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생각을 나눕니다]
이 책의 한국판의 제목은 <현대일본의 역사>이지만, 원제는 <A modern history of Japan>이고, '도쿠가와 시대에서 현대까지'라는 부제가 붙어 있으니 정확히는 <일본 근현대사>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근래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분야가 동북아, 즉 한중일의 근현대사인데요. 일반적으로 역사라고 하면 나라마다 대표되는 시기가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는 '조선시대'가 아닌가 싶고, 중국은 '삼국지'나 '초한지' 등의 배경이 되는 한나라 전후의 시기일 듯 하고, 그럼 일본의 역사는 메이지 유신에서 2차 세계대전까지가 아닐까요? (대체로 사극이 만들어지는 것이나, 관련 서적의 양이나, 심지어 지폐의 주인공이 누구냐로 판별할 수 있겠죠)
그간 우리의 역사 교육을 통해 본 '일본'이라 하면 우리의 찬란한 문화가 일본에 이런 경로로 건너갔다 하는 자부심, 또는 어떻게 침략을 당했는지에 대한 분노의 기억 뿐이라해도 과장이 아닐 듯 합니다.
일반적으로 (개인적일 수도 있지만) 일본이라면 메이지 시대를 토대로 급격히 발전해서, 상대적으로 쇄국정책으로 시기를 놓친 조선을 추월하기 시작했다고, 그래서 우리는 (쪽바리들에게) 식민지배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죠. 하지만 한국 근현대사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 '과연 그럴까?' 싶은 의문이 듭니다.
일본은 도쿠가와 시기부터 이미 서양의 문물을 일부 받아들이고 있었고, 쇄국을 하던 시기에도 나름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박훈 교수가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에서 주장한 대로 '강렬하고도 과장된 위기감'때문일 수도 있구요.
그에 비해 조선은 정신적으로는 (진작에 망한) '명'에, 군사적으로는 '청'에 의존하는 편협한 세계관으로 망국(亡國)을 자초합니다. 아마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을 거칠게 겪어오며 담이 많이 약해졌기 때문이라 생각되지만.. 우리의 처지에 대한 지나친 비관과 자학이 결국 안드로메다의 세계로 빠진 결과를 낳지 않았을까 싶네요.
잘못된 역사의 교육에서 거꾸로 의문이 드는 건, 그럼 역사는 왜 공부해야 하는 걸까? 하는 점입니다. 왜 과거엔 그렇게 가르쳤을까는 차치하고, 지금 우리가 역사를 왜 배워야 할까만 생각해보면 개인의 과거를 알면 그 사람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듯, 역사를 알면 그 사회의 구조를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일본 근대사를 읽으면서는 어떤 점들이 보일까요? 지금 우리나라의 '현대'를 만들어준 것에 대해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일제 식민지 시대냐, 박정희의 쿠데타냐, 87년이나 88년 등 여러 이야기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일본의 경우는 '에도 시대'부터 출발합니다. (좀 더 명확히 하면 세키가하라 전투 関ヶ原の戦い)
일본의 '중세'(일본에도 그런 게 있다면)의 시작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후계 세력과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간의 긴 쟁투 끝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한 뒤, '에도 막부'를 수립한 공에 따라 <신판 다이묘>, <후다이 다이묘>, <도자마 다이묘>등으로 나뉘고 그에 따라 봉지를 받게 됩니다.. 여기서 좌천된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신들인 <도자마 다이묘>들이 절치부심(!) 몇 백년 후 메이지 유신의 주요 세력으로 떠오르게 된다. 도자마 다이묘 중 '조슈번'과 '사쓰마번'은 메이지 유신의 핵심 세력이자, 현대 일본 역시 이들이 장악하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사쓰마, 아베 신조는 조슈번 출신)
무서운 일이지만, 근대가 시작되는 에도막부 시절에 만들어진 권력구도가 현대의 일본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추종자들이 세계대전 및 그 이후의 일본 현대사를 이끌어 왔으니 우리에게 좋을 수가 없다. 패전 후에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숙청되지 않고 재집권을 했고...
