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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Jul 19. 2019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
섬으로 떠나는 백패킹 여행

섬 여행자들의 성지, 굴업도 백패킹 떠나기

굴업도의 동가숙 서가식


언젠가 
혼자 섬 백패킹 여행을 가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래서 추천 받은 리스트의 첫 자리엔 
굴업도가 있었다. 
혼자서도 좋은 곳이라고. 
추천은 반만 맞았다. 
굴업도는 혼자서도, 여럿이어도, 
오롯이 좋았다. 




백패커들 사이에 성지로 소문난 굴업도 개머리언덕에 석양이 내린다


굴업도 안의 무인도


지난봄 <트래비>에서 진행했던 후쿠오카 캠핑여행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목적지는 섬이고, 방법은 캠핑에, 조금 힘들더라도 멋진 곳이어야 한다는 세 가지 조건에 딱 들어맞는 후보지는 굴업도였다. 

누군가 관련 글을 링크로 보내 왔다. ‘한국의 갈라파고스…’로 시작하는 기사였다. 너무 거창해서 농담 같은 수식어가 독이 될지, 약이 될지 모르는 채로 6월의 어느 새벽 인천항 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덕적도에서 다시 배를 갈아타고 도착한 굴업도 선착장에는 민박집에서 마중 나온 트럭들이 대기 중이었다. 

숙소와 식사를 예약한 여행객들을 겹겹이 싣고 떠나 버린 뒤, 남겨진 이들은 별 대책도 생각도 없어 보이는 백패커들이었다. 그중 하나가 나였고. 일행보다 하루 먼저 들어온 섬의 첫날밤은 모두가 향하는 그곳, 개머리언덕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보내기로 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동섬에 첫날의 여장을 풀었다


굴업도는 마치 두 개의 섬이 모래톱으로 연결되어 있는 모양새다. 그래서 형성된 두 마을 사이에 기다란 목기미해수욕장과 두 개의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붉은모래해변에는 1920년대만 해도 매년 8월 1,000척이 넘는 배가 모여드는 민어 파시가 열렸던 곳이다. 선원과 상인들까지 2,000여 명이 북적였고, 그들의 두둑한 주머니를 반기는 술집도 함께 흥했다는 것을, 지금의 폐허 위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들을 한꺼번에 바다로 휩쓸어 간 것은 1923년 8월에 불어닥친 2353호 태풍이었다. 1,157명의 인명 피해를 냈던 이 태풍은 기상관측 사상 두 번째로 많은 인명 피해를 낸 태풍이었다. 동섬 마을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고, 어획량이 줄면서 민어 파시도 1960년대 이후로 맥이 끊겼다. 전깃줄이 끊어진 전봇대, 아무도 찾지 않는 화장실과 창고 등 건물의 잔해만 일부 남아 있을 뿐이다. 


민어 파시가 사라지면서 마을도 함께 사라지고, 폐허만 남았다


평평한 곳을 골라 설영을 했다. 동섬의 양 끝이 산이고 가운데가 오목한 지형이다. 단개비어, 동뿌리 등의 옛 이름이 예쁜데, 지금은 연평산(128m)과 덕물산(138m)으로 불린다. 3년이나 지속된 가품 탓에 초지가 거의 사라지고, 바람이 불 때마다 흙먼지가 일었다. 지천으로 깔린 사슴의 배설물은 이 지역 전체를 그들의 영토로 선포하고 있었다. 


동섬에서 내려다본 목기미해수욕장. 건너편이 서섬이다


얼마 남지 않는 풀밭 위에 식탁을 차리고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일 즈음, 마을에서 묵는 여행자들이 점심 식사를 마치고 트레킹을 위해 모래톱을 건너오는 것이 보였다. 옆구리처럼 증식을 거듭하고 있는 해안 사구, 파도뿐 아니라 안개에도 부식이 되었다는 해식애, 어쩌다 여기까지 와서 굳어 버린 코끼리 바위 등등 비경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오가며 던지는 한마디들이 쌓인다. “아고, 오늘 밤에 여기서 자는 겁니까?”, “부럽소!” 부럽긴, 노지 캠핑인 걸. 식수도, 화장실도 없으니 최소한의 생활을 해야 한다. 그래도 부러워할 이유가 있다면, 그건 바다로 사라지는 해와 별의 궤적을 가만히 조망할 수 있는 특권일 것이다. 




