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엔진이 3~4개씩 달린 비행기가 흔했건만, 요즘엔 2개짜리가 대부분이다.
문뜩 불안해진다. ‘양쪽 엔진이 모두 고장나면 어떡하지?’
여객기도 글라이더처럼 활공해서 사뿐히 착륙할 수 있을까?
허드슨강의 ‘기적’적인 활공
2009년 1월 미국, US 에어웨이즈의 에어버스 A320 1대가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막 이륙했다. 그때였다. 새떼가 비행기 앞을 지나다 엔진에 빨려 들어갔다. 버드스트라이크(Bird strike)였다. 그 바람에 비행기의 양쪽 엔진이 모두 꺼져버렸다. 기장은 관제탑에 이를 보고했고 회항을 허가 받았다. 하지만 공항까지는 너무 멀었다. 절체절명의 상황! 기장은 순간적으로 강이 눈에 들어왔다. 강에 비상착륙을 하기로 한 것이다. 엔진은 꺼졌지만 비행기는 완만하게 하강하여 수면에 미끄러지듯 착륙했다. 성공이었다. 승객과 승무원 모두 무사했다. '허드슨강의 기적'으로 알려진 설렌버거 기장의 US 에어웨이즈 1549편 이야기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여객기의 ‘활공 사례’다.
거대한 여객기가 하늘을 나는 것도 신기한데 활공을 한다고? 하지만 원리를 알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늘에는 공기가 가득 차 있다. 비행기에 운동장 만한 날개를 달아 빠른 속도로 밀어주면 넓은 날개에 생기는 공기 저항이 너무나 커서 제 아무리 무거운 것도 붕 뜰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상스키 타는 사람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다. 모터보트가 끌어당겨 속도를 내면 물속에 반쯤 잠겨 있던 사람이 물 위로 떠오르며 발로 물을 스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보트가 속도를 줄이면 몸도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물 위든 하늘이든 ‘빠른 속력일 때’라는 조건이다. 이것을 가능케 해주는 게 엔진이다. 그러니 엔진이 없다면 비행기는 뜰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간혹 활공하는 ‘비행기’를 본다. 이건 활공만 전문으로 하는 글라이더이거나 매우 가벼운 비행기의 경우다. 글라이더는 처음부터 엔진 없이 오로지 기류를 타도록 동체를 매우 가볍게 공기 역학적으로 만들었다. 물론 스스로 이륙은 못하니 보통 비행기가 일정 높이까지 끌어올려줘야 한다. 글라이더만큼은 아니지만 경비행기 종류는 어느 정도 활공이 가능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타는 여객기가 위급할 때 활공을 할 수 있는가?’이다. ‘허드슨 강의 기적’은 상당히 짧은 거리라 활공이라고 하기엔 충분치 않은 면이 있다. 조금 더 극적인 사례를 찾아봐야겠다.
2001년 8월24일 승객과 승무원 306명이 탑승한 에어버스 A330은 대서양 상공을 비행 중이었다. 토론토를 출발, 포르투갈로 향한 지 약 4시간쯤 지났을 무렵 조종사는 우측 엔진의 기름이 새는 것을 발견했다. 경험 많은 기장은 처음엔 시스템 오류라 생각했다. 지상관제센터와 논의한 결과, 우선 지켜보라는 조언을 받았다. 하지만 이건 오류가 아니었다. 상황이 좋지 않자 조종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아조레스 섬의 공군 기지로 방향을 틀기로 한다. 그런데 아직 갈 길이 먼 상태에서 연료 부족으로 우측 엔진이 꺼져버린다. 이후 120km 남은 지점에서는 좌측 엔진마저 꺼졌다. 이제 이 비행기는 엔진도 없는 ‘무거운 글라이더’가 된 셈이다. 엔진 동력이 없어지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유압 동력도 사라져 플랩, 에어브레이크 등 비행기의 중요한 기기들이 작동하지 않게 된다. 비행기가 수면으로 떨어지기까지 약 20분밖에 안 남은 절박한 상황에서 활주로가 시야에 들어왔다. 기장은 높은 고도를 낮추기 위해 여러 차례 선회를 실시해야 했다. 이를 엔진 동력 없이 한다는 것은 한 번의 실수도 치명적임을 의미했다. 다행히도 이 모든 것이 잘 진행돼 무사히 착륙에 성공한다. 기가 막힌 무동력 착륙 기술로 236편을 무려 120km나 활공시켜 착륙한 조종사는 캐나다에서 영웅이 됐다. 이 정도면 가히 글라이더라 할 수 있었다! 이 비행은 이전의 최고 기록인 일명 ‘김리 글라이더 사건’을 갈아엎었다.
1983년 7월23일 에어캐나다 보잉 767은 승객과 승무원 69명을 태우고 몬트리올을 출발해 에드먼턴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기종은 출고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형이었다. 예정 항로를 반쯤 날고 있을 무렵, 엔진에 연료가 부족하다는 경고가 떴다. 하지만 컴퓨터상에는 충분한 것으로 나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어쨌든 조종사들은 가장 가까운 위니펙 공항으로 회항을 결정했다. 하지만 결국 연료가 바닥나더니 4만 피트 상공에서 왼쪽 엔진이 작동을 멈췄다. 비상착륙을 위해 하강하던 중, 2만 피트 상공에서 오른쪽 엔진마저 멈췄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위니펙은 아직도 120 km, 김리는 83 km 떨어진 지점이었다. 조종사들은 가까운 김리 공항으로 방향을 돌리기로 했다. 그런데 김리는 오히려 고도에 비해 너무 가까워 문제였다. 속도만 줄이자면 그냥 지나쳐버릴 테고, 고도를 급히 낮추면 속도가 너무 빨라져 위험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때 글라이더 조종 경력이 있는 기장은 '슬립'이라는 기술을 시도한다. 이는 보조 날개를 서로 반대로 조작해 공기 저항을 늘려 속도 증가 없이도 고도를 낮추는 글라이더 기술이었다. 덕분에 143편은 극적으로 활주로에 무사히 착륙했다. 알고 보니 사고 원인은 어이없게도 파운드와 리터 급유 단위의 착각이었다.
각 사례를 보면 어찌 됐든 엔진이 멈춘다고 비행기가 뚝 떨어지는 건 아님을 알 수 있다. 큰 여객기도 활공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단, 어느 정도 속도를 유지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바람과 기상 조건이 잘 맞아 떨어질 때 제한적으로 말이다. 이론적으로는 이렇지만 세세한 비행기 조작이나 추가적인 고도 조절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에서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적’을 이끌어내려면 무엇이 가장 결정적일까? 상황이 발생했을 때의 고도, 바람 조건, 비행기의 상태, 그리고 조종사의 멋진 조종술? 그래 다 좋다. 하지만 이 모든 사례를 종합해서 분석해보면 볼수록 뿌리치기 힘든 관념이 고개를 든다. ‘그래도 역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사람의 ‘운빨’인 것일까?’
글 유호상 에디터 트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