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여행에서 맛본 터키의 맛
터키의 아침
이스탄불 여행 가이드인 오즈렘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터키의 아침식사를 직접 경험해 봐야 한다는 그녀의 강력한 의지 때문이었다.
터키의 아침식사는 ‘카흐발트(kahvalti)’라고 한다. 카흐(kahve)는 커피를 의미하고 ‘알트(alti)’는 전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카흐발트’는 ‘커피보다 앞선 것’ 정도의 풀이가 정확하겠다. 아침식사 전에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터키 문화가 담겨 있는 셈이다.
‘아침식사야 필요한 에너지만 보충하기 위해 간단히 해결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은 그녀의 집에서 와장창 깨졌다. 아침에 먹은 음식들을 한번 읊어 봐야겠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건 분명 아침식사다.
동네 베이커리에서 사온 터키식 파이와 갖가지 빵, 햄, 요거트, 우유와 양젖으로 만든 예닐곱 종의 터키 치즈, 우유를 끓여 만든 버터 ‘카이막’과 터키 꿀, 모과와 체리로 만든 잼 ‘레첼’, 그린 올리브와 블랙 올리브, 무화과를 비롯한 마른 과일 3종, 터키산 견과 4종, 참깨와 설탕을 조린 것에 견과를 넣은 ‘헬바(helva)’, 갓 따온 듯 싱싱한 오이와 토마토 그리고 각종 향신채 5종, 얼얼한 터키 고추, 그리고 터키식 홍차까지.
터키의 아침식사를 경험하면 터키가 얼마나 풍요로운 나라인지를 알게 된다. 카이막(kaymak)은 매우 중독성이 있고 한국에서도 여전히 생각나는 음식 1순위다. 갓 짠 우유를 약한 불에 두 번 끓이면 표면에 지방 성분이 두껍게 생기는데 이것을 걷어 낸 생버터가 바로 카이막이다. 고소한 카이막과 달콤한 꿀을 대강 섞어 빵에 발라 한 입 베어 물면, 행복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터키산 채소를 토끼처럼 야금야금 씹는 재미도 있었다. 딜, 파슬리, 루꼴라 같은 허브를 아무 드레싱 없이 씹어 먹는다. 길고 가느다란 터키 고추도 생채로 아삭아삭 씹어 먹었다. 간혹 청양고추처럼 엄청 매운 놈이 걸리기도 한다. 어떤 건 입이 마비될 정도인데 매운 고추와 그렇지 않은 고추를 구별하기가 어렵다.
‘헬바’는 깨를 넣은 버터에 꿀, 달걀흰자를 섞어 만든 부드러운 디저트로, 유럽에서 유명한 ‘누가’의 원조다. 약간 텁텁한 터키 커피를 마시고 쫀득쫀득한 로쿰(locum)을 입에 넣으니 왜 이 작은 과자를 ‘터키시 딜라이트’라고 부르는지 알았다. 미소가 배시시 새어 나왔다. 설탕 시럽에 흠뻑 젖은 바클라바(baklava)는 입이 얼얼할 정도로 달콤했다.
오즈렘에게 이토록 풍성한 식탁이 정말 평상시와 같은 아침식사냐고 물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종류를 먹어요. 오늘은 양을 약간 늘렸을 뿐이죠!”라고 답했다. 손님용으로 차린 것이 아니라고? 터키인들은 학교나 직장에 지각했을 때, ‘아침밥을 먹느라고 늦었다’라고 대답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장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것도 흥미롭다. 좌식문화가 있어서 아시아와 가까운 터키 동부 시골에선 여전히 상을 쓴다. 우리나라에서 70~80년대에 즐겨 쓰던 레트로풍의 양은밥상을 떠올리면 된다. 카페나 레스토랑에서는 복고풍 인테리어를 위해 양은밥상에 긴 다리를 달아 테이블로 쓰는 경우도 있다. 이스탄불 신공항 터키항공 라운지에도 있는데, 모던한 소파와 썩 잘 어울린 기억이 난다.
또 한 가지. 주인장은 음식을 푸짐하게 대접하고 손님은 남기지 않고 먹는 것이 예의라는 점도 비슷하다. 이번 이스탄불 여행에서 단 한 번도 음식이 적당량 나온 적이 없었다. “둘이 나눠 먹을 테니 1개만 주세요!”라고 해도 언제나 1인당 1개를 내어줬다. 그것이 원칙이라 했다. “이번엔 진짜 조금만 준비했어!”라던 친구 집에 갔다가 산더미처럼 쌓인 음식을 보고 놀랐다는 에피소드가 흔하다.
터키식 만두는 ‘만트’라고 하며, 크기는 다르지만 생김새와 만드는 방법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만두는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터키에서 시작해 실크로드를 타고 여러 나라로 전해졌다는 설이 있다.
터키식 고추 피클은 고추 장아찌와 맛이 거의 똑같고, 양배추 피클은 얼추 백김치에 가깝다. 흰쌀밥에 각종 피클을 얹어 먹는 스타일엔 이질감을 느낄 수 없었다.
밥을 포도나무 잎으로 싸서 만든 ‘야프락 돌마스(yaprak dolmasi)’에선 호박잎 쌈이 연상됐다. 이 정도면 터키가 우리와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니라 식사 문화를 공유하는 민족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식사 후도 기억에 남는다. 오즈렘은 남은 빵을 창밖으로 던졌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동네 고양이가 몰려와 만찬을 즐겼다. 휘파람을 부니 갈매기처럼 생긴 새가 날아와 빵을 채간다. 늘 있는 일이라 했다. 그녀가 유독 동물을 사랑해서 하는 행동인가 했더니 그렇지도 않았다. 터키에서 또 한 가지 놀랐던 일이 있다. 그것은 동물을 대하는 터키인들의 방식이었다.
글·사진 김진 에디터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터키항공 www.turkishairlin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