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1
나의 어렸을 적을 이야기 하자면, 할아버지를 빼 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어렸을 적 대가족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등 고인이 되신 분들의 깊은 추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버지보다 할아버지에 대한 명징한 기억들이 아직도 삶에 남아 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변두리 촌 구석이어서 화장실이 지금으로는 상상도 할수 없는 푸세식이었다. 항상 코를 막고, 밖을 내다 보면서 일을 치루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화장실은 걸쇠가 특이했다.
걸쇠가 향하는 나무 벽면에는 구멍이 뚫어져 있어서 걸쇠를 잠그면, 바로 나무로 들어가 잠기게 되는 구조였다. 문 바깥쪽 면에는 작은 고리가 붙어 있어서, 문을 밖의 고리에 걸면 잠기긴 하지만 바깥이 보였다
어느날 할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화장실로 들어가 걸쇠를 밖의 고리에 걸고는 천장의 에디슨 전구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 '이러면 전기를 아낀다'고.
그후로 가급적 낮에는 전구를 켜지 않고, 화장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그런 분이셨다.
그 일은 할아버지와 나만의 일이기에 아무한테도 이야기 하질 않았고,
그것이 생활습관이 된 것은 당연지사였다.
세월이 흘러 이미 고인이 되신 한참 후에 아버지와 친척 어르신들이 명절에 한 자리에 모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침 할아버지의 지독한 구두쇠 생활에 대해서 성토의 자리가 이어졌다.
" 아버지는 참 정말 짠돌이 셨어. 정말로 돈을 안 쓰셨거든 " 큰 딸인 고모의 이야기다.
이에 질세라 어르신들은 돌아가면서 당신을 추억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 화장실 에피소드가 생각 나서 그때의 이야기를 했다.
친척분들은 웃으며 "그런 일이 있었구나" 를 연발했다.
지금도 나는 빈방의 불은 꼭 끄고 다닌다. 잠깐의 쉬는 시간에도 전기 기구의 전원을 오프하는 습관이 들었다. 공청기, 선풍기, 스탠드 등 가전 제품이 혼자 켜져 있는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당신의 유물(Legacy)이다.
한번은 그런 적도 있었다.
당신이 작문을 하셨는데, 주요 단어는 한자이고, 조사나 관계사 정도만 한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맞춤법이 엉망진창이었다. 한글을 발음나는 대로 쓰셨던 것이다.
"어? 할아버지가 왜 그러실까? 어디가 안 좋으신가? " 라고 생각을 했다.
시간이 얼마 지난 후에 할아버지의 고백으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당신은 일제 시대에 태어나서 한번도 학교나 정규 교육 과정으로 한글을 배워 본 적이 없었다!
한자와 일본어는 배웠지만, 해방 이후는 당연히 성인이었기에 한글을 독학으로 띄엄띄엄 배울 수 밖에 없었다. 우리글의 80%이상이 한자라서 아주 어렸을 적에는 읽기 자체가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할아버지는 그런 분이셨다.
혹자는 그 당시 분들은 거의 대부분 어려운 생을 살아서 그닥 특별한 일이 아닐수도 있다고 할수 있겠으나,
태어나 보니, 식민지 시대이고, 눈떠 보니 폭탄과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통이었다면 과연 어떠할까를 생각해보면 아찔하기 까지하다.
그 세월을 이겨 내셨기에 우리가 있다는 생각을 할 적마다 나는 불평을 거두고,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를 되새긴다.
그 분은 너무도 많은 것을 남겨놓고 가셨다.
할아버지는 그런 분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