굴업도 성지 사용법


시계를 돌려놓은 듯, 다음날 점심 무렵 다시 선착장에 내려가 있었다. 주민이 20여명 밖에 남지 않은 작은 섬이지만 한 해 들어오는 관광객은 1만여 명이나 된다. 그중 일부는 서섬에서 하룻밤쯤 민박을 하면서 길이 400여 미터의 큰말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갯바위에서 낚시를 즐기거나, 섬 일주 트레킹도 할 수 있다. 그 마무리를 완벽하게 하려면 맛깔스러운 섬 밥상을 받아 봐야 하므로, 예약이 필수다. 


개머리언덕으로 올라가는 난코스. 이후는 천국이다


그러나 식후경의 법칙을 배반한 채, 그 밥상을 뒤로 미루고 백패커들이 서둘러 서섬의 개머리언덕으로 올라가 버린 이유는 역시 명당 확보였다. 수크령 군락으로 뒤덮여 시야가 탁 트인 언덕은 굴러도 다치지 않을 만큼 완만하고 폭신했지만, 텐트를 여러 동 칠 수 있을 만큼의 너른 평지가 없기 때문. 인원이 10여 명이나 되었던 우리 팀은 한참 위쪽에 자리를 잡았지만 텐트를 포함해 내려다보는 조망도 나쁘지 않았다. 


섬에서의 한 끼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 후방으로 소리 없이 움직이는 안광의 주인공은 사슴들이다. 대략 100여 마리쯤 된다는데, 가뭄에 야생화 싹까지 모조리 먹어치우는 탓에 주민들에게는 눈엣가시란다. 밉게 보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먹거리를 잔뜩 짊어지고 와서는 개머리언덕에서 자고 돌아가는 백패커들이 얌체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삶은 순환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개머리언덕은 모 기업체의 사유지라서 그것을 이용할 권한이 법적으로는 주민들에게도, 여행자들에게도, 사슴에게도 없다. 하지만 골프장을 만들겠다는 기업의 계획 역시 이뤄지지 못하고 있으니, 아직은 ‘좋음’보다는 ‘옮음’을 기준으로 공존하려는 게 아닐까.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초보 백패커에서 굴업도를 추천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노지 캠핑의 예의와 땅과 사람, 공존에 대한 생각을 가져 보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동섬 해안의 코끼리 바위. 파도와 안개의 합작품이다


배낭의 부피가 준 만큼 배가 나왔다. 양손에 쓰레기봉투가 들린 채로 마을로 내려왔다. 서인수씨가 운영하는 민박집은 안주인의 솜씨가 좋기로 유명하다. 평소 맛볼 수 없는 재료로 만든 반찬과 쫄깃한 아구 매운탕에 막걸리와 소주병이 순식간에 비워지고, 평상에 누워 나른하게 낮잠까지 한숨 자고 나니 돌아갈 배 시간이다. 


점점 부풀어 오르는 사구는 옆구리 살처럼 보드랍다


엎드려 일하는 사람의 형상이라고 해서 이름 붙은 ‘굴업도’에 엎드려 이틀 밤을 편하게 묵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넓고 평평한 등처럼 믿음직했고, 안전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혼자여도 좋을 백패킹 여행지 1순위, 한국의 갈라파고스, 문화재청이 인정한 해안지형의 백미, 그 모든 것이 품 안으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 그 포근한 ‘받아들여짐’을 굴업도와의 첫 포옹으로 기억할 것 같다.


굴업도에서는 사람보다 흔히 마주치는 것이 사슴이다



굴업도 찾아가기


굴업도에 가려면 인천항 여객터미널을 출발해 덕적도에서 다시 배를 갈아타야 한다. 덕적도에서 출발하는 배(평일 오전 11:20, 토·일요일·공휴일 10:30 /14:00)는 홀수일에는 덕적-문갑-굴업-백아-울도-지도-문갑 순으로 운항하지만 짝수일에는 역순으로 운항한다. 요일에 따라 소요 시간이 40분 혹은 2시간이 되는 셈이다. 인천-덕적도 왕복 요금은 4만8,000원(쾌속선), 덕적-굴업 왕복 요금은 1만5,000원 정도다. 

고려고속훼리  www.kefship.com 

굴업도 민박 
가격: 4인 1실 5~6만원, 식사 1인 9,000원
홈페이지: www.gulupdo.com



글 천소현 기자  사진 김민수(아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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