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세 가지 색은 아니었어
운전자와 보행자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신호등을 만난다. 인생에서 2주는 횡단보도를 기다리는 시간이라고도 한다. 1868년 영국 런던에서 도입한 최초의 신호등은 ‘정지’를 뜻하는 빨간색과 ‘주의’를 의미하는 초록색으로 유리를 끼워 가스등에 장착한 이동식 수동 신호등이었다고. 하지만 수동이라 불편했고, 폭발 사고로 경찰관이 다치면서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그 후 1914년, 발명가인 가렛 모건(1877~1963년)에 의해 미국 디트로이트시에 최초의 전기 신호등이 설치됐다. 처음에는 적색등 하나였다가 4년 뒤에 뉴욕에서 최초로 3색 신호등이 선보여졌다. 지금 익숙한 3색 자동 신호등은 1928년 영국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왜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신호등이 정해진 것일까. 알고 보니 색의 특징 때문이었다. 빨간색은 무지개색 중에서도 파장이 길어 멀리서도 뚜렷하게 구분된다. 색맹이어도 붉은색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경고 혹은 위험을 표현하기 좋다. 반면 초록색은 안전을 의미하고 눈을 편안하게 해주는 색이다. 빨간색과 대비되는 색이라 눈에 잘 보이고, 심리적 안정감을 주어 채택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란빛은 빨간빛, 초록빛과 함께 있을 때 가장 대비되는 색으로 구별이 쉬워서 선택되었다고 한다.
타이완
멈춰 있는 신호등은 저리 가시오
“신호등 캐릭터는 정지된 모습이다”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타이완의 신호등 속 캐릭터는 초록 불이 되면 걷기 시작하다가 남은 시간이 줄어들면 뛰기도 한다. 그 움직임을 따라 같이 서두르다 보면 빨간 불로 바뀌기 전에 건너편에 도착해 있게 된다.
지난 타이완 여행 내내 비가 와서 우울했는데, 이 신호등을 보고 얼마나 혼자 웃었던지. 다양한 스피드에 따라 7번의 프레임으로 움직이는 이 친구에게도 이름이 있다. 타이완 소록인(台灣 小綠人/Taiwan Little Green Man), 생일은 1999년 3월18일이다.
15살이 되었던 2014년 12월23일에는 15주년 기념 깃발을 그린맨이 탄생했던 거리 교차로(타이베이 101빌딩 근처)에 세워 주기도 했다고. 그린맨을 향한 타이완 사람들의 애정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올해 21살, 곧 다가올 생일을 미리 축하해요, 리틀 그린맨!
태국
‘짜이옌’으로 마음의 평화를
방콕의 신호등에는 정지일 경우 팔을 둥글게 펴고 있는 사람이, 보행시에는 보폭이 큰 사람의 모습이 점선으로 담겨 있다. 동그란 신호등의 테두리가 인상적인데 꼭 계란 후라이 세 개가 매달려 있는 것 같다. 운전자를 위해 빨간불 위에 초 단위로 얼마나 시간이 남아 있는지 보여 주는데, 그 숫자가 아주 큰 단위부터 시작된다.
흔히 태국인의 특징을 ‘짜이옌’이라고 하는데, ‘짜이(..)’는 ‘마음’, ‘옌(....)’은 ‘차고 느긋하다’는 뜻이다. 오토바이와 차가 뒤섞어 교통 체증의 끝을 보여 주고 있을 때는 정말 신호등이 있으나 마나 하지만 태국인들은 아무도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쿠킹클래스에 늦어서 아침에 택시를 탔는데 나 혼자만 급했지, 기사는 마냥 여유롭고 느긋했다. 결국 나는 도중에 내려 버렸다.
몽골
내 촉은 역시 빗나가지 않아
일행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나 홀로 울란바토르 시내를 뚜벅뚜벅 걸으며 마주한 신호등은 한국의 신호등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지나가는 차나 트럭의 뒤에도 ‘DAEWOO’라고 쓰인 경우가 많아서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몽골의 신호체계는 유럽과 일본 것을 받아들였지만 신호등 기기는 한국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울란바토르 인구는 총 150여 만 명인데, 차량이 100만대가 넘는다. 쉽게 눈에 띄는 것이 기아, 대우, 도요타, 혼다 등 한국과 일본에서 온 중고 차량이다. 울란바토르에는 차도 많고 신호등도 있지만, 도시를 벗어나면 이동 수단은 ‘푸르공(러시아 군인들이 사용하던 승합차)’ 등으로 제한적이고, 고비사막, 차강소브라가, 비양작 어디에도 신호등 같은 건 없다.
