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의 미학
공미학
사이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게 아니다. 오히려 사이는 둘 다를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공미학은 갤러리와 카페의 사이다. 갤러리인 듯 카페인 듯, 둘 다인 곳. 외관만이 아니다. 장소도 그렇다. 교대역과 남부터미널역 사이에 위치해 있다. 둘 중 어느 곳에서 출발해도 좋다. 슬렁슬렁 산책하듯 걷다보면 금방 도착할 수 있다.
오늘따라 빵이 당긴다면, 공미학을 방문하기 딱 좋은 날이라는 뜻. 크루아상, 앙버터, 식빵 등 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빵들로 매장 안이 빼곡하다. 살이야 찌든 말든, 오늘만큼은 뒷일 생각 않고 트레이를 빵으로 욕심껏 채우고 싶어진다.
단골로써 웬만한 빵은 다 먹어 봤지만 역시 '인절미 앙크림빵'이 최고다. 쫄깃한 빵에 통팥과 인절미 크림이 가득 들어 있는 데다, 빵 겉면도 인절미 가루로 고소하게 미무리했다. 구수하고 달콤하고 부드럽고. 맛이 없을 수가 없는 맛. 쿠키류도 매력적이다. 특히 한가운데 땅콩 잼이 들어간 부드러운 르뱅 쿠키가 일품이다. 맛있다고 이것만 매번 먹긴 아깝다. 매일 다른 종류의 쿠키들이 따끈하게 구워지니까.
공미학에서 느껴지는 사이의 미학, 그 최고봉은 ‘서초의 미학’이다. 콜드브루 위에 국산 쌀가루와 말차크림을 가미한 친환경 아인슈페너로, 말차 라떼와 커피 그 사이 어디쯤을 경험할 수 있는 음료다. 대신, 서초의 미학을 주문할 땐 배를 좀 비워 둘 것. 이래봬도 쌀이 들어 있어 한 컵을 다 비우면 꽤 배부르다.
공미학
주소: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48길 101
뜻밖의 꽃 선물
몬틸나잇
서울교육대학교 옆 작은 골목, 몬틸나잇이 있는 곳이다. 동네 주민들만, 그러니까 아는 사람만 간다는 '찐' 동네 카페. 그렇담 한적해야 할 것 같은데, 낮이든 밤이든 갈 때마다 만석이다. 이유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식물 콘셉트의 카페는 많다. 그러나 꽃을 주는 카페는 흔치 않다. 몬틸나잇의 매력 포인트는 여기에 있다.
계산대 옆 꽃병에는 손님을 위한 꽃이 놓여 있다. 보라고 있는 꽃이 아니라, 가져가라고 있는 꽃이다. 카페를 방문한 손님은 누구나 한 송이씩 데려갈 수 있다. 로즈데이엔 장미가, 어버이날엔 카네이션이, 또 어느 날은 빨갛게 핀 거베라가 손님들을 맞이한다. 오늘은 어떤 꽃이 있을지 기대하며 가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훈훈한 마음으로 실내를 둘러보니 마치 아늑한 가정집 거실에 있는 느낌이다. 친구네 집에 초대 받았는데 꽃을 선물로 받은 기분, 거기다 기가 막힌 티라미슈까지 내 온다면? 재방문은 필연적 수순이다. 몬틸나잇의 티라미수는 오후 세 시의 맛이다. 특히 로투스 티라미수가 그렇다. 점심과 저녁 사이, 정오와 저녁 6시의 딱 중간에 먹어야 하는 맛. 적당히 달고 적당히 부담스럽단 얘기다.
곁들이면 좋을 음료로는 플렛화이트를 추천한다. 카페라떼보다 우유 양이 적고, 에스프레소를 리스트레토(소량의 에스프레소를 단시간에 추출한 커피)로 추출해 향과 맛이 진하다. 티라미수의 부드러운 로투스 크림과 잘 어우러진다. 수제 로즈시럽과 두 종류의 홍차티를 블랜딩한 로즈 밀크티도, 다행히 몬틸나잇답다.
몬틸나잇
주소: 서울 서초구 서초중앙로18길 23
출입문이 열립니다
엔트런스
엔트런스는 숨어 있다. 교대역 1번 출구로 나와 골목을 두 번 꺾어 들어간 뒤, 아파트 사이로 언덕을 올라가면, 그 끝에 엔트런스가 있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 나타나는 하얀색 2층 건물. 오르막길은 힘들지만 일단 올라가고 나면 엔트런스의 문은 그 어느 곳보다 활짝 열려 있다. 덕분에 웰컴, 늘 환영받는 기분이다.
엔트런스(entrance)는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크고 널찍한 출입문을 자랑한다. 개방감이 정말 뛰어나단 얘기다. 이곳에서 가장 맛있는 건, 바로 햇살이다. 1층과 2층을 메우는 총 6개의 통유리창으로 시원한 햇살이 쏟아진다. 햇빛 쨍쨍한 날에는 1층 출입문을 모두 오픈해 둔다. 안이 밖이고, 밖이 안인 느낌. 상쾌하다.
지대가 높다 보니 시야도 확 트여 있다. 주택을 개조한 덕에 마치 조용한 가정집의 방 같은 공간들도 돋보인다. 추천 메뉴는 바스크식 치즈 케이크 '어글리 치즈'. 아메리카노와 궁합이 훌륭하다. 떡 진 머리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커피와 치즈 케이크를 먹는 기분이란, 동네 카페만이 줄 수 있는 맛있는 해방감이라고나 할까.
엔트런스
주소: 서울 서초구 사임당로19길 72-3
우리 둘의 주파수
아워헤르츠
주파수가 맞는 사람이 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아주 작은 진동조차 알아차리는 사람. 어디 사람만 그런가. 나의 주파수를 알아봐 주는 작고 새침한 카페가 존재하는 기쁨은 아워헤르츠에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 중 하나다.
조용한 골목에 위치해 있어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푸릇푸릇한 식물들로 꾸며진 입구는 카페의 존재감을 은은히 드러낸다. 작고 아담한 매장 안을 가득 채운 건 다름 아닌 강아지. 이곳에도, 저곳에도, 귀여운 강아지 일러스트가 그려진 굿즈들이 눈에 띈다.
아워헤르츠는 애견 동반 카페다. 반려동물과 함께 방문할 수 있으며, 강아지를 위한 우유와 쿠키 등 간식과 소품들도 주문할 수 있다. 그저 귀여운 카페로 기억에 남겠다 싶었는데, 섣부른 판단이었다. 디저트류가 무척 정성스럽다.
특히 파운드 케이크는 제대로 취향을 저격했다. 폭신한 식감에 고소한 맛이 예사롭지 않다 했더니 재료가 심상치 않다. 프랑스산 100% 유크림 발효버터에 100% 아몬드 분말, 히말라야산 핑크 소금까지, 제대로다.
이탈리아식 수제 푸딩 판나코타도 그냥 지나치면 아쉽다. 담백한 우유와 상큼한 오렌지의 조화가 흐뭇하다. 비 오는 날이면 온실처럼 보이는 뒤뜰 자리를 꼭 맡을 것. 주파수가 맞는 사람과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 정말이지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다.
아워헤르츠
주소: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58길 36 위드타운 1층
글‧사진 곽서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