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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Jan 16. 2020

기장님, 왜 돌아가요?

오래전 휴대폰 광고에 ‘가로 본능’이라는 광고 카피가 눈길을 끈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늘 효율을 추구하는 인간에게는 ‘직진 본능’이 있다. 

가까운 길을 놔두고 왜 돌아가겠는가? 하지만 가끔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아저씨, 어디로 가요!!!


작년이었던 것 같다. 조금 황당한 뉴스가 있었다. 야심한 밤에 강남에서 혼자 택시를 잡아타고 가던 한 여자 승객이 강변 대로에서 갑자기 문을 열고 차에서 뛰어내렸다.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다행히 다치지 않았다고. 그나저나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내막은 이러했다. 차에 탄 후 한참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이 승객은 문뜩 내다본 창밖 한강 다리가 자신이 예상했던 다리가 아님을 깨달았다. 순간 택시 기사가 자신을 납치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나중에 진술하길, 차가 가장 가까운 다리가 아닌 다른 다리로 갔기에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택시 기사는 억울했다. 가까워도 막히는 그 다리보다는 조금 돌아가도 안 막히는 다리를 선택했던 것뿐인데. 


비행기로 여행을 할 때 이런 일로 문을 열고 뛰어내릴 일은 결코 없겠지만, 모니터의 비행 루트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가져본 경험들은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아니 직선으로 가면 될 걸 왜 이렇게 돌아가는 거야?’

개인적으로 미국 동부 여행을 할 때 이런 경험이 있었다. 지도를 놓고 여행을 계획을 짜기 위해 비행 편을 고르는데 동부로 더 멀리 가는 비행기임에도 서부로 가는 비행기와 비행시간이나 요금은 별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렴 어떤가. 더 먼데 빨리 가면 좋지. 마침내 비행기를 탔고 모니터에는 현재 비행기의 노선이 나왔다. 그런데 비행기는 바다 건너 직진으로 가지 않고 북극 방향 위로 빙 돌아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아니 가뜩이나 장거리 노선이라 몸이 배배 꼬이는데 바로 가지 않고 왜 이렇게 돌아가는 거지?’     





돌아가는 까닭은?


비행기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가지 않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우선 지도 자체에 있다. 사실 우리가 보는 지도는 실상과는 많이 다르다. 지구는 구체이기 때문에 평면에 지도를 그리면 위도에 따라 땅의 면적에 왜곡이 생기면서 정확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방위도법, 원통도법, 원추도법 그리고 절충도법 등 갖가지 방법으로 ‘머리를 굴려봤으나’ 어느 한 지점의 왜곡을 상대적으로 최소화할 뿐 전체적으로는 없앨 수 없었다. 따라서 우리에게 익숙한 지도는 땅의 정확한 배열이나 거리를 나타내지 못한다는 말이다. 한 술 더 떠서 지구는 완전한 구체도 아니어서 적도 근처는 좀 더 볼록하다. 즉 더 멀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평면 지도상에서는 서울-LA가 바다를 가로질러 가야 빠를 것 같지만, 지구본으로 보면 그게 아님을 알 수 있다. 결국 최단거리는 북극 즉 베링해 쪽으로 ‘돌아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음 이유로는 전 세계적으로 정해진 비행 안전 규정과 관련이 있다. 엔진 성능이 미덥지 못하던 시절 생겨난 ETOPS(Extended-range Twin-engine Operational Performance Standards)라는 규정에 의하면 엔진이 두 개 달린 비행기는 한쪽 엔진이 고장 날 경우, 정해진 시간 내에 비상착륙할 수 있도록 최대한 착륙 가능한 곳을 인근에 두고 비행해야 한다. 물론 이 규정은 등급이 있어 비행기마다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ETOPS-120에 해당하는 비행기는 2시간 내에, ETOPS-180에 해당하는 비행기는 3시간 내에 착륙 가능한 거리의 루트를 비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즉, 엔진의 성능과 신뢰성이 좋은 최신 기종은 좀 더 멀리 떨어져도 괜찮다는 의미다. 참고로 초창기 엔진이 3개, 4개인 비행기는 꼭 엔진이 더 필요해서 뿐만이 아니라 이런 규정을 피하기 위해 생겨난 이유도 있었다. 엔진이 불안하지 않은 요즘이라 해도 비행 루트를 짤 때 되도록 비상착륙을 감안해야 하는 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태평양이나 대서양을 무턱대고 횡단하지는 않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이유들


또 하나의 요인은 경제성 문제다. 하늘에는 위도 간의 기온 차와 지구 자전 등의 영향으로 편서풍과 제트기류가 존재한다. 비행기의 진행 방향에 따라 운항시간이 2~3시간씩 차이가 나는 이유가 이것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제트기류의 세기는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데 겨울 한창때는 무려 400km/h를 육박한다는 점이다. 만화 영화 ‘니모를 찾아서’에서 보면 니모가 바닷속에서 마치 고속도로에 올라타듯 해류를 타고 빠른 속도로 멀리 이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늘에서 이 같은 존재가 바로 제트기류로, 이때는 고도를 낮추거나 제트기류를 최대한 피해서 가는 게 상책이다. 이런 경우 보통 거리는 늘어나게 되지만 기름값도 절약하고 오히려 비행시간을 줄이는 비결인 것이다. 



이 외에도 국가 간의 정치적 문제로 영공을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 냉전 시절에는 많은 나라의 여객기들이 소련 영공을 통과하지 못해 남북으로 돌아서 유럽과 아시아를 다녔다. 그 당시 인기 있는 통과 지역 및 중간 기착지는 알래스카의 앵커리지였다. 당시 유일하게 소련 영공을 지날 수 있었던 항공사는 중립국인 핀란드의 국적기 핀에어였는데, 최단거리 노선으로 한동안 엄청난 특권을 누렸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비행기가 영공을 통과하는 것도 공짜는 아니다. 요즘 같은 경제 전쟁 시대에 어지간해서는 돈 생기는 일을 마다할 나라는 없다. 덕분에 웬만한 곳은 돌지 않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오늘날이 여행자들에겐 행복한 시대다.      


글 유호상, 에디터 천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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