또한, 비행기의 고도가 높아지면 지상에서보다 기압이 낮아지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객실 압력을 높이게 되지만 여압을 마냥 높게 할 수는 없다. 비행기 밖은 기압이 희박한데 안에만 압력을 높여 주면 풍선마냥 뻥하고 터져 버릴 테니까. 이런 문제들을 복합소재가 해결해 주었다. 가볍고 강도가 높아진 기체 덕분에 기내압을 지상 수준과 가깝게 높일 수 있게 되었다(그렇다고는 해도 지상 기압의 75% 정도가 최고치라고). 덕분에 혹사당하던 우리 몸이 조금은 편해졌다. 착륙할 때 기압 변화로 인해 귀가 아픈 현상 역시 크게 줄어들었다.
항공사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좌석 간격도 넓어진 경우가 많다. 물론 좌석 자체가 슬림해진 것도 이유다. 예민한 사람들은 기존 시트에 비해 안락함이 떨어진다는 평. 하지만 쥐가 난 다리로 누리는 폭신함보다는 다리 뻗을 공간이 늘어나는 게 좋지 않을까.
누구를 위한 최신일까?
사소한 경험에서 의심이 싹텄다. 보잉 787의 창문에는 전통적인 햇빛가리개가 없고 유리의 색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최첨단 틴티드 글래스(Tinted glass)를 쓴다. 신기하기도 하고 괜찮았다. 그런데 이 최첨단 기술이 승객의 편의보다는 매번 가리개 개폐를 요청해야 하는 승무원의 수고를 줄이려는 것이 우선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륙하고 일정 시간이 되자 스위치 작동이 잠겨 창문 농도를 더 이상 조절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이라면 가리개를 살짝 열어 볼 수라도 있었을 것을.
사실 새로운 비행기의 신기한 기술과 소재는 승객만을 고려한 업그레이드가 아닐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면, ‘하늘의 호텔’ A380은 항공사가 승객에게 호텔급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사들인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항공사에게 기종 선택의 최우선 기준은 경제성이다. 빈 좌석 없이 승객을 꽉 채우는 것은 기본이고, 기름 적게 먹고 정비에 시간과 돈이 적게 드는 착한 비행기가 환영받는 것이다. 한때 최고의 스타였던 A380이 일순 천덕꾸러기가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덩치 큰 천덕꾸러기는 가라
A380이나 B747 같은 초대형기는 자체의 가격도 어마어마하지만 유류비, 정비 비용(2개만으로도 골치 아픈 엔진이 무려 4개), 공항 이용료, 만만치 않은 조종사들의 기종 교육비 등으로 그야말로 돈 먹는 하마다. 덕분에 아직 개발비도 충당하지 못했다는 A380은 중동의 어느 부유한 항공사의 추가 주문이 끊기면 생산을 중단해야 할 딱한 처지가 됐다.
한동안 대형기의 인기가 높았던 이유는 ‘허브공항전략(Hub-To-Hub)’ 때문이었다. 승객이 많은 주요 노선에는 대형기를 투입하고 그 외 지방 노선에 소형기를 띄웠던 것. 그런데 장거리 노선을 거뜬히 소화하는 능력 있는 중형 기종이 나오면서 지각 변동이 일어나게 됐다.
항공사들이 대형 기종을 구입한 이유가 수용 인원 때문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큰 비행기만이 장거리를 운항할 수 있었던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자. ETOPSF*라는 규정이 있다. 신규 노선을 심사할 때 운항로에서 두어 시간 내에 비상착륙이 가능한 공항이 반드시 있어야 허가를 내주는 규정이다. 단, 대서양이나 태평양을 건너는 장거리 노선은 엔진이 여러 개일수록 이 규정에서 더 자유로울 수 있었다. 대양횡단노선에는 엔진이 4개 달린 큰 비행기가 필수였던 이유다.
그런데 엔진 기술이 발달하면서 신뢰성은 물론 연비도 좋아졌다. 엔진 2개만 달린 작은 비행기도 멀리 갈 수 있게 되었다. 올해 3월 콴타스항공은 런던-퍼스 간 1만4,498km 거리를 17시간 동안 논스톱으로 비행하는 정기항공편을 띄웠는데, 이때의 주인공도 엔진 2개짜리 B787이다. 곧 미국-유럽 간 대서양 노선을 대표적 단거리 기종인 B737의 최신 버전으로 건널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기술의 승리에 기립박수라도 쳐 주고 싶지만, 승객의 입장에서는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크고 넓은 비행기를 놔두고 국내선에서나 탔던 작은 비행기로 장거리 여행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까.
이렇듯 최신 기종의 도입의 핵심 이유는 항공사의 비용 절감이고, 승객의 편의는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서운할 필요는 없다. 치솟는 물가에도 불구하고 항공 요금은 2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 아니, 오히려 더 저렴해진 티켓도 있다. 원가 절감이 저렴한 티켓으로 돌아온다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랴.
*ETOPS (Extended-range Twin-engine Operational Performance Standards)
쌍발 엔진 비행기의 엔진 중 하나가 고장 나면 나머지 하나로 운항할 수 있는 시간을 각 기종별로 인증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ETOPS-180 기종이란 비상 시 다른 엔진 하나로 180분(3시간) 내에 대체 공항에 비상착륙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유호상은 어드벤처 액티비티를 즐기는 여행가이자 항공미디어 에디터로 활동 중이다.
글 유호상 에디터 천소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