체코
골목길에도 신호등이 있다
프라하의 명물 중 하나인 ‘신호등 골목’을 찾았다. 좁은 골목 밑으로 내려가기 위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잇고 있었고, 나도 그 행렬에 합류했다.
내가 나가는 방향은 내리막길이었지만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사람쪽에 신호를 바꿀 수 있는 버튼이 있다. 초록색 등이 켜지자 일제히 사람들이 내려갔고, 그 계단의 끝에는 식당이 있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기도 힘든 골목길인데, 신호등 덕분에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다. 길을 넓히는 대신, 조금 기다렸다 가는 불편을 감수하는 것. 지금 프라하의 고풍스러움을 간직한 이유다.
참! 프라하에는 ‘오줌 싸는 남자’ 그림이 들어간 신호등이 있다고 하는데 3박을 머무는 동안 보지 못했다. 보신 분은 연락 바란다.
오스트리아
나란히 손잡고 걸어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의 신호등은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으레 남녀 한 쌍을 연상하겠지만, 틀렸다. 성별이 같은 한 쌍이 초록불과 빨간불에 모두 등장했다. 꿀밤을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2015년 유럽 에이즈 자선행사인 ‘라이프 볼’과 유럽 최대 가요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등 여러 행사를 앞두고 비엔나에서 ‘평등’과 ‘동등한 대우’를 주제로 한 캠페인이 진행되었는데, 그 일환으로 47곳의 신호등을 교체한 것이다. 세금 낭비라는 일부의 비난이 있기는 했지만,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고.
신호등의 캐릭터를 바꾸었을 뿐인데, 혹시 내 안에 성별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으니, 놀라운 일이다. 현재는 카메라가 보행자를 감지해 자동으로 파란불로 바뀌는 신호등 시스템이 개발되어 2020년 말까지 비엔나 시내에 설치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트래비
독일
암펠만 아저씨 반가워요
독일 베를린에는 이미 마스코트가 되어 버린 암펠만(Ampelmann) 신호등이 있다. ‘신호등(Ampel) 사람(Mann)’이라는 뜻으로 이동을 의미하는 녹색 캐릭터는 ‘게어’, 정지 신호의 적색 캐릭터는 ‘슈테어’라는 이름까지 있다.
암펠만은 1961년 동독 출신으로, 동 베를린의 교통사고를 40%나 줄이는 기여를 했다고 한다. 통일 이후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암펠만은 구 동독 주민들과 활동가들의 ‘암펠만 살리기’ 운동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고.
베를린에서 프랑크푸르트로 넘어오자 신호등 풍경도 확 달라졌다. 눈에 띄게 많은 것이 자전거 전용 신호등이었다. 독일에서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자전거 타기를 필수 교과 과정으로 익히고, 4학년이 되면 자전거 관련 도로 교통 규정을 정식으로 배우게 된다. 교육 방법 또한 교통 신호와 수신호 방법 등을 운전면허처럼 실습 방식으로 배우고, 시험에 합격하면 자전거 운전면허증을 발급해 주는데, 이 면허증이 있어야 자전거 도로를 주행할 수 있다.
ⓒ트래비
프랑스
위아래 말고 양옆이요
파리에는 하나의 기둥에 총 3개의 신호등이 있는데, 가장 위쪽은 대형 트럭 운전자를 위한 것, 가운데는 보행자를 위한 것, 아래 신호는 승용차 운전자를 위한 것이다. 파리 구도심은 도로의 폭이 좁아서 보행 신호와 대기 신호가 짧게 자주 바뀐다. 그래서 차량 종류별로 운전자를 배려한 것이다.
