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2
수업시간에 '漢文'이 있던 중고등학교 시절, 그 수업 시간에 한 번도 제대로 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을 수업하고 있어서, 별도로 주의 깊게 듣거나 공부를 할 필요가 없었다.
이유는...
아주 어렸을 적 할아버지한테 이미 한자를 다 배웠기 때문이다.
엄한 할아버지 밑에서 한 글자 한 글자 발음과 뜻을 이미 다 배워 놓은 상태였다.
授業을 제대로 안 했으니, 시험도 당연히 한 번도 공부한 적이 없었음에도 거의 100점을 받았다.
거의라는 의미는...
몇 번은 빨리 문제 풀고 나가서 다른 과목 공부한다고 서두르다가 실수로 1~2개 틀렸던 적이 있었다.
시험에 나오는 내용이라야 기껏해야 한자의 부수나 발음을 추측하는 정도.
이미 혼나가면서 다 배운 내용이라 수업이나 시험에 나오는 내용이 너무도 쉬웠다.
물론, 대학입시를 앞두고는 공부를 좀 했다.
중국 한학자들의 한시 해석 등 글자를 넘어선 문학 내용들이어서 글자와 의미를 안다고 해서 맞힐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항상 문제와 正答을 알고 시험을 치는 느낌은 참 뿌듯하고, 시험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니 편했다.
당연히 시험 결과는 할아버지께 알려드리고, 혹여 1~2개라도 실수로 틀리면 혼나기 일쑤였다.
그래도 나는 상황이 좀 나았다.
한 집에 살면서 기자 시험을 준비하던 막내 고모는 몇 년 간 신문의 사설을 정말로 조사 빼놓고 모두 한자로 옮겨 적어서 할아버지께 검사받은 것을 目睹했다. 빼곡히 한자가 들어찬 노트는 흡사 외국어를 방불케 했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며 한문 시험 나부랭이를 치르는 나는 차라리 행복한 축이었다.
지금은 막내고모가 轉職을 했지만, 고모는 지금도 친척 어르신들 모이면 이야기한다. 그때 정말로 쓰기 싫고, 무척이나 힘들었다고.
그럼에도 당시의 하드 트레이닝이 글쓰기와 이해력 그리고, 일본어, 중국어 자격시험 그리고 기자 시험 합격 등을 거쳐 기자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마쳤다. 그 한자 연습들이 인생 전체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으리라.
나는 오늘도 퇴근 시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弘化門'과 '昌慶宮'을 보면서 오늘도 당신을 추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