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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Dec 16. 2019

모리셔스에서 만난 빛나는 표정들

섬, 꿈 그리고 모리셔스 #4

사탕수수밭에서 고된 하루를 보낸 노예들은 
깜깜한 밤이 되면 해변으로 나와 
모닥불을 피우고 그 주변에 모여 그들의 
통과 설움을 노래와 춤으로 털어냈다.



고된 몸과 서러운 마음을 털어내는 농밀한 몸짓


1505년 아프리카 대륙을 에둘러 인도양 바다를 항해하던 포르투갈 선원들은 포동포동 살찐 도도새만이 뒤뚱거리는 무인도를 발견했다. 모리셔스다. 긴긴 항해에 지친 선원들이 평화롭던 모리셔스에서 나는 법마저 잊은 도도새를 모두 먹어 치우자 정말 주인 없는 섬이 됐다. 이후 1598년 네덜란드가 이 섬을 식민지로 삼았다.


설탕, 럼주 등 모리셔스를 대표하는 상품들이 바로 이 사탕수수에서 탄생한다


하지만 그들은 17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을 식민지로 만들면서 떠났고, 천연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마다가스카르 등지에서 들여 온 노예들은 그대로 남겨졌다. 오늘날 모리셔스의 역사는 그 이후부터 시작된다. 1715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면서 기존의 노예들을 통솔하고 아프리카 대륙의 노예들을 더 많이 데려와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시작했다. 그 시기 인도 이민자들도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아주 독특한 문화가 생겨났다. 바로 크레올(Creole)이다.

크레올에 대한 정의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모리셔스에서 크레올은 프랑스 백인과 흑인 노예의 피가 섞인 혼혈과 언어·음식·예술 등 그들이 꽃피운 문화 전반을 통칭하는 말이다. 백인의 피가 섞였지만 그들의 지위는 높아지지 않았다. 혼혈 노예, 여전히 슬픈 사람들. 



1년에 한 번 모리셔스에서는 크레올 페스티벌이 열린다. 크레올 문화의 중심이라고 하는 셰이셸에 비하면 그 규모는 훨씬 작지만 그들 스스로 크레올의 정체성을 되찾고 크레올 문화를 알리는 기회로 꾸준히 축제를 열고 있다.



노예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친 노예들은 거친 돌산으로 이루어진 남서부의 르몬(Le Morne)으로 몸을 숨겼다. 바깥 세상과 단절된 곳이라 노예제도가 폐지된 것도 모르고 산꼭대기나 동굴에 숨어 지내던 노예들은 소식을 전하러 온 군인들을 보고도 자신들을 잡으러 온 것이라 오해를 하고 만다. 그리곤 곧 절망에 빠져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죽음이라는 영원한 자유를 선택했다고 한다. 

르몬의 몬(Morne)은 한탄하다, 슬퍼하다는 뜻이다. 유네스코 문화경관으로 지정된 이곳에서 크레올 세가(sega)가 멍석을 깐다. 사탕수수밭에서 고된 하루를 보낸 노예들은 깜깜한 밤이 되면 해변으로 나와 모닥불을 피우고 그 주변에 모여 그들의 고통과 설움을 노래와 춤으로 털어냈다.


세가 리듬에 맞춰 화려한 춤사위를 뽐내는 아름다운 크레올 여인



세가는 슬프지도, 한스럽지도 않다. 리드미컬하고 다이내믹한 가운데 힘차고도 섹시했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오롯이 삶의 환희를 느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또는 그만큼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이 무아지경에 이를 만큼 강렬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동네 아이들이 크레올 댄서들 앞에서 몸을 배배 꼬며 춤사위를 따라한다. 무희들의 공연보다 더 재미있었던 것은 무대 아래 잔디밭에서 펼쳐진 크레올 사람들의 움직임이다. 축제가 무르익을수록 더욱 농밀해지는 그들의 몸짓에 모리셔스의 밤이 짙어진다.




한 번 봐선 알 수 없는 모리셔스의 표정


미간 사이 빨간 점 빈디(Bindi)를 찍은 인도계 여성도, 까맣고 탄력 있는 피부를 뽐내는 흑인 청년도 하나같이 “나 모리시안이야”라고 했다. 불룩 나온 배로 인격을 자랑하는 백발의 중년도, 어느 나라 출신인지까진 모르겠지만 다시 봐도 유러피언인 그 역시 자신을 모리시안이라 소개했다.

1810년 프랑스에 이어 영국이 모리셔스를 차지하면서 모리셔스는 유럽과 아프리카 인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문화가 한데 버무려진 다민족, 다문화 국가로 발전하게 된다. 다양한 표정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기까지 꽤 불편한 역사가 존재하지만 1968년 영국으로부터도 벗어나 완전히 독립국이 된 모리셔스는 이제 모리시안들의 나라이다.


영국 식민지 시대의 건축양식과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유레카 하우스


모카 강변, 식민지 시절의 건축양식이 잘 보존된 크레올 하우스 유레카(Eureka)에서 크레올 아주머니가 만들어 주는 커리 요리를 맛보고, 섬의 남부 화구호에 위치한 힌두사원 그랑바신(Grand Bassin)에 다다라 성스러운 기운에 젖어 본다. 힌두교도들이 제물로 올린 바나나를 쏜살같이 달려와 가로채는 원숭이 무리만이 분주하다.


그랑바신


유독 까만 하늘 그래서 별빛이 더욱 또렷하게 보이는 모리셔스의 밤에 다시 그랑베이를 찾았다.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랑베이에서 가장 분위기 좋다는 바나나비치클럽에 자리를 잡는다. 모리셔스산 맥주 피닉스(Pheonix)도 좋고 럼 베이스의 달콤 쌉쌀한 칵테일도 좋다. 테이블은 이미 만석이지만 돌아서는 이가 없다. 낯선 이들과 엉켜 스탠딩으로 즐기는 분위기가 제법 자연스럽다.



모리셔스는 한 번의 여행으로 받아들이기 벅찰 만큼 다채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만나는 모리시안들마다 “모리셔스는 처음이니?”라고 물어 본 까닭에 한번은 “왜 다들 처음이냐고 물어 봐?”라고 되물은 적이 있다. 자기도 웃긴지 박수를 치며 웃다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려 주었는데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또다시 그 질문을 받을 수 있으려나. 멀어지는 모리셔스를 향해 나직이 인사한다. 안녕, 나의 첫 번째 모리셔스.



글  Travie writer 서진영   사진  Travie photographer 문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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