한국은 멀리서도 신호를 잘 볼 수 있고, 정지선을 넘어가도 신호등이 보이지만, 파리는 도로 가장자리에 신호등을 설치해 정지선을 넘어서면 신호등이 보이지 않는다. 정지선을 지킬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행자 신호등의 디자인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데, 한 칸의 정사각형 안에 멈춤과 보행 신호가 사이좋게 붙어 있다. 그런데 파리는 차량 흐름을 개선하기 위해 2017년부터 점차로 신호등을 줄이는 추세라고 한다. 신호등은 없어도 문제지만, 너무 많아도 문제인 것이다.
캐나다
눌러야 산다
2주간 캐나다 빅토리아주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교환학생으로 지냈었다. 당황스러웠던 순간은 신호등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핸드폰을 보면서 마냥 기다리는데, 신호가 영 바뀔 생각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옆 사람을 지켜보니, 버튼을 꼭 누르는 것이 아닌가.
캐나다에서는 보행자가 많은 큰 사거리에서만 신호등의 불빛이 주기적으로 바뀐다. 그 외의 경우에는 버튼을 눌러야 신호가 작동하는데, 보행자 입장에서는 원할 때 건널 수 있어서 좋고, 운전자 입장에서도 공허한 정지 신호가 없으니 효율적이다(한국의 신호등 버튼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향 신호 버튼이다).
보행자 신호등의 정지 신호는 아주 단호해 보이는 빨간색 손바닥이고, 보행 신호는 하얀색 사람이다. 길을 건널 수 있을 때 새소리로 신호를 알려준다. 운전자용 신호등도 한국과 다르게 가로 배열이 아닌 세로 배열이다. 운전자가 굳이 신호등을 보려고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되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러시아
가끔은 주위를 쳐다봐야지
블라디보스토크에도 움직이는 신호등이 있다. 걷는 모습이 좀 어색해서 초보 모델의 워킹 연습 같기도 한데, 자꾸 보면 무뚝뚝하지만 친절한 러시아 사람들과 닮았다. 하지만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한국처럼 많지 않아 넓은 거리가 아닌 경우 그냥 건너면 되는데, 그래서인지 신호등 없이 사람이 걷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표지판이 종종 있고, 길을 건너려는 제스처만 취해도 지나가는 차가 무조건 선다.
처음에는 현지인 뒤를 강아지처럼 쫄래쫄래 따라다니다가, 단독으로 거리 횡단에 성공했을 때의 그 뿌듯함이란!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빨간불이 초록불로 바뀔 때까지 남은 시간을 숫자로 보여 주는 것이다. 심심하지 않게 신호등이 나와 놀아 주는 느낌이다. 10년 전만 해도 도시 전체에 신호등이 단 4개밖에 없어서 교통체증이 심했다던데, 2012년 APEC 정상회의를 치르면서 교량, 도로, 공항 등이 현대화됐다.
한국
날개에서 바닥까지, 약 80년의 세월
한국에 교통신호기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40년 무렵이다. 당시의 신호등은 기차역 플랫폼 입구, 기차의 홈인(Home-in)을 유도하던 기둥에서 세 가지 색깔의 날개가 번갈아 튀어나오는 날개식 신호기였다. 종로 화신백화점 앞, 을지로 입구, 조선은행 앞에 설치되어 교통경찰이 직접 조작했다고 한다.
광복 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현재의 점등식 신호등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자동차를 가진 가구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1978년에 온라인 신호 시스템이 등장하게 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시대를 반영하여 스몸비*를 위한 바닥 신호등도 생겼다. 손 안의 세상에 빠져 정면을 보지 않기 때문에 만들어졌다. 바닥 신호등 다음은 어떤 신호등일까. 우리나라도 암펠만 마스코트처럼 뽀로로 신호등이 만들어지면 어떨까. 도로가 예술로 변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으로 신호등을 구경하러 오는 그날을 기다린다.
*스몸비 | 스마트폰(smartphone)과 좀비(zombie)의 합성어로 스마트폰에 집중한 채 걷는 사람을 뜻한다.
*박유정은 직장을 다니며 국내로 해외로 여행하는 것을 낙으로 살고 있다.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에 늘 목말라 있어서인지 여행에 계속 빠져 있다.
글·사진 Traviest 박유정 에디터 천소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