현대 선진국은 정치인이 세습되는 비중은 많아야 5~6% 수준인데, 일본은 무려 20%가 넘는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주요 각료들은 모두 세습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인데.. 일본이 왜 안바뀌는지와 앞으로도 바뀔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은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일본의 정치를 보면 가끔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혁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같으면 벌써 몇 번은 광화문이나 청와대 앞에 모여 대대적으로 '이게 나라냐'를 외칠 것 같은 일에 그들은 상대적으로 '무반응(?)'으로 일관한다. 정권이 흔들릴만한 스캔들이 터질 때도, 소비세가 올랐을 때도 조금 시끄러워지는 것 같다가 이내 잠잠해진다.
다른 책이지만, '굿바이일본'(롯본기 김교수)이라는 책에서는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물론 이 분은 스스로 '국뽕'이라 불리는 걸 알고 있고, 일본에 다소 맺힌 게 있는 분이니 걸러서 들어야겠지만...
일본인은 천년 이상 '사무라이의 칼'에
언제든지 목이 잘려나갈 수 있는 살벌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아왔다.
이들은 오로지 생존하기 위해서
자기에게 주어진 위치를 벗어나지 않아야 하며
야망을 가지지 않고 복종하도록 길들여진 민족이다.
굿바이일본, 롯본기 김교수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것은 다른 데서 원인이 있을 듯 하다. 일본은 1870년에 '신토'를 나라를 이끄는 국교로 한다는 내용을 발표합니다. 아래의 내용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원래 주요 종교는 불교라는 것입니다. (아래 '사원'은 불교의 절을 의미)
그때까지 모든 사람에게 고장의 사원에 등록할 것을 의무화했던
도쿠가와 시대의 데라우케 제도가 폐지되고,
그 대신 지역 신사에 등록하는 것이 의무화되었다.
현대일본의 역사, 앤드루 고든
'국가신토'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천황을 신으로 모시는 국교이며, 일반 대중들을 관리하기 위한 일종의 관청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1945년 미군정이 들어선 후 '국가신토'를 폐지하고 종교의 자유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일본인의 90% 이상은 신토를 믿고 있다. (정확히는 믿는다기 보다, 이미 생활화돼서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을 정도..) 나라 전체가 종교 집단화된 것..
일본의 특유의 문화에 남에게 자신의 마음(이를 혼네本音라고 한다)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향과, 전후 '전체주의'의 폐해를 맛본 후 '개인주의'의 강화 등이 있겠습니다만, 이런 종교적인 세계관이 작용도 한몫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아베는 왜 개헌을 하려 할까? 아래의 내용을 읽어보면 조금 감이 잡힐 수 있다.
그는 가장 강경한 헌법 개정론자 중 한 명이었다.
그가 특히 강하게 바란 것은 천황의 지위를 명실상부한 '원수'로 높이는 것과,
국가의 교전권을 부정한 제9조를 개정한 것이었다.
좌익 과격파를 경계한 그의 지지자들은, 비상시 내각의 긴급명령권에 관한
헌법상의 규정을 마련해 시민적 자유를 제한하는 것도 내심 바랐다
현대일본의 역사, 앤드루 고든
위의 내용에서 한 단어에 손을 좀 댔는데, 처음에 나오는 '그'는 아베가 아니라 '하토야마 총리'이다. 일본의 헌법 개정을 바란 건 아베가 처음이 아니다. 목적은 다르지만 위 글에서 일본 지배층의 의도가 명확히 나온다. '천황'을 바지 삼아 '긴급명령권'을 발동하여 '시민적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현재의 선거도 요식행위에 불과하지만, 그마저도 필요시엔 '천황'을 등에 업고 자기(정치인 몇몇)들 마음대로 하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과거 영광스러웠던 그때처럼..
국내에서 출판된 책들을 다 살펴본 것도 아닌 입장에서 감히 말하자면,, 일반인 수준에서 읽을 만한 일본 근현대사에 대한 책으로는 가장 괜찮 책이 아닐까 싶다.